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이효리가 반려견 모카를 품에 안고 있다. 모카는 지난 7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SNS 갈무리
가까운 친구 Y는 하루걸러 한 번 ‘브이’ 이야기를 꺼낸다. 브이는 Y 부모님이 기르는 개의 이름이다. 2013년 입양해 10년 동안 정이 들었다. 종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쫑긋 선 귀, 긴 코에 다리가 쭉 뻗어 진돗개나 사냥개 혈통이려니 한다. 노란 몸 군데군데 흰 털이 자란 모습도 추정에 힘을 보탠다. 잘 생겨 ‘도베르만’ 같다가도, 끝이 처진 슬픈 눈 탓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브이를 두고 Y 가족이 신경 쓰는 건 혈통이 아니라 버릇이다. 몇 년 전 자취를 시작한 Y는 명절이나 돼야 브이가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 비교적 긴 시간 지켜본다. 브이가 ‘왈왈’ 짖고 날뛴 뒤에야 그 앞에서 해선 안 될 행동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브이는 대화 중 한 사람이 다른 이 몸에 손을 올릴 때 참지 못한다. 만지는 사람을 물어뜯으려는 듯 달려든다. 아버지가 어머니 어깨나 허벅지를 다정히 만지는 게 왜 문제인가. Y 가족은 차츰 브이가 손대는 행동 자체나 손 닿는 신체 부위가 아닌, 건드리는 속도에 민감하단 걸 알게 됐다.
Y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 속 일화를 꺼냈다. ‘토토가’ 섭외차 유재석이 이효리를 찾아간 날, 그 집 개 모카가 춤추는 유재석의 다리를 물었다. 방송 자막은 ‘모카는 까부는 유재석이 못마땅했다’는 내용이었지만, 이효리가 후일 개인 블로그에서 전한 배경은 달랐다. 모카는 폭력적 남성과 살던 한 여성이 동물보호소에 맡긴 아이로, “누가 큰 소리로 말하거나 큰 몸동작을 하거나 엄마에게 손을 대면 예민해져 공격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브이의 예민함도 같은 이유일까. 연유를 묻는 대신 Y는 브이 앞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방문객에겐 미리 ‘브이가 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쁜 마음은 아니라고 애정이 어린 경고를 날린다.
이따금 기사 댓글을 볼 때면 Y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사회 곳곳을 취재한 기록에 독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공감보다는 분노 또는 증오에 가깝다. 소년범 처벌 강화를 주문할 뿐, 이들이 어떻게 학대당하고 버림받았는지, 왜 범행까지 나아갔을지 짐작하는 시도는 찾기 어렵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관련 기사 반응도 대개 비슷하다. 애도보다 지겹다는 말이, 당사자의 슬픔보다는 정치적 이용에 대한 근심이 앞선다. 유족이 혹여 날 선 말이라도 내뱉으면 한 줌 동정마저 짜증과 손가락질로 전환된다. 타인의 상처에 공감 못 하는 것 이전에 공감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읽힌다.
Y가 보여준 또 다른 영상엔 동물보호센터 직원이 내민 손을 보고 몸을 기이하게 꺾는 강아지가 나왔다. 평생 학대받다 보니 쓰다듬는 손마저 주먹질의 전조로 오해한 듯했다. 영상의 조회 수 100여만, 댓글은 공감 일색이었다. 말 못 하는 동물엔 공감이 쉬운 반면, 이것저것 본인 피해에 악다구니하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걸까.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애석하게도 (우리는) 동료들에게는 보여주기 꺼려지는 과도한 친절함을 아이들에게는 쉽게 베푼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엔 제도니 시스템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변해야 세상이 나아진다고 믿었지만, 요즘의 나는 이런 문장을 지지한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