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지방대 몰락위기에 시장주의가 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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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월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월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이주호 교육부가 지방대 ‘소멸’위기에 대응하는 파격적일 정도의 새로운 대학정책을 내놓았다. 중앙정부가 행사하던 대학지원의 행정적·재정적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고 향후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넘기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혁신 대학지원체계(RISE·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구축사업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지역대학 가운데 30개 내외의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해 대학마다 5년간에 걸쳐 약 1000억원의 재정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 30’ 사업도 포함돼 있다. 이 같은 권한 이양과 대규모 지원은 일찍이 없었던 일로, 각 지방정부와 대학들은 향후 이 두 사업의 중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고 본다. 지자체가 대학관리의 권한을 위임받았던 적도 없고,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이 두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정부의 대학정책이 윤곽을 드러내자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교수사회를 대표하는 7개 교수단체가 연합한 전국교수연대가 강력한 비판과 함께 철회요구를 하고 나선 것도 이런 우려의 반영이다. 라이즈 사업은 지자체에 권한을 넘김과 동시에 대학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조치를 동반한다. 대학에 대한 규제 완화 내지 철폐를 통한 자율성 강화는 이 정부의 정책 기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자율성이 시장의 요구에 종속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교수연대는 지난 4월 19일 발표한 ‘공공적 고등교육정책과 대학균형발전을 촉구하는 전국 교수 선언’에서 교육부가 라이즈 사업을 통해 “대학 통폐합 등 구조조정의 힘들고 궂은일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고” 글로컬대학 사업을 통해 광역시도마다 몇몇 대학을 선별 지원해 “나머지 대학들은 무차별적인 구조조정과 정리의 길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고 대학개혁을 시장에 맡겨버리는 신자유주의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이 같은 교수사회의 반발과 교육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대학정책 전환 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1일 교육부는 지방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라이즈 체계 구축을 위한 시범지역을 공모하고 3월 9일 경남, 경북, 대구, 부산, 전남, 전북, 충북 등 7개 시도를 선정했다. 이 지자체들은 지역의 발전전략과 연계한 지역대학 지원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오는 7월쯤 교육부와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곧이어 민간전문가로 글로컬대학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4월 18일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오는 5월 말까지 예비지정 신청서 접수를 시작으로 심사를 벌여 9월 말 10개 내외의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한다. 지자체와 지방대로서는 전에 없던 큰 변화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있다. 각 광역시도와 지역대학들은 좋든 싫든 짧은 기간 내에 정부가 요구하는 ‘담대한 혁신’을 동반한 대학 구조개혁을 구상하고 계획해야 하는 막다른 처지에 놓인 셈이다. 충분한 준비와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마치 속도전을 치르듯이 추진되는 변화의 요구 앞에서 이런저런 불만과 비판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이 지금 국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대 소멸 우려 속 패러다임 전환

무엇보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처해 지난 10년간 진행된 대학의 구조개혁 작업이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절박성이다. 인구통계상 대학 입학 연령인 18세 인구는 2040년 26만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2022년 현재의 대학 정원이 약 45만명이고, 대학 진학률이 60~70%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15년 후에는 현재의 대학 규모가 거의 절반으로 축소돼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전체 대학의 절반이 정리되는 셈이다. 대재앙을 향해 시한폭탄의 시곗바늘이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정부가 주도한 대학 구조조정은 지방대와 전문대에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 지방대의 위기는 더욱 커졌다. 이대로면 지방대학 ‘소멸’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조차 우려된다. 정부로서도 이 같은 추세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승부수를 던지듯이 지방대 구조개혁 정책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이런 시도가 과연 지역사회와 지방대학을 동시에 살리겠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전국교수연대의 비판처럼 “지방대학들을 무차별적인 파괴의 늪으로 몰아가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고등교육체제 전반을 망가뜨리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막 시행단계에 접어든 지금 국면에서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미 시동이 걸린 이 정부의 대학개혁 정책이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권의 실패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장기적 전망마저 어둡게 할 대형악재라는 점이다. 지방대의 소멸위기는 단순히 해당 대학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등교육의 문제에 그치지도 않는다. 지방대 소멸을 불러온 중요 원인 중 하나인 대학 서열구조는 서울 및 수도권이 과도하게 비대해진 한국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와 연동돼 있다. 졸속추진의 혐의가 없진 않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험이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이 성공하도록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일정 부분 협치를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라이즈 체계 구축사업의 목표는 지역과 대학의 협력을 통해, 즉 대학은 지역발전의 허브가 되고 지자체는 경쟁력 있는 지역대학을 육성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얻는 데 있다. 해당 지역의 대학에 대한 지자체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행정적·재정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지역이 주체적으로 대학 체제의 개편과 구조조정의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누리사업이나 지방대 특성화 사업 등 과거 정부에서도 지방대를 대상으로 한 재정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중앙정부 주도 하향식 대학지원 방식은 결국 지역의 현실과 결합하지도, 지방대를 살려내지도 못했다. 정부가 그동안 수동적인 관리 대상이던 지역을 대학혁신의 주체로 불러낸 것은 말하자면 대량실점 위기상황에서 구원투수를 내보낸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즈 체계의 성패가 많은 부분 지역을 구성하는 주체들, 즉 지자체와 대학들의 창의적인 해결 노력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이 2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이 2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졸속 추진하면 기득권 구조 재현될 우려

문제는 이 같은 체제의 도입이 너무 단기간 내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졸속에 따른 많은 폐해가 예상된다. 우선 이 방향전환이 대학 구조조정의 고통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에 이뤄진다는 점이 커다란 변수다. 거점국립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들을 제외한 지방대학 대부분은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어온 지 오래고, 대학 재정의 악화에서 더 나아가 교육기관으로서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대학 재정지원 권한이 지자체로 이관되면 지역 단위에서 대학들 사이에 재정지원을 둘러싼 생존경쟁이 격화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결국 일부 경쟁력을 가진 대학들, 즉 거점국립대나 대도시 대형대학들의 이해관계가 중심이 되는 기득권 구조의 재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정지원을 두고 전국 차원에서 드러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지역 단위에서 더 악화된 형태로 되풀이되는 꼴이다.

라이즈 체계 구축과 더불어 시작된 글로컬대학의 선정을 둘러싼 경쟁은 그 시발점이다. 각 대학당 5년간 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에 선정되기 위한 지방대학들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글로컬대학은 소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에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시행된다. 그 관문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다. 글로컬대학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거점국립대를 제외하면 200개가 넘는 비수도권 대학들이 불과 20개 남짓의 자리를 두고 그야말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점진적으로 대학 재정을 늘린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재원이 일부 대학에 집중되면 여타 대학의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학의 구조조정 국면에서 이는 곧 퇴출 위기에 몰리는 결과를 빚게 된다. 만약 각 지역 단위에서 무차별적 생존경쟁이 격화되고 기득권 구조가 재현된다면, 정부의 정책전환은 전국교수연대의 비판처럼 “우리나라 고등교육체계 전체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라이즈 체계 구축사업과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이처럼 지방대의 위기를 지역이 주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돌파할 가능성을 연 한편, 졸속추진으로 인한 한계와 폐해가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양면성을 띤다. 이 사업들을 위한 행정적·법적 정비도 이뤄져야 하고, 부족한 예산도 확보해야 하고, 지자체의 대학관리 역량도 제고해야 하는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 대학정책 전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조정 후의 한국 대학이 어떤 체제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글로컬대학 사업의 추진배경에서 밝힌 것처럼 교육부 스스로 “대학교육 체제 전반의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앞세우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구조조정 후 한국 대학이 전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띠어야 하는지, 즉 대학 체제 개편의 비전은 없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지역 기반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한정된 목적만 드러낼 뿐이다. 대학 체제의 개편은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육이념에 바탕을 둬야 한다. 국가의 공공적 개입이 필요하다.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과제다.

대전·충청지역 7개 교수단체가 3월 30일 오후 충남대 사회과학대학 하누리강당에서 충청지역 교수연대회의 출범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충청지역 7개 교수단체가 3월 30일 오후 충남대 사회과학대학 하누리강당에서 충청지역 교수연대회의 출범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대학 두 가지 병폐 해결할 수 있나

그렇다면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과도한 사립대 비중과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구조다. 한국 대학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전체의 80% 이상이 사립대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의 사학에는 봉건적인 소유 의식이 잔존하고 있다. 이는 고질적인 사학비리의 원천이 돼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대부분의 사학이 열악한 재정 상황에 처해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학 서열구조가 야기한 입시지옥과 사교육 비대화는 국가의 공교육 체계를 훼손한다. 대학 입시에서 이른바 ‘인서울’ 지향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열구조는 대학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에는 소위 ‘일류대’는 있어도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연구중심대학은 없다. 대학의 구조개편이라면 마땅히 이 같은 두 가지 핵심적인 병폐를 바로잡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학 구조개혁에서 이에 대한 대처나 문제의식은 크게 부족했다. 지난 10년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은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지표경쟁을 통해 상위권과 하위권을 구별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상위권에 재정지원을 집중하고, 하위권에 조정을 집중함으로써 대학의 서열구조를 더 심화시켰다.

라이즈 체계 구축과 글로컬대학 30 사업이 ‘한국 대학의 체제 변환’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이 두 가지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국가 차원의 공공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과 대학의 자율성이 시장주의와 결합하는 순간, 현재의 대학 서열구조는 더 굳어질 게 뻔하다. 지역과 지방대가 주체로 나서는 새로운 시도의 장점과 가능성은 그것대로 활용하더라도, 그것이 지역판 약육강식이나 기득권 구조 재생에 머물지 않게 하는 장치는 있어야 한다. 대학의 구조화된 서열체제를 극복하려면 각 대학의 유형을 다양화하고, 무엇보다 대학의 특성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동일한 기준으로 대학을 줄 세우지 말고, 대학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평가해 그에 맞는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

대학의 유형에 따른 특성은 대개 연구중심, 교육중심, 기술교육중심으로 나뉜다. 지금부터라도 교육부는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각 대학의 유형에 따른 평가를 통해 저마다의 특성이 강화되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가령 4년제 대학 중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대학이 있다면 비대해진 학부생 비율을 줄여 대학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교육중심대학을 지향하는 대학은 학부 교육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이 같은 특성화는 지역만이 아니라 수도권까지 포함하는 대학 전체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 지역의 경우 특히 라이즈 체계를 운영하고 글로컬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은 물론, 사후평가 과정에서 대학 특성화 방침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지방 거점국립대에 지역의 연구중심대학 성격을 갖도록 유도해 지역의 대학원을 통합해 공동으로 운영하게 한다거나, 몇몇 대학이 재정을 독식할 것이 아니라 대학들 사이의 공유와 협력의 시스템을 만들어 역할을 분담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제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중앙정부가 지방대의 구조조정을 지역에 위임했다. 자율을 내세운 살벌한 경쟁이 지역 내부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혼란과 파멸의 징후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서열구조 상위 대학은 상위 대학대로, 하위 대학은 하위 대학대로 현재의 기득권이나 이해관계를 양보하고 특성에 따라 역할을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학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공유와 협력 그리고 상생이라는 가치를 실현해 나가려는 주체로서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윤지관 덕성여대 명예교수·‘대학: 담론과 쟁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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