‘만화’ 하면 코흘리개 시절, 공부하라는 엄마 눈치를 보면서 몰래 읽었던 싸구려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만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남들한테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웹툰은 전 세계 만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에서 웹으로 만화가 이동하면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만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열리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의 만화에 열광한다. 웹툰 인기의 가장 큰 원인은 상상력에 있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없는 일도 만화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B급 문화로 취급받던 만화를 예술로 업그레드한 화가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디즈니 만화를 좋아한 아들 때문이었다. 어린 아들의 부탁을 받고 디즈니 만화를 그려주면서 대중에게 주는 만화의 영향력을 깨달았다. 작품의 주제를 바꾸게 된 배경이다.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적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차 안에서’이다.
붉은색 넥타이를 맨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시선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금발의 여인을 향하고 있다. 남자의 시선은 그가 운전보다 여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금발에 진주 귀걸이를 한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여자의 시선은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음을 의미한다.
금발 머리, 붉은 입술 그리고 긴 속눈썹은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상업 만화에서도 미인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미인은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남녀의 애정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주로 사용됐다. 여인의 진주 귀걸이와 노란색 모피코트는 여자가 멋쟁이임을 뜻한다.
약간 치켜 올라간 남자의 입꼬리는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앞만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시선은 미인의 자만심을 상징한다. 자동차 창의 그려진 줄무늬는 만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기법으로, 리히텐슈타인은 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만화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했다. 붉은색 자동차는 남자의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만화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DC 코믹스의 1950년대 만화책 시리즈인 <소녀들의 로맨스> 78번째 이야기에 등장한 장면으로, 원본에는 말풍선이 있지만 그는 말풍선을 생략했다. 그것이 만화와 다르게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이 작품처럼 만화 같은 회화 양식으로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지만, 그가 대중에게 인정받은 최초의 미국 팝아트 화가라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원한 아웃사이더는 없다. 시대를 잘 만나면 주류가 되기도 한다. 단지 그 시대가 언제 오느냐다. 기다리면 당신의 시대를 만날 수 있다.
<박희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