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김 사장(남·60대). 노동자 10명에게 임금 63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매출액 대부분을 또 다른 할인마트의 인수자금으로 유용했고, 채권추심을 피하려고 아들 명의의 계좌를 사용하면서 주로 현금을 사용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청에 ‘임금체불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김 사장은 노동청에서 연락이 오자 “노동법 뭔데? 그냥 조사해서 올려”, “한번 벌금 내면 말아. 그렇죠?”라고 하면서 근로감독관의 여러 번 출석요구에도 고의로 불응했습니다. 노동청은 끝내 통신영장,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해 김 사장을 체포했습니다. 법원 역시 김 사장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모텔 등에서 숙박하는 등 주거가 불분명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아 김 사장을 ‘근로기준법’ 및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체불에 벌금 권하는 사회
임금지급일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임금체불’입니다. 임금의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해당합니다.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할 때는 금품 청산의무가 있는데(근로기준법 제36조), 이때도 임금체불에 포함해 처리합니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임금체불이 많습니다. 연도별로 2020년 1조5800억원, 2021년 1조3500억원, 2022년 1조3500억원입니다. 피해 근로자는 2020년 29만5000명, 2021년 25만명, 2022년 24만명으로, 일본의 약 18배입니다(고용노동부 2023년 5월 보도자료).
임금체불 문제가 발생할 때 노동청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돈을 달라는 의미로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하고 그래도 임금 지급이 되지 않거나, 주더라도 시기를 늦추어 주면 형사처벌해 달라는 의미로 ‘고소장’을 제출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됩니다.
임금체불은 노동자 삶의 난이도를 급격히 높이는 중대 범죄입니다. 위 사건에서 모두 6300만원을 10명으로 나누면 1명당 600만원씩, 마트 노동자들에게서 두세 달간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삶이 고단해지고 가정에 불화도 생깁니다. 벌금 내고 말겠다. 김 사장의 마음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반성문 적당히 내고 10개월 살다 나오자. 나와서 파산 신청할 거고, 그래도 내가 주나 봐라.’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으면 체불임금이 없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형사와 민사는 다릅니다. 형사책임은 국가에 부담하는 것이고, 민사책임은 개인 간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신성한 밥줄인 임금을 체불한 형사 문제는 일반적인 민사 채무(자재비·대여금·용역비·투자금)를 주지 않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형사처벌 문제입니다(적어도 이론상 그렇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공짜 야근’ 상습·반복 임금체불자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을 제한하고 ▲공공입찰 시 불이익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에 체불 자료를 제공하고 ▲금융기관의 신용 제재 등의 대책을 세웠습니다. 고액 체불사업주의 실명과 사업장 명단을 공개하는 제재도 담겼습니다.
그래도 사장 입장에서 실제로 겁나는 것은 형사처벌 중에서 인신구속입니다. 그런데 위 사건과 같이 구속까지 되는 사건은 거의 드뭅니다(한겨레 2022년 10월 3일자 ‘임금 주느니 벌금? 급여 떼먹은 사장님 3만9544명, 구속 단 6명’). 실제로 처벌되는 벌금액이 체불액의 30% 미만인 경우가 77.6%나 된다고 합니다. 체불은 ‘마땅히 지급해야 할 것을 지급하지 못하고 미룬다’는 의미에 불과하니 임금체불이 범죄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임금체불 대신 임금절도(wage theft), 임금사기(wage fraud)라는 용어를 쓰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경향신문 기사 2022년 10월 23일자 ‘임금체불이라뇨, 임금절도입니다’). 국가가 사장님들에게 “벌금 내고 말지”라고 하는 선택을 막지 못하는 셈입니다.
단순히 사용자가 경영 부진으로 자금압박을 받아 임금을 지급할 수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임금체불의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업 좀 성실히 해보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임금체불자로 몰려 억울한 사례도 있습니다. 임금체불에 대한 사업주의 대처 유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성실하지만 불운한 사장을 위한 변론
첫째, “내가 사장이 아니다”인데, 주로 이른바 바지사장들입니다. 등기상 대표이사라 하더라도 탈법적인 목적을 위해 명목상 대표이사로 등기해 두었을 뿐 회사의 모든 업무집행에서 배제돼 실질적으로 아무런 업무를 집행하지 아니하는 대표이사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대법원 99도2910).
둘째는 내가 “현재” 사장이 아니다는 논리인데, 사용자 지위를 상실하거나 취득한 경우입니다. 이럴 때 변경 전·후의 각 대표자는 본인이 사용자로서 대표자 지위에 있던 기간의 임금체불에 대해 각각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퇴직금의 경우는 근로자 퇴직 후 ‘14일이 경과할 당시’에 사장이 아니라면 형사책임이 없습니다(대법원 2009도7722). 반대로 근로자 퇴직 후 14일 경과 당시 대표자로 선임됐다면 형사책임을 지게 됩니다(퇴직금은 퇴직 후 14일까지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14일이 기준입니다).
셋째는 “합의했으니 끝”, 즉 ‘반의사불벌죄’입니다. 그리고 진정을 넣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시정지시 기간 내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지급해버리면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 노동자의 명시적인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최저임금법 위반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같은 방법이 통하지는 않습니다.
넷째는 임금체불의 “고의”를 부정하는 방법입니다. 고의의 반대인 ‘과실’ 임금체불죄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용자가 나름대로 임금을 지급했다고 믿을 근거가 있었는데 잘못 지급했다는 다툼이 있는 경우입니다. 현실에서 많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대법원도 “임금 등 지급의무의 존재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사용자가 그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사후적으로 사용자의 민사상 지급책임이 인정된다고 하여 곧바로 사용자에 대한 근로기준법위반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0도14693). 그러면서 “사용자가 취업 규칙상 소정근로시간 조항이 유효하다고 보아 최저임금액에 미달하는 임금 차액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믿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2015도676)거나 “부가가치세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다툴 만한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어 고의가 없다”(2015도1681)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잠잠히 기다리기입니다. 즉 ‘시효’를 주장하는 방법인데, 임금채권의 형사 공소시효는 5년입니다. 그 시효는 월별 정기지급일마다 기산됩니다. 다만 임금채권의 민사 소멸시효는 3년이므로 소멸시효와 공소시효가 다른 점은 함정입니다. 어느 판결에서는 “변호인은 ‘이 사건 공소제기 당시 임금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돼 그와 관련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소멸시효와 공소시효는 제도의 존재 이유와 취지를 달리하므로 위 주장도 이유 없다”고 했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