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을 만드는 회사(타타대우상용차)에서 도난사고와 화재사고가 있었습니다. 회사는 시설물 안전, 화재 감시를 이유로 공장 외곽 울타리와 출입문, 출고장 등 주요 시설물에 CCTV 카메라 51대를 설치했습니다. 회사는 CCTV 카메라 설치에 관해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거나 노사협의회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CCTV 51대 중에서 평소에 작업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는 14대의 카메라가 싫었습니다. 근로시간 중에 회사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노동자 1026명의 서명을 받아 CCTV 설치와 운영에 반대한다는 항의문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회사가 CCTV 가동을 멈추지 않자, 노조 집행부 노동자들은 4차례에 걸쳐 CCTV 카메라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워 촬영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노조 집행부는 회사 운영과 관련된 시설물 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기소됐습니다.
근로자 감시설비법
어떤 행위를 범죄로 형사처벌하기 위해서는 3단계를 공식처럼 거쳐야 합니다. ①첫째로 그 행위가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에 해당해야 하고(범죄구성요건 해당성) ②다음으로 그 행위가 법률상 허용되지 않아야 하며(위법성) ③마지막으로 그 행위를 한 사람에게 그 행위에 대한 책임(책임)이 인정돼야 합니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정당행위라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은 그 행위가 적극적으로 용인, 권장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상황에서 그 행위가 범죄행위로서 처벌 대상이 될 정도의 위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대법원 2021도9680).
CCTV는 시설물 보안 및 화재 감시라는 정당한 이익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고, CCTV 업무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고, 업무방해의 구성요건 해당성은 인정됩니다. 그런데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여기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반격할 수 있는 카드는 위법성조각사유로서 (1)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2)근로자참여법 위반, 그리고 (3)정당행위입니다.
(1)개인정보보호법은 공개된 장소가 아닌 장소에 CCTV를 설치할 경우 개인정보 수집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은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제1호),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로서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과 상당한 관련이 있고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제6호)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6호는 정당한 이익, 필요성, 명백성, 합리적 관련성이 인정되면 정보주체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용인한다는 의미입니다.
(2)한편 근로자참여법은 노사협의회가 협의해야 할 사항으로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설비의 설치’를 규정합니다(제20조 제1항 제14호: 다만 근로자 30인 이상 회사에 적용됨). 여기서 말하는 ‘근로자 감시설비’라 함은 사업장 내에 설치돼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효과를 갖는 설비를 뜻하고, 설치의 주된 목적이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CCTV를 설치하는 것은 근로자참여법이 정한 노사협의회의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위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대법원은 최근 CCTV를 가린 노조 집행부에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①회사가 근로자 대부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CCTV의 정식 가동을 강행함으로써 피고인들의 의사에 반해 근로 행위나 출퇴근 장면 등 개인정보가 위법(개인정보보호법·근로자참여법 위반)하게 수집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었던 점 ②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일단 그에 대한 침해가 발생하면 사후적으로 이를 전보하거나 원상회복을 하기가 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대법원은 노조 근로자들이 다른 구제수단을 강구하기 전에 임시조치로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워 촬영을 막은 것은 행위의 동기나 목적, 수단이나 방법 및 법익의 균형성 등에 비춰 그 긴급성과 보충성의 요건도 갖췄기 때문에 ‘정당행위’이고, 앞서 말한 3단계 공식 중 2번째인 위법성 단계에서 탈락돼 무죄라고 봤습니다(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도1917 판결).
노동감시 vs 노동기본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에 관해 함부로 촬영되거나 그림으로 묘사되지 않고 공표되지 않으며 영리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권리를 갖습니다. 그 권리가 초상권입니다. 초상권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 제1문에 따라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입니다. 원칙적으로 초상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가 됩니다(대법원 2004다16280).
그럼에도 회사 입장에서는 시설 보호, 노동자 안전, 영업비밀 보호, 업무 효율성 향상 등 경영상의 목적으로 감시설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충돌하는 지점이 노동감시입니다. 노동감시란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의 작업상황이나 행동을 모니터링하는 행위입니다(노동감시 대응 가이드·2021).
시설안전·영업비밀 보호 등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인 노동자의 권리보다 우선할 때는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정 노동자가 일과시간 중 집에 간다는 제보를 받고, 그의 집 앞에서 26일간 평균 3시간 34분 무단으로 귀가하는 영상 채증을 했는데, 감사부서 직원의 채증 행위는 사생활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그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만 했다고 보아 불법사찰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은 아니고, 해고의 적법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도 있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41337: 항소 중).
디지털 장치 도입에 따른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대해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목적, 수집 항목 등을 사전에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때 노사관계의 불균형을 고려하면 ‘동의’를 근로자의 진의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동의 시에는 ⅰ)필요한 최소한의 처리 ⅱ)동의 내용의 명확한 고지 ⅲ)능동적 의사 확인 ⅳ)선택권 보장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고용노동부·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인사노무편·2023).
회사가 노조 소속 노동자를 감시할 목적으로 CCTV를 사용했다가 부당노동행위로 판단받은 사건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한 굴착기 부품 제조업체에서 CCTV를 통해 노조 간부 4명과 조합원 1명에 대한 근태를 확인하고(총 26회 약 756분) 이에 대한 문답서를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징계에 대한 위협으로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3. 5. 11. 선고 2021구합69653 판결: 항소 중).
정리하면, 회사가 노동감시와 관련이 있을 법한 CCTV를 설치하고 운용할 때는 노동자의 개별적인 동의와 함께 노사 협의가 필요합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회사에 설치되는 CCTV가 당연한 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