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몰랐다고 끝? ‘대책 없는’ 전세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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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말 한마디였습니다. “전세 제도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라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전세 사는 입장에서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세가 없어지면 어떤 형태로 계약하라는 것인지’, ‘당장 주거비로 한 달에 얼마를 더 써야 하는지’ 당최 가늠이 되질 않았습니다. 발언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장관이 발언을 뒤집었습니다.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라나요.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도 실제 시장에는 아무런 충격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관은 “아니”라는데 현장에선 “맞는 것 같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김찬호 기자

김찬호 기자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임대인이나 임차인에게 전세계약 추천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나라에서 전셋값을 결정해줬는데 양쪽에서 나보고 난리”라고 했습니다. 진의를 따라가 보니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 보증금반환보증이 나왔습니다. 이른바 ‘126% 룰’입니다. 쉽게 말해 공시가의 126% 이상 보증금을 받으면 반환보증에 가입 못 한다는 규칙입니다. 전세사기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없는 집은 ‘문제 있는 집’으로 찍힙니다. 그러니 126% 룰은 정부가 정해준 각 집의 전셋값 상단이 됩니다. 이를 보니 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전세 시장을 소멸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까지 고민하지는 않은 게 틀림없습니다.

전세 시장을 누르자 반전세(보증금 낀 월세), 월세의 문제가 튀어나왔습니다. 허그는 “예측하지 못했다. 전세보증금까지만 우리 업무”라고 합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126% 룰로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이 생기자 이제 와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까지 검토한다고 합니다.

전세보증금은 누군가에겐 전 재산입니다. ‘말 한마디 던져보고 아니면 말고’라거나 ‘이런 부작용이 생길 줄은 몰랐네’라고 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먼지가 뿌옇게 올라온다면 잠시 가라앉길 기다린 뒤 움직이는 것도 전략일 수 있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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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