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한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있다. 한국 헌법이 그렇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피의사실이 마구잡이로 공표된다면 이런 원칙과 권리는 무용지물이 된다. ‘여론 재판’에서 이미 유죄를 확정받아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특히 혐의 내용과 무관하거나 민감한 사생활 정보가 공개되면 피의자 등의 인격이 말살되고 만다. 수치심과 모멸감, 압박감에 자살하기도 한다. 법원에서 무죄가 나와도 이런 피의사실공표로 인한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다. 하지만 지금도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는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누구도 피의사실공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인산염 먹인 오징어채’?
A씨(79)는 수사기관의 수사와 피의사실공표 등을 둘러싼 송사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는 2013년 해양경찰에 구속됐지만 2015년 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국가를 상대로 피의사실공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해경의 피의사실공표가 위법하다고 인정했다. 이 판결은 2023년 2월 확정됐다. 명예회복에 10년이 걸린 셈이다.
2013년 3월 “인산염으로 무게를 부풀린 오징어채 제조 업자가 구속됐다”는 내용이 연합뉴스 등 여러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오징어채를 제조하는 과정과 이를 압수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과 영상도 기사에 담겼다. 기사에는 ‘인산염 먹인 오징어채’, ‘인산염에 불린 못 먹을 오징어채 팔아’ 등의 제목이 달렸다. 이는 통영해양경찰서의 보도자료와 기자회견 등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었다. 해경이 A씨를 구속하자 이를 공표했다. A씨는 경남 사천에서 냉동오징어를 가공해 오징어채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는 식품위생법상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식품제조·가공업을 한 혐의를 받았다.
보도자료의 내용은 ‘A씨가 무허가 식품제조 공장을 차려놓고 냉동오징어를 인산염에 희석한 물에 담가 중량을 부풀렸다’는 취지였다. 또 ‘A씨가 생산한 오징어채에서는 허용치보다 28배가 높은 인산이온이 함량된 것으로 확인돼, 다량의 인산염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라는 대목도 있다. ‘인산염을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 쇼크와 같은 상태, 혈압 강하, 혼수상태, 그리고 때때로 경련을 일으킬 수 있어 치명적인 인체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오징어채를 감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이렇게 해경은 A씨가 마치 인산염이 포함된 오징어채를 유통했으며 이런 행위가 범죄인 것처럼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이는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A씨는 미신고 영업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졌다. 그마저도 2015년 5월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A씨는 2018년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해경의 위법한 피의사실공표로 인해 명예·신용이 훼손됐고,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위자료 지급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9년 10월 항소심은 그러나 A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고, 2022년 1월 판결이 선고됐다.
■“의심을 넘어 단정적 표현 사용”
대법원은 먼저 피의사실공표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할 기준을 설시했다. 기존 민사판례를 인용했다. 피의사실공표는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의 정당한 관심이 되는 사항이어야 한다’,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및 예단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은 피해야 한다’ 등이다. 즉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내용의 공공성,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표현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대법원은 해경의 발표 내용 가운데 ‘A씨가 신고를 하지 않고 냉동오징어를 제조·가공했다’는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미신고 영업 혐의는 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1·2심에서는 유죄를 선고한 점 등을 고려하면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해경이 보도자료에서 비중 있게 다룬 ‘인산염을 사용했다’는 내용은 위법한 피의사실공표라고 결론 내렸다. 일단 인산염 사용은 범죄를 구성하는 사실조차 아닌 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의사실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사실관계’까지 피의사실에 포함해 발표하는 건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본 것처럼 A씨가 기소될 때는 인산염 사용 내용은 범죄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해경은 인산염을 사용했다는 내용을 크게 부각해, 마치 A씨가 인체에 유해한 첨가물을 사용해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제품을 제조·가공했고 이를 수사기관이 밝혀낸 것처럼 표현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인산염 사용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국과수의 실제 감정 결과는 “오징어채에서 유해중금속이 발견되지 않았고, 인산이온이 과다하게 검출된 것에 비춰 인산염 사용이 의심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해경이 의심을 넘어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A씨는 해경 조사에서 인산염을 물에 희석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도, 해경은 인산염 사용 여부를 별도로 확인하거나 조사하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실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단정·왜곡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인산염은 식품첨가물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그 자체로 인체에 유해하다고 볼 수 있는 연구 결과나 자료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라며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령도 인산염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용량의 기준을 둬서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해경 공표행위의 공적 목적이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해경이 성급하게 내용을 발표해 시민들이 A씨의 인산염 사용이 범죄행위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등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다만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가 지나 실제 배상액 지급은 인정하지 않았다. 해경이 압수한 오징어채 150박스를 위법하게 폐기해 A씨가 손해를 본 점은 인정돼 국가가 약 45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이 판결은 2023년 2월 재상고심에서 최종 확정됐다.
■70년 동안 기소 ‘0건’
검찰과 경찰 등 공권력을 행사하는 수사기관이 공식 발표하는 수사 내용은 상당한 공신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그 내용을 진실로 여기며 신뢰하게 마련이다. A씨의 사례처럼 수사 결과 발표 내용은 언론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고 빠르게 확산된다. 그런 만큼 피의자 등에게는 큰 피해를 줄 우려도 상존한다. A씨처럼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온전한 회복이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언론 기사와 사진은 지금도 인터넷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A씨가 무죄를 선고받았고, 해경의 피의사실공표가 위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들은 이런 기사를 보면서 A씨를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특히 수사 진행 중에 민감한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행위’는 문제가 더 크다.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진술이나 증거, 나아가 허위내용이나 범죄사실과 무관한 사생활 정보가 노출되면 당사자에게 치명적이다. 배우 이선균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다가 지난해 12월 자살한 것을 두고 피의사실공표가 논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수사기관이 피의사실공표를 통해 피의자에게 망신을 주고 압박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대로 수사를 진척시키려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한다. 검찰·경찰 등 범죄수사 직무를 수행하거나 이를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면 안 된다.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피의사실공표는 범죄인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인격 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재판 전부터 유죄 심증을 심어줌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일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학계와 법조계에는 ‘국가 수사기능 보호’도 피의사실공표죄의 입법 취지라는 견해도 있다. 범죄사실이 공개됨으로써 다른 사건관계인 등이 증거를 인멸할 우려 등이 있어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에서 피의사실공표 여부를 판단할 때 이런 점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 등 별도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는 점 등에 근거해 이런 학설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9월 형법이 첫 제정될 때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기소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대검찰청 <검찰연감>을 보면, 2008~2022년 피의사실공표죄로 접수된 사건은 611건이다. 기소된 사람은 0명이다. 불기소 처분은 유형별로 ‘혐의없음’ 124명, ‘공소권 없음’ 9명, ‘각하’ 186명이다. ‘죄가 안 됨’도 4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범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정당행위나 정당방위 등 위법성 조각이 인정될 때 내린다.
또 범죄로 인정은 되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은 ‘기소유예’가 2명이다. 이는 ‘가짜 약사’ 사건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울산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으로 보인다. 울산경찰청은 2019년 1월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약사 행세를 한 혐의로 B씨를 구속하면서 수사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자 울산지검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경찰관 2명을 수사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2019년 7월 ‘수사 계속’을 권고하면서 검찰이 기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검찰은 그러나 2020년 7월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보도자료에서 “기소 전 공보는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하고 기소 전에 공표가 불가피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라며 “공보 과정에서 내부 규칙이나 비례 원칙을 충실히 준사했다고 보기도 어려워 범죄가 성립한다고 봤다”고 밝혔다. 다만 “이 사건 공보의 동기, 보호법익의 침해 정도, 위법성의 인식 정도 등 제반 정상을 참작해 기소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대검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는 2023년 피의사실공표죄로 접수된 사건은 27건이며 역시 기소 사례는 없다.
경찰도 피의사실공표죄를 수사할 수 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2022년 피의사실공표죄로 접수된 사건은 모두 40건이다. 이 가운데 인원으로 치면 2017년에 1명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나머지 49명은 불송치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1명도 검찰에서 기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수사 여부 주목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사례가 없는 건 수사기관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검·경이 내부 구성원이나 상대를 처벌하기 꺼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1년 피의사실공표죄도 재정신청이 가능하도록 형사소송법이 개정됐다. 재정신청은 검찰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법원에서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재정신청을 통한 기소 사례도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수사기관의 자체 자정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배우 이선균씨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씨가 사망한 데는 경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흘리기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이씨는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세 차례 경찰에 출석할 때 모두 언론에 공개돼 포토라인에 섰다. 전후 맥락과 사정은 생략된 채 특정인의 진술이 공개됐고, 사생활 정보가 담긴 녹취가 보도되기도 했다.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지난 1월 12일 이씨의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수사당국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성명서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보책임자의 부적법한 언론 대응은 없었는지, 공보책임자가 아닌 수사업무 종사자가 개별적으로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자 등으로부터 수사사건 등의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은 경우 부적법한 답변을 한 사실은 없는지 한치의 의구심도 없이 조사해 그 결과를 공개하길 요청한다”라며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연대회의는 이 성명서를 경찰청에 전달했다. 경찰청 측은 그러나 진상조사 여부 등을 두고 지난 1월 17일 “입장이 없다”고 주간경향에 밝혔다. 경찰의 공보 기준·절차를 규정한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경찰청 훈령)의 제1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민의 알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라고 목적을 명시한다. 피의사실공표의 예외 사유를 담고 있다. 위반 시 조치 내용도 있으나 다소 약하다. ‘규칙에 반해 수사사건 등의 내용을 유출한 사람에 대해서는 유출 경위와 내용 등을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튿날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씨 수사의 유출 경위 등을 수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씨의 마약 혐의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경찰청 김희중 청장은 “수사가 잘못돼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수사사항 유출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해당 수사가 철저히 이뤄질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선균씨 사망을 둘러싼 피의사실공표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수처는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를 수사할 수 있다. 또 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은 기소도 가능하다.
공수처에는 피의사실공표 사건이 여럿 접수돼 있다.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윤석열 후보의 검증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 등을 더불어민주당 측이 지난 1월 8일 피의사실공표죄 등으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피의사실공표죄는 한 건도 처벌된 사례가 없다. 검사들이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피의자를 괴롭히는 특권처럼 사용하고 있다”라며 “공수처가 적극 수사해 헌정사상 첫 처벌 사례를 만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수사를 받고 있는 뉴스타파 측도 지난해 11월 성명 불상의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같은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창원 간첩단 의혹’ 사건의 수사 관계자들도 피의사실공표죄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다만 수사기관이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이뤄진 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관계자’나 ‘수사 관계자’ 등으로 표기되고, 취재원 보호 등을 이유로 출처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피의자의 인권 보호와 시민의 알권리 및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가 대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공인이거나 공익적 성격이 짙은 사건의 경우, 기소 전 피의사실 공개를 원천 차단하면 알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기본권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 마련을 위해 정부와 국회, 언론, 학계,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범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