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시키는 금투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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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은 같은 사람이 한 발언들이다.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살펴보자.

“2023년부터 주식 양도소득세가 시행되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 우리나라는 전체 거래한 주식 매입가격과 처분가격의 차액을 확인해 과세할 수 있게 디지털 기반이 돼 있다. 그 경우 증권거래세가 이중과세되는 것.”(2021년 12월 27일)

“주식 양도세 폐지.”(2022년 1월 27일 페이스북 7글자 발표)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 임기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2024년 1월 2일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이 세 발언의 화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주식 거래에 과세하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한다고 했다가 정확히 한 달 뒤에 주식 매매로 얻은 차익에 과세하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럼 증권거래세는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당시 주식 양도소득세는 과세 범위를 아주 조금씩 넓히는 중이었는데 그걸 넓히지 않고 아예 폐지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2023년에 도입될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를 일부 수정하거나 폐지한다는 의미였을까.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이런 정책의 디테일까지는 알 수 없겠으나, 당시 국민의힘 선대위 차원에서도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정책을 총괄했던 원희룡 당시 정책본부장(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쏟아지는 질문들에 정면으로 답변하지 않고, 특유의 스킬로 퉁 치며 넘어갔다. 어차피 선거에서 정책은 중요하지 않으니, 1400만명에 달하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호재인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만 주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호재 루머보다 못한 대통령의 금투세 발표

이 연재를 하면서 여러 차례 강조한 원칙이 있다. 정책이란 충분히 논의한 만큼, 다시 말해 제대로 공론화가 된 만큼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같은 정책을 다룰 땐 이런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금융투자소득세란 이름부터 무언가 어렵고 복잡할 것 같다는 인상부터 풍기고, 이 세금 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서야 이런 어려운 정책을 왜 알아야 하는지부터 의문을 가지기 쉽다. 바로 그런 특징 때문에 이런 조세제도는 쉽게 흔들리고,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렵다. 그래서 주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영역이었던 조세제도를 대중의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전반적인 조세체계가 공정하게 운영되고, 그리돼야 정부가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논의에 앞서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어느 정도 예견했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에 기고한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4) 금투세에 대한 새로운 제안’에서 “진보가 유능해지려면 세금에 보다 전략적이고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선명한 주장만으로 조세의 원칙이 달성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수가 줄어 복지국가는 멀어지고, 조세저항으로 조세제도가 개악되기 쉽다”며 “금투세는 (국내 주식에 적용되는) 공제금액을 현행 5000만원보다 늘린 다음 점진적으로 과세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대신에 증권거래세는 이미 인하된 현 세율을 유지해야 한다. 그게 느리지만 더 빨리 가는 조세개혁의 방향”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혹자는 이런 제안에 대해 국내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공제금액 5000만원이 다른 종류의 소득뿐 아니라 여타 금융 소득에 비해 과도한 혜택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실제 금융투자소득세에서 채권, 파생상품, 해외주식 등의 매매차익에 대한 공제금액은 250만원이다. 금융투자소득세는 5년 동안 손실과 이익을 합쳐 순이익을 따지기 때문에 일시적 매매차익으로 인해 납세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논의 당시에 이런 취지의 주장이 빼곡한 근거와 함께 제기됐고, 학계에선 주식 매매차익에 과도한 공제 혜택을 줄 이유가 없다는 논증이 오랜 기간 축적된 바 있다. 게다가 근로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에 과도한 면세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데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고, 대다수의 선진국이 자본소득에 예외 없이 과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 투자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과 유권자들에게 즉자적인 호재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 문화 등을 고려하면 원칙론만 강조해선 오히려 원칙을 관철할 수 없다.

공정한 조세체계를 위해 필요한 조세제도가 있다면 충분히 알리고 공론화하며 점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그러나 그렇게 도입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공청회를 거치고,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지금처럼 흔들릴 정도로 그 기반이 취약했다. 특히 이분법적 시각이 아닌, 딜레마적 관점이 중요하다. 금융투자소득세에 찬성한다고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도그마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할 게 아니고, 반대한다고 ‘조세 원칙과 정의에 반하는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할 일도 아니다. 물론 구체안도 없이 주식시장에 가서 호재처럼 조세제도 존폐 여부를 툭툭 던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의 정책을 주식시장의 호재 루머처럼 다루는 행위다. 그나마 주식시장에선 루머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에 기업이 나름 성실하게 응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개장 신호 버튼을 누른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개장 신호 버튼을 누른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불확실성 리스크 키우는 정부

그렇다면 금융투자소득세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법률상의 정의는 의외로 단순하다.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얻은 연간 수익금에서 일부 금액(공제액)을 제한 뒤에 22~27.5%(지방세 포함)의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원천징수한다’가 금융투자소득세의 개념 정의다. 공제액은 국내 상장주식의 경우 5000만원이고, 해외주식과 비상장주식, 채권과 파생상품은 250만원이다.

개념 정의가 단순한 이유가 있다. 기존 금융투자수익에 거두는 세금이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에 따른 이익들을 기존엔 다르게 취급했다. 주식이나 파생상품은 일부에 한해 매매차익에 양도소득세를 매겼고, 집합투자기구와 파생결합증권(ELS 등)의 이익은 배당소득으로 취급해 금융소득으로 종합해 과세했다. 채권 양도소득은 비과세했다. 세율도 천차만별이었다. 이익과 손실을 합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다. 주식 투자엔 손익을 합치는 게 가능했지만, 펀드 등의 간접투자에 대해선 불가능했다. 기본공제 금액도 서로 달랐다. 이런 것을 조세의 ‘중립성’에 어긋난다고 한다. 조세의 원칙 중에서 중립성이란 유사한 경제행위를 조세제도가 차별하지 않고 비슷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경제적 왜곡이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기존의 금융투자소득세가 배당소득을 여전히 별도로 취급해 이원화된 체계를 남겨뒀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기존보다 중립적이고 단순한 조세체계임에는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가 폐지한다는 발표가 과연 이런 복잡하고도 차별적인 조세제도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식양도소득세만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금융투자소득세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결국 국내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다. 기존엔 대주주에게만 주식 양도소득세를 과세했지만, 금융투자소득세는 이런 대주주 기준 자체를 폐지하고 주식 매매로 연간 5000만원 이상(5년간 손실을 통합 계산 가능)의 매매차익을 거두면 예외 없이 과세한다. 물론 이런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점진적인 절차들이 있긴 했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한 기업 주식 100억원(2000년)에서 50억원(2013년), 25억원(2016년), 15억원(2018년), 10억원(2020년)으로 낮췄다. 즉 한 기업의 주식을 10억원 이내로만 보유하고 있으면 수천억원의 주식 자산을 보유했더라도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를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2023년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으로 상향했다.

한편, 주식 양도소득세를 매기기 위해 줄여준 세금도 있었다. 주식 거래에 부과되는 증권거래세다. 증권거래세율을 2020년 0.25%에서 2021년 0.23%, 2023년 0.2%로 인하했고, 올해 0.18%, 내년 0.15%까지 내릴 계획이다.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기 위해 증권거래세를 완화한다는 게 당시 여야 합의 사항이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모두 자본 소득에 예외 없이 과세하고 거래세를 거두지 않고 있었고, 당시 국회에서도 이런 방향으로 자본 과세를 시행하자는 논의가 무성했다. 그러나 증권거래세는 양도소득세를 매기지 않는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에게 적정한 수준의 세금을 매기는 장점이 있고, 과도한 단기 거래를 막아 주식시장을 안정화하는 순기능도 있다. 게다가 개인투자자들의 단기 투자가 잦은 한국 증시의 특성으로 인해 증권거래세의 세수입이 무시 못 할 정도로 큰 규모다. 2021년엔 10조원, 2022년엔 6조원 넘게 걷혔다. 조세저항도 전혀 없는 세금 제도다.

따라서 이제라도 다시 제안한다.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할 게 아니라 기존대로 도입하되 점진적인 요소를 더해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 연간 공제하는 매매차익의 금액을 2억원부터 5000만원까지 천천히 낮춰갈 것을 제안한다. 대신 증권거래세의 세율은 2023년 수준인 0.2%를 유지하자. 물론 구체적인 공제금액과 세율은 세수입의 규모를 감안해 일부 조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원칙과 방향성이다. 근로소득처럼 자본소득에도 예외 없이 과세하고,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차별적인 세제를 공정하고 단순하게 바꾸는 방향은 유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한 발언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기업들은 ‘순자산 대비 기업가치(PBR)’가 다른 국가들의 기업보다 낮아 오랜 기간 저평가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저평가를 받는 주요 원인은 지배주주들이 다른 주주의 이익에 반해 기업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이런 지배주주들의 사익 추구를 막지 못한 탓도 컸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이익집단에 포획돼 제 기능을 못 해서였다. 최근 정부가 내린 공매도 금지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조치는 과연 이익집단에 포획돼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장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일까. 어쩌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 한국 기업의 지배주주가 아니라 정부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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