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총회 ‘화석연료 퇴출’ 합의 안갯속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바이든 등 주요국 정상 불참…개최국 UAE는 석유세일즈 의혹

12월 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자베르 의장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이나, 시나리오는 없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로이터연합뉴스

12월 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자베르 의장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이나, 시나리오는 없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198개국 대표들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중반을 넘어섰다. 이번 총회에서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후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평가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GST)’이 첫 시행되고,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저개발국가에 대한 선진국들의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이 마련되는 등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인 화석연료 퇴출 논의는 겉돌고 있어 맹탕 총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개최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기후 총회를 석유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논란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가운데 지난 11월 30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COP28은 주요국 정상들의 불참과 개최국 UAE의 석유세일즈 의혹으로 초반부터 잡음이 일었다. 기후변화를 주요 정책 현안으로 삼아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2021년 영국 글래스고,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기후총회에 모두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중재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기후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건강상의 이유로 개막 직전 일정을 취소했다. 미국과 함께 탄소 배출국 1, 2위를 차지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불참하며 이번 총회에서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힘이 실리기 어려우리라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미·중 정상을 대신해서는 각각 카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셰전화 중국 기후변화 특사가 참석했다.

12월 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활동가들이 화석연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12월 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활동가들이 화석연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개최국 UAE는 기후 회의를 석유 영업장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도마 위에 올랐다. 개막 사흘 전 영국 BBC 방송이 비영리단체 기후보고센터와 공동 입수해 공개한 문건에서 UAE가 이번 기후정상회의에 앞서 외국 정부들에게 자국의 석유·가스 기업을 홍보하고 거래를 제안할 계획이었던 것이 드러나면서다. 공개된 문건에는 COP28의 의장인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 중국·브라질·독일·이집트를 포함한 15개국과 화석연료 거래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 담겼다. UAE 국영석유회사인 아드녹(Adnoc)과 재생에너지 회사인 마스다르(Masdar)에 대한 각종 홍보자료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는데, 알 자베르 의장이 아드녹의 최고경영자(CEO)와 마스다르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화석연료 업계 로비스트 수 역대 최대

COP28 측은 “해당문서는 COP28 관련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번 총회가 중동 기업들을 비롯해 각종 이익 관련 업체들의 로비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은 계속되고 있다. 후원 기업에 제공하는 입장권을 중동의 은행이나 통신사, 자동차 회사들이 대부분 쓸어담은 데다 이번 총회에 참가하는 화석연료 업계 로비스트의 수 또한 역대 최대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환경단체 ‘큰 오염자들 내쫓기’(킥 빅 폴루터스 아웃·Kick Big Polluters Out)에 따르면 COP28에 접근 권한을 얻은 화석연료 이해 관계자는 최소 245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총회와 비교해 거의 4배가 넘는 규모로 소말리아, 차드, 통가, 솔로몬 제도, 수단 등 10개 기후 취약국 대표단을 모두 합친 숫자(1509명)보다 많다. 쉘, 토탈, 엑손모빌 등 대형 화석연료 업체 다수가 이번 총회에 로비스트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페인 그룹 이본 아프리카의 코디네이터 케롤라인 무투리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기후총회는 이들과 같은 업체가 ‘그린워싱’을 시도하고 기후대응 행동을 방해하는 장이 됐다”고 말했다. 그린워싱은 기업들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가디언은 기후 회의에서 벌이는 기업들의 로비 활동이 화석연료 업계뿐만 아니라 금융, 기업식 농업, 운송 분야 등 기후위기와 깊이 연루된 다른 부문에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육가공 업체인 JBS를 비롯해 글로벌 유제품 플랫폼(GDP)과 북미육류협회(North American Meat Institute) 등 축산·낙농업 대기업들도 대거 홍보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COP28에서 처음으로 식량과 농업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환경 제재와 매출 감소를 우려한 이들 기업이 대규모 로비를 준비했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평화 회의에 무기 거래상을 초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난과 함께 기후 회의에서 이해관계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케냐의 기후활동가 에릭 은주나는 “업계가 회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위기 최전선 지역들을 위한 기후 정의를 달성할 수 없다”며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회의 주최자에 대한 이해 상충을 방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인 기후총회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건 주요 산유국들이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다른 목소리를 내며 최종 합의 도출에 진통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12월 5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단계적 감축이 당사국총회 최종 합의문에 담기는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만장일치 방식으로 채택되는 당사국총회 최종 합의문 도출에 먹구름이 낀 셈이다. 앞서 알 자베르 총회 의장도 지난 11월 한 행사에서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보도된 후 논란이 커지자 해명에 나선 바 있다.

기후환경단체들 사이에선 이번 총회의 핵심 의제인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결국 산유국들의 반대로 결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2021년 COP26에서는 합의문 발표 직전 인도와 중국 등의 반대로 석탄 화력발전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 ‘감축(phase down)’으로 조정된 바 있다.

유럽의 친환경 모범국들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주장하는 반면, 산유국과 개도국들은 이에 반대하며 맞서고 있다. 개도국들은 20세기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탈 화석연료 주장을 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한다. 화석연료 퇴출을 반대했던 UAE가 올해 COP28의 의장국을 맡으면서 올해 역시 화석연료 감축에서 퇴출 합의로의 진전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일찌감치 나오기도 했다.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이번 총회에서는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성과가 쏟아졌다. 지난 12월 2일 전 세계 50개 에너지 회사들이 2030년까지 석유나 가스 시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배출량을 80% 줄인다는 내용의 ‘석유와 가스 탈탄소화 헌장’에 서명했고, 117개국이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는 협약에 참여했다.

기후 관련 싱크탱크인 파워시프트아프리카의 무함마드 아도우 소장은 그러나 각국 대표들에게 구속력 없는 공약에 정신을 팔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COP28은 무역 박람회나 기자회견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며 “합의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날짜를 얻는 일이 남은 기간 동안 각국이 두바이에서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