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왜 구청 문 위에 올라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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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어머니는 왜 구청 문 위에 올라갔을까

서울 용산구청 관계자들이 구청 정문을 닫았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0월 24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참사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닫힌 문을 열지 못해 자신의 키보다 높은 철제문 위에 올라 절규했다.

“제가 대비를 하는 것이 오히려 직권남용입니다.” 박 구청장은 검찰조사에서 “인파 관리나 군중 통제는 경찰의 업무”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그 장소를 모르면 구청장에 어떻게 출마하나요.” 이태원에 거주하는 박 구청장에 사고 장소를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느냐고 검사가 묻자 그는 이같이 말했다. 참사 장소에 대해 자신 있게 알고 있다던 그였지만 “그 골목을 이용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유추해본 적도 없어요”라고 진술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 구청장은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신청한 보석 청구가 인용돼 석방된 뒤 구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참사 이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하지 못했고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벽처럼 막힌 구청 문에 오른 고 김현수씨의 어머니 김화숙씨는 회견에서 발언하는 내내 고개를 떨구고는 울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서럽고도 서러웠다.

<사진·글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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