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만 외치는 ‘불공정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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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KBS 신임 사장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지난 11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아트홀로 들어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박민 KBS 신임 사장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지난 11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아트홀로 들어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대국민 사과 말고 사퇴를 선언하십시오!”

지난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KBS. 박민 KBS 신임 사장이 기자회견장 앞에 나타나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 30여명이 박 사장을 향해 일갈했다. 노조의 항의를 의식해서였을까. 15여명의 관계자에게 둘러싸여 이동하는 박 사장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취임 첫날인 전날에 KBS 주요 뉴스 진행자와 간부급 70여명을 교체한 박 사장은 이날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지난 정권하에 KBS가 내보낸 보도는 “불공정했다”며 허리 굽혀 사과했다. 이어 “불공정 편파 보도로 물의를 일으킨 기자나 PD는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성·편파 보도’를 판단하는 기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 사장은 “공정의 핵심은 정확성, 균형성, 객관성”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KBS 38기 기자 14명은 다음날 성명을 통해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가 자사 보도를 불공정했다고 스스로 선언할 정도라면 최소한 불공정의 기준을 마련하고, 그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라면 새로운 수뇌부가 보도본부 구성원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임과 동시에 ‘인사 칼바람’을 일으킨 박 사장은 평일, 주말 <뉴스9>를 비롯한 주요 뉴스 진행자를 교체했다. 기존 앵커들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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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