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발됐다. 7월 20일 MBC라디오<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이낙연 측 윤영찬 의원은 ‘집중호우에 따른 수해복구 총력기간’이라는 점 이외에 애초 7월 11일에서 19일로 연기된 ‘명낙회동’이 연기된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말이다. “수해로 수많은 피해로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런 기사가 계속 나가는데 거기에 두분이 만나 악수하고 웃고 하는 게 한가해 보이지 않겠나. 아무리 행정적인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야당 지도자들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의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회동 약속은 이낙연 전 대표가 귀국하던 6월 24일 잡혔다. 이재명 대표가 전화해 ‘만나서 밥 한번 하자’고 제안을 건넸다. 윤 의원은 만남을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에 “어떤 의제를 가지고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인사하는 자리”라며 “어떤 부담을 갖거나 할 필요는 전혀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불발된 ‘명낙회동’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제 책임도 있다는 걸 잘 안다. 못다 한 제 책임을 다하겠다.” 지난 6월 24일,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 일성 중 대부분의 언론사가 뽑은 핵심 대목이다. 원고 없이 한 10여 분의 연설 바로 앞 대목에는 ‘모든 국정을 재정립하고 대외관계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바람이 있다. 이 전 대표는 일본에는 ‘원전오염수 해양방류를 중지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며, 미국과 중국은 ‘대한민국을 더 존중해야 옳다’고 말한다. 러시아에는 ‘침략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치와 외치에서 ‘이 지경’을 만든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데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표현은 외교적 수사에 가깝다. ‘못다 한 책임’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대선후보가 됐어야 한다는 말일까. 아니면 최소한 민주당 대선후보가 당선돼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날 연설에서 밝힌 ‘민주주의와 복지후퇴’를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일까.
경선으로 대선후보가 확정된 후,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현실적인 선택지는 둘이었다. 여의도 입법 활동 경험이 없는 두 사람, 윤석열 아니면 이재명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다음 대선. 민주당의 현실적 선택지도 현실적으로는 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아니면 이낙연이다. 이날 공항에는 1000여명의 이낙연 지지자들이 결집해 이낙연을 연호했다. ‘세(勢)’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공항 밖 여론 공간에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 왜일까.
귀국에 앞서 이낙연 전 대표는 책을 한 권 냈다. ‘이낙연의 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라는 책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신냉전의 길로 접어든 미·중 경쟁 국면에서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며,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다룬 부분이 1장부터 3장까지 내용으로 이 책의 중심 부분이다. 4장은 과거 국무총리를 지내며 만난 각국 정상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담고 있고, 5장은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로 ‘연성(軟性)강국’을 들고 있다. ‘신외교’를 주창하는 5장의 곳곳에는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 전 대표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부록으로 미국과 독일 대학에서 한반도평화를 주제로 강연했던 원고를 담았다. 책을 보면 이 대표가 직접 기술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기자 출신 특유의 단문으로 쓴 문장들이 이어진다. 놀라운 건 책도 그렇지만, 이 전 대표가 직접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정부 외교를 정면 비판하고 있는데도 민주당 지지성향 SNS나 커뮤니티의 반응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전 대표의 행보를 두고 여전히 민주당 진영, 특히 ‘친명’ 지지자 상당수는 지난 대선 당시 0.73%의 ‘패배’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선거 막판에 불거져 현재까지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리스크 핵심으로 똬리 틀고 있는 ‘대장동 의혹’을 꺼내든 당사자가 이 전 대표가 아니었냐는 비난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대장동 비리 범죄자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방관할 수 없다’며 지지자들 일부가 대선 막판 선을 넘어 윤석열 지지로 달려간 데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이낙연이 ‘불신’받는 이유
“누구라고 밝히진 못하지만, 이낙연 라인 쪽에서 이런 사건이 있다고 정보를 건넨 것은 사실이다. 저희도 대략적으로 듣는 것도 있고 확인하고 화천대유 쪽 입장도 들어보니 신빙성이 높고 제보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 같지 않아 기사를 내게 됐다.” 당시 ‘이재명 후보님, “(주)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기자수첩 칼럼을 써 이 문제를 최초보도한 박종명 경기경제신문 대표가 지난 7월 18일 통화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대장동 의혹을 최초제기하고 관련 소스를 준 게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캠프 측 아니었나라는 질문에 대해 “이낙연 라인에서 정보를 건넨 건 사실”이라면서도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여기저기서 억울함을 표하고 그쪽(이낙연 캠프)에도 상세한 정보를 많이 건넨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쪽에서 오픈하지 않고 덮어놓은 게 아닌가 싶다. 이낙연 캠프에 더 디테일한 정보를 건넨 것 같은데, 같은 당이라서 덮어놓은 것 같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낙연 쪽은) 받은 자료들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시비비를 빨리 가리는 편이 낫다.”
기자는 대장동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직전, “김만배 머니투데이 부국장이 설립한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조성한 현금흐름이 수상하다”는 제보를 받아 김만배 부국장과 통화했다. 박종명 대표가 위 칼럼을 게시한 다음 날이었다. 기자는 30여 분간의 김만배 부국장 인터뷰를 바탕으로 2021년 9월 21일 일문일답 인터뷰 기사를 썼다(“[단독] 화천대유 대주주 언론인 “이재명 지사와 무관…합법적으로 돈 벌었다” 기사 참조). 이 인터뷰는 나중에 공개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뉴스타파 전문위원이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대담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유일한 대장동 핵심인사 김만배의 언론인터뷰 기사다(지난해 11월 24일 출소한 김만배는 당시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하지 않고 어디서도 따로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자와 인터뷰 당시 김만배씨는 기자의 취재가 정치권의 ‘오더’에 따른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언론인이었으니 취재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냐”고 했지만, 그는 통화가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기자는 최근 당시 최초정보를 제공한 당사자를 다시 만나 문제 제기 경위를 들었다. 이 인사가 당시 이낙연 캠프 측에서 활동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대장동 관련 의혹 조사가 “당시 후보(이낙연)의 지시나 재가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알다시피 이낙연 전 대표는 기자 출신이다. 완벽한 팩트가 확보되지 않는 한 이야기를 꺼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김만배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정말 이 사람이 머니투데이 부국장이 맞는지부터가 의혹 대상이었다.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와 같이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 정도가 전부였다.”
이 인사에 따르면 이낙연 캠프가 대장동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해 7월 최기수씨라는 대장동 원주민 대책위 대표가 바리바리 서류뭉치를 싸들고 오면서부터다. 캠프와 상관없이 관련 TF팀이 만들어지고 검증작업이 시작됐다. 이 인사는 “공개돼 있지 않은 관련 회계자료 등을 사비를 들여 떼는 등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봤다”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인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증언을 덧붙였다. “당시 청와대에서 이 사안을 제대로 검증했다면 지금처럼 큰 정치적 이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련 제보를 받고도 이 사건이 자당의 유력 대선주자와 연결될 것으로 보이니까 선을 긋고 덮어버린 것이다.” 이 ‘증언’은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암암리에 거론되고 있는 대장동 사건이 세상에 나온 경위와 다르다. 알려진 이야기는 청와대 민정으로 들어온 첩보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덮은 뒤, 특정 국회의원과 인적 연계고리를 통해 이낙연 캠프 쪽으로 토스했다는 것이다.
최초 제보자로 지목된 ‘대장동 원주민 대책위 최기수씨’와 관련해 포털뉴스에서 검색하면 관련 뉴스를 찾을 수 없다. 대신 시일이 흐른 뒤 BBC코리아에서 보도한 최기수씨의 억울한 사연 취재 기사를 볼 수 있다. 이른바 ‘50억 클럽’과 관련해 최씨는 BBC코리아와 인터뷰(2021년 11월 6일)에서 “우리 대장동 원주민 9명이 성남시에 낸 소송금액이 평균 6억원에서 54억원쯤 된다. 퇴직금으로 50억원씩 받아갔다니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환수라고 할 수 있겠나”며 “주민들 돈으로 잔치한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지난 7월 17일 ‘2020년 7월에 이낙연 캠프를 찾아갔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씨는 “나는 거기와 관계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대장동 의혹’ 이낙연의 현재 생각은
경선 막판 ‘대장동 의혹’을 꺼내든 이낙연 전 대표의 지금 생각은 어떤 걸까. 대선 이후 이낙연 전 대표는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직 밝힌 적이 없다. 과거 이낙연 전 대표와 여러 선거를 치렀던 인사는 “과거같이 선거를 치러본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드는 생각은 이낙연이라는 사람은 특히 선거 때 네거티브를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선거와 비교해보면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의원 중심의 캠프는 처음 경험했다. 그래서 네거티브전 성격으로 흘러버린 구도에 별다른 터치(제재)를 못 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자기 책임을 말한 귀국 일성에는 그 대목도 포함돼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대선 경선을 되돌아보면) 이낙연 대표 본연의 매력, 이런 것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고 네거티브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다.” 이 인사에게 계속 물었다.
-어쨌든 대장동 의혹을 제기했고, ‘이재명 대표가 후보가 되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경선 때 마지막으로 나와 있는 데서 멈춰 있는 것 아닌가.
“나도 캠프를 했으니 그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후보 본인 생각이었냐는 거다. 이미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경선토론에서 꺼낸 것이다. 대장동 의혹은 대선에서 민주당이 진 계기가 됐지만, 경선에서 NY(이낙연)가 진 이유로도 작용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네거티브 양상으로 흘러버린 게 뼈아팠다. 문제는 당시 전략을 담당했던 의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설훈·윤영찬 의원을 말하는 건가.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찍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 그대로 있고 오히려 더 가까워져 있지 않나.”
-추미애 전 장관이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사임시켰고, 문 대통령은 당으로부터 건의받았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추 전 장관은 당시 문 대통령의 생각을 번복할 수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나중에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는데, 당에서 건의한 주체로 이낙연 전 대표를 사실상 지목했다.
“추미애도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감정이 사나워서 경선 때부터 계속 그러고 있다고 본다. 만나서 풀어야 한다.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을 푸는 것이 정치다.”
이 인사는 이재명 당대표와의 만남으로 그동안 쌓인 앙금이 쉽게 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절대 안 된다. 갈등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런 이미지라도 불식시켜보려고 하는 건데, 그마저도 계속 불발되고 있지 않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사면초가다. 안 하면 안 한다고 그러고. 가만히 있어도 돌아온(귀국한) 것 자체가 갈등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신당 창당 의혹까지 나오고 있으니….”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예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될 때 상황과 비슷한 거다. 일단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미운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과의 차이라면 그때는 대통령이 됐지만, 지금은 안 됐다는 점이다. 앙금이 더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팬덤의 ‘이낙연 악마화’는 아마 내년 총선 선거국면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 쪽은 정치세력화는 안 돼 있으니 일방적으로 당할 것이고. 즉 이재명 팬덤의 관점에서 이낙연은 지속적으로 ‘분란만 일으키는 미꾸라지’로 보일 것이다.”
엄 소장은 현재의 민주당 주류가 교체됐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문재인 정부 때만 하더라도 민주당의 주류는 호남과 586 그리고 영남개혁세력의 연합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이재명을 견고하게 지지하는 40대 반보수 강성지지층과 ‘개딸’로 대표되는 신주류로 바뀌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비판하는 추미애의 최근 행보를 보면 민주당의 주도세력이 40대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표가 이들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걸 추미애는 동물적으로 캐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류편승을 시도하는 것이다. 박지원이 이재명 지킴이를 자임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의 옛 주류였던 호남 586과 영남개혁세력 세를 모아 반전을 꾀해보려는 듯한데, 쉽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반보수 대표성은 이재명 대표가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주당의 주류가 바뀌었다”
의문은 이것이다. 어찌됐든 언젠가는 ‘명낙회동’은 성사될 것이다. 다만 여러 전문가가 예측하듯 회동에서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지적하고 내년 총선을 위해 힘을 합칠 것’과 같은 원론적인 메시지 이외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긴 힘들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회동 이후에도 두 사람이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리라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두 사람의 표면적인 ‘화해’ 제스처를 놓고도 강성팬덤이 반발할 가능성마저 있다. 현재 강성 민주당 지지층은 이재명 당대표를 지지하고 있지만 달리 말하면 이 대표가 ‘강성팬덤’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당 요구에 따라 “수박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발언했을 때 일부 팬덤에서 나온 반발에서도 조짐이 보였다. “그건 현재 이재명 팬덤의 특성이다.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자기네가 지지했던 플레이어조차 비판하고 부정하며 무주공산을 만드는 그런 팬덤이다. 그런데 그게 또 이재명 스타일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는 길과 안 맞으면 다 배척한다. 분명 이재명이 이낙연과 형식적으로 손을 잡는 뉘앙스만 보여도 팬덤 일부에서는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그러면 이재명은? 팬덤과 손절할 것이다. 골치 아프면 그런 팬덤 버리고 다시 만들자, 그렇게 해왔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는 내년 총선까지의 구도를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이낙연 지지세력 중 일부는 공천 때문에 분당을 바랄 수는 있지만, 이낙연 측이 당을 깰 명분과 동력은 잘 안 보인다. 일부는 떨어져 나가더라도 분당 자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검찰은 이른바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어떻게 하든 공천 시즌인 올해 12월이나 내년 1월 중에 (그 전에 나올) 1심판결을 소재로 대대적으로 때리면서 민주당의 판을 흔들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고전적 수법이다. 민주당은 역으로 검찰을 앞세워 정치공작을 하는 것 아니냐고 되받아칠 게 뻔하다.” 그는 결국 윤석열 정권의 ‘기획’은 상쇄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이재명 당대표 재판에서 핵심은 선거법 재판이 아니다. 신속하게 끝날 수 없다. 이재명 입장에서 대법까지 가면 최소 3년 이상 간다. 검찰 입장에서는 이재명 유죄 또는 무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총선 전에 정치적 타격을 줘야 하는데, 그게 계획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결국 이재명으로서는 이대로 총선까지 끌고 가더라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지 않겠나.” 이재명 입장에서 본다면 당내 화합과 확장을 위해 이낙연과 손잡고 가야 한다는 당위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으리라는 해석이다.
내년 총선 본선서 ‘이재명’ 통할까
‘민주당의 변화된 당내 상황’은 서울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한 당직자 출신 인사의 고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출마를 계획하는 지역구 권리당원 수가 3500명이다. 수도권 지역의 경우 평균적으로 3000에서 5000여명의 권리당원이 있다. 현재 지역위원장에게 지난 3월까지의 당원 관련 자료를 주는데, 그게 현 지역위원장으로서는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한다. 자료를 보면 권리당원은 2016년과 2017년 그리고 2021년에서 2022년 시기에 가입이 집중돼 있다. 2021년 대통령 경선할 때는 사실 국민선거인단이었지 당원이 아니었다. 2022년 대선 때 국민선거인단을 했는데 이재명이 떨어져 열 받아서 가입한 사람들이 압도적인 다수다. ‘개딸’이라고 20대 여성이 호명됐는데, 실제 이때 들어온 권리당원들을 보면 20대는 거의 없고 50대가 대다수다.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 그다음이 40대, 60대, 50대 순이다. ‘민주당 지지라기보다 이재명 지지’가 압도적 다수다. 그 당원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안 되니까 모든 의원이 ‘친명’을 할 수밖에 없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기는 하다. 특히 서울의 경우 이재명만 가지고 본선에서 될까. 다시 말해 경선은 ‘이재명’으로 하더라도 본선에서 ‘이재명’으로 될 지역이 얼마나 될까.”
“한쪽이 이기고 졌으면 다른 관계가 성립됐겠지만, 똑같이 대선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또다시 경쟁 관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리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대선 경선이 끝난 지 2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이재명·이낙연 사이의 앙금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한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의 분석이다. “예컨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MB는 최태민·최순실 관계를, 박근혜는 BBK와 다스 관계를 연일 폭로하며 서로 공격했지만, 대선을 앞두곤 타협의 악수를 했다. 당시 박근혜가 MB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정권교체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갈등이 봉합됐는데, 현재의 이재명·이낙연 관계는 그렇지 않다. 서로 다시 링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둘의 경쟁·갈등 관계는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
이낙연 ‘호남 민심’ 돌아봐야
그는 특히 이낙연 전 대표가 귀국 때 밝힌 ‘못다 한 책임’을 다 하려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호남 민심’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는 지난 대선 경선 때 이낙연 후보가 광주에서 1% 차로 승리하는 것을 보고 경선이 끝났다고 봤다. 호남 대표주자가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어떻게 1% 차로 이기는가. 호남 유권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거부반응이 상당하다. 그 반응은 단순히 이재명이 좋고 이낙연이 나쁘다,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재명 지지를 떠나서 이낙연이 큰 상처를 줬다는 얘기다.” 그는 이낙연이 호남 민심을 잃고 추락한 계기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 제기를 들었다. “호남사람들은 전두환·노태우로부터 시작해 현재 국민의힘 세력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그 세력에 대한 거부감·정서가 강하다. 이명박·박근혜가 그들을 이어 집권했는데, 그 사람들 사면을 이낙연이 이야기하니, ‘저 사람 우리 편이 아니지 않나,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라며 지지를 철회해버렸다. 호남에서 이재명에 대한 지지율이 지금도 높은데, 이재명의 리더십에 열렬히 환영해 그렇다기보다 지금 우리를 위해 저들과 맞서 싸울 장수는 이재명이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현재로서는 이재명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이렇게 그들은 생각하지 않을까.”
사면론은 한때 40%가 넘던 ‘이낙연 대세론’을 한 방에 무너뜨린 결정적 패착이었다. 사면론 제기와 관련해 이낙연이 할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대선 전 펴낸 문형렬 작가와의 대담집 <이낙연의 약속>에 실린 1문 1답에서 “최근 혼자 소리 내 울었던 때는?”이라는 질문에 “지난 1월, 오해와 비난을 받았을 때”라고 답했다. 책에서 그는 “무엇보다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 일로 아프게 배웠다. 내 생각이 무엇이든, 거론의 시기와 방법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는 사면론이 나왔을 당시 막후에서 벌어진 상황과 관련한 기사를 썼다(주간경향 1411호, ‘이낙연의 사면론, 묘수일까 자충수일까’ 기사 참조). 사면론을 꺼내들기 사흘 전, 이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했다. 어떤 형식이든 발언 전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으리라는 게 당시 정가의 관측이었다. 최근 추미애 전 장관처럼 이낙연 전 대표도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능구 대표는 “이낙연 대표는 당시 양정철의 말을 대통령의 메시지로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워딩’을 대통령의 공감 내지는 재가를 받은 것으로 착각했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앞으로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운명을 가른 역사적 ‘진실’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