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법원은 자격이 없는 사람을 인사위원회에 참여시킨 사례에 대해 부당해고로 판결했다. / 픽사베이
인사(징계)위원회 회의록 중에서
위원 3 징계 제일 큰 게 뭐야?
인사팀장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제일 높게 줄 수 있는 건 정직 6개월. 노무법인도 징계해고까지 간다는 얘기는 잘 안 하거든요. 최대 정직 6개월까지는 가능하다고 했어요.
위원 3 그럼 3개월에서 6개월 사이로 줘야겠네요.
위원 2 그런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이제 이런 친구들을 내보내는 방향으로 인사가 좀 약간 가는 게 맞지 않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고요.
위원 3 그리고 이제 그렇게 편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직장 내 불만족 세력으로 커갈 가능성이 되게 많은 친구잖아, 성향상 보면. 소명자료 보면 결국 하나도 불인정한다는 얘기 아니야.
회사는 노동자를 해고했고, 노동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법원은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인사위원회 회의록의 기재에 의하면, 회사는 제1차 인사위원회에서의 징계양정에 관한 논의에서 이미 제1차 인사위원회 당시 징계사유를 일부 인정하지 아니하는 근로자에 대한 징계양정을 ‘내보내는 방향’으로 사실상 징계면직을 결정했음을 알 수 있다.”(서울고등법원 2021누63817 부당해고 판결: 대법원 2023두30161 확정)
이 사건은 정면으로 인사위원회 절차 위반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판결은 인사위원회 회의록 중에서 위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캡처 후 인용해 ‘내보내는 방향’(즉 해고)으로 이미 결론을 내리고 구색 갖추기로 형식적인 회의를 한 점을 비판했습니다. 판결문에서 ‘내보내는 방향’이라는 문구를 강조하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붙였습니다.
징계하려면 징계사유가 있어야 하고, 여러 징계 중 사유에 걸맞은 처분이 필요합니다. 그 합당한 처분 정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과 결과를 징계양정이라고 합니다. 징계양정 판단을 할 때 결론부터 정해놓고 회의하는 경우, 제삼자로부터 부당해고 판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일러주는 사례입니다.
해당 인사위원회 회의록(을나 제15호증)은 노동자가 아니라 회사가 제출했습니다. 회사가 절차상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기록해둔 인사위원회 회의록은 오히려 회사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과장은 되고 대리는 안 되는 것
A씨는 입사하기 전 모두 17개 회사에 근무했고, 자주 이직했습니다. 1년 이상 근무한 회사가 2개에 불과했습니다. 이전에 담당한 업무가 인사업무가 아닌데, 이력서에는 총 4개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장기간 인사업무를 담당한 것처럼 경력을 허위로 기재했습니다.
B회사는 10년차 경력의 인사총무팀장을 채용하려 했고, A씨의 경력 사칭을 발견했습니다. 회사는 사전에 A씨의 경력이 허위였음을 알았더라면 채용하지 않았을 거라면서, A씨를 해고했습니다. A씨를 두고 열린 인사위원회에 위원장 I본부장, 위원 W상무이사, X상무이사, Y부장, H대리가 있었는데, 문제는 ‘H대리가 참여한 사실’이었습니다. B회사의 취업규칙상 인사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는 직급은 한정돼 있었습니다. 회사 취업규칙 제31조는 “대표이사와 부서장, 또는 그에 준하는 직급의 사원 중 대표이사가 임명하는 자를 포함해 5명 이내로 구성하고 근로자위원 1명도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H대리가 근로자위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회사는 취업규칙 제31조에서 정한 ‘대표이사와 부서장 또는 그에 준하는 직급의 사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경영기획실 소속 대리 H를 근로자위원으로 선정해 징계위원회, 징계 재심위원회를 구성했는 바, 이는 절차상 중대한 하자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해고는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1구합85778: 회사의 항소는 기각됐고, 현재 대법원 상고 중).
회사로서는 현실적으로는 대리와 과장 간에 얼마나 엄청난 업무상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회사는 “취업규칙 규정의 조화로운 해석을 고려할 때 경영기획실 대리 H를 근로자위원으로 선정하더라도 징계위원회의 구성에 하자가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취업규칙 문구를 엄격히 해석해 ‘과장급’ 이상과 ‘대리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봤습니다. “회사의 주장은 과장급 이상의 사원은 근로자위원이 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취업규칙상 과장급 이상의 사원을 근로자위원으로 선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회사의 위 주장은 취업규칙 제31조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벗어나는 해석으로써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보았습니다.
인사팀장의 고민은 깊어져 간다
위 ‘대리급 사건’이 인용한 대법원 2020두31361 사건 역시 C회사에서 자격이 없는 사람을 인사위원회에 참여시켰기 때문에 부당해고라고 판결했습니다. C회사의 취업규칙은 “징계위원장은 대표이사가, 위원은 총괄 임원이 해야 한다”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원에 ‘일반 상무’와 ‘(임원 아닌)부문장’이 포함됐고, 법원은 위원으로 될 수 있는 총괄 상무가 있었는데 이들을 제외했다면서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위 사례들의 기본 법리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위반해 징계위원회를 구성한 후 징계처분했다면, 징계사유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사로서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절차 규정을 간단히 삭제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서도 근거가 된다는 사례가 발견됩니다. D회사의 경우는 취업규칙 조항이 없다는 것을 믿고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근로계약서에는 “징계위원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라는 한 줄이 있었고, 역시 그 규정으로 인해 절차 하자가 인정됐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023년 5월 D회사의 부당해고를 인정했습니다.
인사위원회는 비위 사실이 있는 노동자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는 장입니다. 인사위원회 심의 결과는 임명권자의 징계 여부 결정에 중요한 자료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노동자의 비위가 아무리 많고 중한 사유가 있더라도, 절차 위반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회사로선 굉장히 난감해집니다. 해고가 있은 뒤 수년 지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회사는 그때까지의 임금 상당액을 일괄 지급해야 하고 일단 원직 복직도 시켜야 하니, 그 파급효과는 상당히 큽니다. 인사팀장의 고민이 깊어져만 갑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