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수의료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4층에서 떨어진 여학생이 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소위 구급차에서 ‘뺑뺑이’를 돌다가 결국 사망한 사건도 있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고열을 앓던 어린이가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5개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당한 뒤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좀더 전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는 곳에서 뇌수술할 의사가 없어 해당 병원 간호사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호사가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내고, 의사들은 의사들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유와 원인을 제시하고 해법을 제시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필수의료라 불리는 내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을 지원하는 전공의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낭만’을 추구하던 의사들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왜 외과의사를 하고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외과의사 중에서도 삶의 질이 좋지 않다는 이식외과의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됐다. 이전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산 이유는 누구나 다 그렇듯이 살다가 보니 그렇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 가지고 있던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어렸을 적 꿈은 의사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의대에 진학하게 됐고(그 당시는 지방 의대가 서울 SKY대학의 인기과보다 들어가기 더 쉬웠다), 또 외과가 재미있고 보람 있어 보여 외과의사가 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장기이식이 좋아 이식외과의사가 됐다. 지나고 보면 내 선택의 결과로 된 셈이다. 지금까지 외과의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죽어가는 사람 생명의 불꽃을 다시 살리기 위해’, ‘내 한 몸 희생해서 여러 사람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와 같은 고귀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외과의사가 되기로 한 측면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게 주된 요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낯간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장기 적출 때 느끼는 책임의 무게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과 직업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곳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외과의사의 사명감이나 직업윤리가 다른 직종보다 더 투철하고 비장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어깨에 지워지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특히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해 말기장기부전이 있는 분들에게 이식하는 이식외과의사의 경우는 그러한 사례가 좀더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도 소아 뇌사자의 간 적출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의료사고로 짧은 생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 했던 아기였다. 아기의 배를 열기 전에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인이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기 어머니께서 특별히 추도사를 적어오셨다. 추모사를 읽는 장기기증원 직원분도, 추모사를 듣고 있는 의료진도 모두 눈물이 나서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네 덕분에 행복해했던 사람들이 많아 엄마는 너무 기쁘단다. 엄마에게,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고 평생 항상 감사하면서 살게…. 우리 예쁜 딸 만나 행복이 뭔지 가르쳐줘서 정말 고맙다….”
추모사가 끝난 후에 어린 아기의 배를 열고 간을 적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돼보는 이런 경험은 사실 외과의사가 아니면 쉽게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러한 책임감만 가져야 한다면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 외과의사끼리 서로서로 수술을 통해 소통하고 배우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다. 다른 직종에서는 드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의형제처럼 지내는 노르웨이 이식외과의사 ‘형님’이 날 보러 양산에 놀러 오셨다. 마침 뇌사자 수술이 많이 생겨 그분과 사흘 동안 췌장 재이식, 신췌장 동시이식, 응급수술(지혈술), 생체 신장 이식수술을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형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재 더는 노르웨이에서는 이식수술을 못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와 함께 장기 이식수술을 시행하면서 무척 행복한 모습이었다.
수술을 통한 소통의 기쁨도 있기에
노르웨이는 인건비가 비싸다. 의료제도가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라 간이나 췌장 이식 같은 큰 수술도 경험이 부족한 레지던트 1명 정도만 데리고 수술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3명이 수술한다. 대신 노르웨이에서는 비싼 기구와 견인기 등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한다. 따라서 어느 나라 어느 회사의 어떤 수술 기구가 좋다는 식의 지식이 풍부하다. 또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수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다. 자연히 그에게서 그런 쪽의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형님이 다녀간 뒤, 그가 추천한 기구를 병원에 신청해 샀다. 인력이 부족한 지방 병원의 실정에 맞게 그가 가르쳐준 비법을 적용해 수술하고 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외과의사가 되면 인생을 좀더 ‘찐’하게 살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는 매우 만족한다. 비록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외과의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수많은 일을 겪고 있다. 좋기만 한 일은 아니겠으나, 나처럼 호기심이 많고 안 좋은 경험도 굳이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잘 맞는 옷처럼 어울리는 일인 듯싶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