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0년 지난 퇴직금을 받은 방법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법원 전경 /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 연합뉴스

A: 돌아가신 남편 퇴직금 문제로 상담하려고요.

변호사: 네.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A: 남편은 B은행에서 일하다가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은행 단체협약을 꺼내며) 나중에 알아보니 은행과 노조 사이에 ‘사망으로 인한 퇴직자의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유족에게 지급한다’라고 이렇게 규정돼 있네요.

변호사: 네. 그래서 사망퇴직금 1억원이 발생했군요.

A: 네. 맞아요. 그런데 우리가 사망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니, B은행이 남편 채권자분들 때문에 못 받을 거라고 계속 안내했어요. 은행에서 그렇게 공식적으로 말하니 진짜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요. 1억원 중 5000만원은 이미 채권자들이 압류해 배분을 완료했다네요.

변호사: 일단 고인께서 5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지요. 퇴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라 이미 소멸했을 수 있습니다. 혹시 그 후에 다른 일은 없으셨나요?

A: 최근 일인데, B은행에서 5년 만에 연락이 와서 퇴직금 중 나머지 5000만원을 받아 가라고 내용증명으로 통보를 했어요. 우리가 수령하면 그것도 바로 압류한다고 해요.

변호사: 그러면 채권자가 소멸시효 이익을 전부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A: 그런가요?

변호사: 그리고 이 문제는 보험금에 관한 판례를 끌어오면 될 것 같습니다. ‘보험금은 유족이 상속받은 재산이 아니고, 유족의 고유재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권자가 유족의 보험금에 집행하지 못한다’는 판례가 다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상속인의 채권자보다 유족의 권리가 우선하게 되니 그동안 했던 채권자들의 집행이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A: 그러면 소송이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변호사: 네. 압류할 대상이 아닌 재산을 압류하더라도 무효입니다. 유족분의 고유한 재산에 압류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사건의 포인트입니다. 아직 사망퇴직금 수령권자에 대한 법과 대법원 판례가 없어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망퇴직금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유족을 변호했습니다. 이 문제는 퇴직금이 상속받은 재산인가 아니면 원래 유족의 재산인가 하는 복합적인 논리의 쟁점이었습니다. 노동자가 예기치 못하게 돌아가신 경우 발생하는 사망퇴직금을 유족과 망인의 채권자 중에서 누가 받아 갈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돌아가신 노동자의 ‘채권자’가 ‘유족’에 앞서서 해당 퇴직금을 집행(압류)할 수 있을까요? 상속재산이라면 채권자가 유족 A의 재산을 빼앗아 가는 것(압류)이 가능한데, 비상속재산(A의 고유재산)이면 채권자가 A의 재산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대화에서 언급된 대로, 이 부분에 관한 명확한 법과 대법원 판례가 아직 없었습니다. ‘사망보험금의 경우 상속인의 고유재산이라는 판례가 다수인데, 같은 법리를 사망퇴직금에도 적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찾아 국내 권위 있는 상속법·노동법 교과서, 논문, 하급심 판결을 모조리 뒤져 같은 취지로 된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상속법 권위자인 윤진수 교수의 “사망퇴직금의 경우에는 제1차적으로 각 기업의 취업규칙 등에 따라 정하여지므로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근로기준법상의 유족보상(제82조)의 경우에는 수급권자인 유족이 반드시 상속인과 일치하지는 않으므로(예컨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배우자도 포함한다), 이를 상속재산으로 보기는 어렵다”( 친족상속법 강의)는 글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에 따라 ①퇴직금은 유족들의 생활보장을 위해 지급되는 미지급 임금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 ②단체협약에서 사망퇴직금을 (민법의 규정과 달리) “근로기준법이 정한” 유족보상의 범위와 순위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정했다는 점 ③노동조합과 회사 간의 퇴직금에 관한 단체협약은 ‘제3자를 위한(유족을 위한) 계약’으로 해석된다는 점 ④헌법이 보장한 노사 협약자치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은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입증했습니다. 비교적 치밀하고 논리적인 전개였습니다.

대법원은 최근, 상고 이후 1862일 만에 이 사건을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23. 11. 16·선고 2018다283049 판결). 그렇게 사망퇴직금은 원칙적으로 상속재산이 아니라 고유재산이라는 법리를 대법원에서 ‘최초로’ 인정받았습니다(대법원 보도자료).

죽은 채무를 스스로 부활시킨 은행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 격언이 있습니다. 소멸시효 제도는 이 말을 법으로 만든 것입니다. 소멸시효란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더 이상 소송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특히 임금과 퇴직금은 소멸시효가 비교적 짧은데, 3년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소멸합니다(참고로 일반 민사채권은 10년입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는 2년이었다가 1974년 3년으로 늘어난 뒤 현재까지 3년입니다.

그런데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예외도 있습니다. 시효가 경과하더라도, 채권자가 자발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면 죽었던 채무가 부활되기도 합니다(예를 들어, 일부 변제하거나 채무 승인을 한 경우). B은행이 내용증명(‘한정상속재산-퇴직금-정리 예정 통보’)을 보냈습니다. 퇴직금이 발생한 지 3년 이후에 A에게 나머지 채권의 2분의 1을 수령하라는 취지였습니다. 일단 유족들이 받아 가면 은행이 유족들의 재산에 압류를 가하려는 목적입니다.

이 행위는 두 가지 법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1)채권을 수령해 가라고 한 의사표시는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인정됨과 동시에, (2)2분의 1을 수령하라는 일부포기는 2분의 2 전부의 시효이익포기로 된다는 것입니다. 즉 채권의 2분의 1만 시효이익을 포기해도 채권 전부가 부활합니다. 이렇게 법적인 중요한 행동을 할 때는 관련 전문가의 예측과 검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족의 변호사로서, 상대방의 이런 실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법정 최고이율(20%)을 적용하라

사용자는 노동자가 퇴사한 경우, 임금과 퇴직금 지급 사유가 발생한 14일 다음날부터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연이자는 100분의 20으로 규정돼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37조·시행령 제17조). 즉 퇴직금과 (퇴직 후) 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는 연 20%입니다. 이렇게 높은 이율의 이유는 ‘사용자가 어차피 줄 건 빨리 줘라’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고유재산이라고 하더라도 퇴직금으로서의 성질을 상실하지 않기 때문에 연 20%의 지연손해금을 갖는다’는 우리의 주장과 논리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외도 있습니다. 퇴직금의 전부 또는 일부의 존재 여부를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다투는 것이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20%가 아닙니다. 사용자가 한번 다투어봄 직한 사례에는 고율의 이자를 면제해주기도 합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을 조화시켰습니다. 퇴직 후 1~2심까지(2012. 5. 1~2018. 9. 21, 총 6년 4개월 20일)는 사용자가 한번 ‘다투어봄 직한 사건’으로 인정해 6% 지연이자를 적용했습니다. 근로계약을 보조적 상행위로 보아 상법상 이자를 더한 것입니다. 반면, 3심부터 다 갚는 날까지(2018년 9월 22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5년 1개월 27일 이상)는 연 20%를 적용했습니다.

긴 논리 싸움 끝에, 퇴직금이 발생한 지 10년이 넘은 후에야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약속을 마침내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 lawyer_han@naver.com>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