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 근로자 개인이 전적으로 감당하라?
A는 두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입니다. A가 다니는 회사는 고속도로 영업소 용역업체였는데, A는 출산과 양육을 이유로 초번 근무는 면제받고, 공휴일에는 연차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대체해 실제로 근무하지 않았습니다(초번 근무는 교대제 근로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런데 그 용역업체가 바뀌고 바뀐 용역업체가 A의 고용을 승계했습니다.
바뀐 용역업체는 A와의 근로계약에서 “수습(시용) 기간 3개월 중 문제가 있는 경우 사용자가 본채용을 거부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취업규칙에는 “사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근무 시간 변경을 거부하지 못한다”라는 내용도 규정돼 있었습니다. 즉 고용 승계 과정에서 3개월의 시용계약을 체결한 셈입니다.
A는 어린아이가 있어 초번 근무와 공휴일 근무가 불가능했습니다. A는 ‘종전 용역업체에서는 공휴일에 근무하지 않았고 광주 제2순환도로 다른 영업소의 서무주임도 공휴일에 근무하지 않으며, 오랜 근무형태를 하루아침에 변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경위서를 제출했습니다. 회사는 ‘회사가 지정한 시간에 무단결근이 계속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라는 취지로 화답했습니다. 회사는 실제로 A의 시용 종료 후 본채용 거부 통보를 했습니다.
부모의 자녀 양육권과 양육의 의무는 헌법에서 나오는 중요한 기본권입니다(헌재 98헌가16). 남녀고용평등법은 헌법상 기본권을 구체화해 근로자의 양육을 배려하기 위한 국가와 사업주의 일·가정 양립 지원 의무에 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의5는 사업주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육아기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업무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 조정, 연장근로의 제한, 근로시간의 단축, 탄력적 운영 등 근로시간 조정을 비롯해 소속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라고 합니다.
대법원은 최근 이 문제에 관해 중요한 판결을 했습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발생하는 근무상 어려움을 육아기 근로자 개인이 전적으로 감당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고, 사업주는 그 소속 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를 부담한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사업주가 그 소속 육아기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 등에서 배려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의 필수적인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업주의 배려의무는 ▲근로자가 처한 환경 ▲사업장 규모와 인력 운영 여건 ▲사업 운영상의 필요성을 종합해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3. 11. 16. 선고 2019두59349 판결).
그래서 이 사건의 결론은? 부당해고입니다. 배려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A는 길었던 해고기간 동안(2017. 6. 30부터 약 7년간) 임금 상당액을 받게 됐습니다.
“자네를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아”
B는 회사에 입사해 결혼하고 임신했습니다. 보통의 노동자들처럼 3개월간 출산휴가를 가졌고, 이어서 1년간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B는 육아휴직을 마친 뒤 당연히 육아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B가 업무에 복귀했을 때, 상사는 책상을 제공하지 않고 이전에 하던 업무 대신 창구안내와 총무업무 보조를 맡겼습니다. 회사의 이사회에서 B를 제외한 간부와 직원들이 B를 직장에서 내쫓기 위한 전략을 논의했습니다. B에게 잠시 제공된 책상은 나중에 치워졌고, B는 창구에서 서서 일해야 했습니다. 상사는 B에게 더 이상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자네를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아. 억울하면 검찰, 청와대에 가서 찔러라. 나는 목을 내놓고 산 지 오래돼서 무서울 것 하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B는 우울증이 생겼고,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B는 법원의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B를 휴직 전과 같은 업무에 복귀시키지 않음은 물론 B 스스로 퇴직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직원회의를 통해 왕따 분위기를 선동하고, 회사의 임원이 직접 나서 원고의 책상을 치워 버리고, B를 비하 모욕하는 등 부당하게 대우한 것은 B에 대해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회사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광주지법 2012나10375: 확정). 위자료 액수는 2000만원이었습니다. 사장이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덤이었습니다. 육아휴직에 대해 불이익을 줬다는 이유였습니다.
취업규칙에 “육아휴직 쓰면 승진 대상서 제외”
임직원 1000여명인 회사는 취업규칙에 “육아휴직자에 대해 기본급 인상률을 조정해 임금 인상을 보류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승진 규정에는 “감봉 이상의 징계처분 또는 휴직 중(개인사유·신병·육아휴직)에 있는 자”를 승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도 두었습니다. 취업규칙에서부터 육아휴직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규정에 따라 C의 출산휴가 직전에 파트장 직책에서 해제했습니다. 특히 1년간 육아휴직 후 복직한 C를 일반 직원으로 강등시켰으며 다른 부서로 배치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2022년 5월부터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노동위원회 시정 제도’가 도입됐습니다(고용상 성차별 당했다면 노동위 찾아가세요-노동법 새겨보기 11). 중앙노동위원회는 2023년 9월 4일, 육아휴직 후 복직한 근로자를 승진 대상에서 탈락시킨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금지하는 ‘성차별’이라고 보고, 해당 사업주에 시정명령 판정을 했습니다. 중노위가 신설된 제도로 남녀를 차별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법원은 작년, 사업주는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에게 육아휴직을 이유로 업무상 또는 경제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하고 복귀 후 맡게 될 업무나 직무가 육아휴직 이전과 현저히 달라짐에 따른 ‘생경함·두려움’ 등으로 육아휴직의 신청이나 종료 후 복귀 그 자체를 꺼리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봤습니다(2017두76005). 이번 중노위 판정은 육아휴직 전후의 실질적인 불이익이라는 것에는 승진 기회에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점도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사회문제화되는 우리 현실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비롯한 관련 제도는 더욱 장려되고 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장될 필요성이 있다”라는 일갈은 이미 11년 전 광주지법 손해배상 판결문에서 발견됩니다. 그래도 2012년 합계출산율은 1.29명이었는데, 2023년은 0.7선도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임신하고 육아휴직 쓰면 강등하고 퇴사하라고 종용하는 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육아기 근로자를 보호하라는 대법원판결도 7년이나 걸려 만들어진 ‘지연된 정의(Justice delayed)’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땜질식 대처를 할 게 아니라 노동법의 빠른 제재와 적절한 지원이 너무나 절실한 ‘출산율 0.7 시대’입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