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험담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의 수준이나 역량을 낮게 보기 때문에 겸손하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 스스로를 낮추니 저절로 상대를 높이게 되고, 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특히 나는 김우중 회장,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등 범접하기 어려운 분들을 모시면서 본시 낮았던 자존감이 더 낮아졌고, 겸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자존감 낮은 사람의 대인관계

둘째,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남에게 들키지 않을까 늘 불안한 상태에 있어 그 모자란 부분을 남의 인정으로 채우려 한다. 약물 중독자가 갈수록 더 독한 약물을 필요로 하듯, 인정중독에 빠지면 더 강한 칭찬과 인정을 갈구한다.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금단 현상 때문에 더욱 남의 인정에 목매게 된다. 생각해보라. 인정을 베푸는 사람 입장에서 자기 눈에 들기 위해 애면글면하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을 미워할 턱이 있겠는가. 자존감 낮은 본인은 또 어떤가. 자신의 본모습을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자기 수준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고맙지 않겠는가.

셋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아효능감도 낮아 매사에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으므로 기회가 와도 사양하고 양보한다. 그 기회를 잡았다가 자신의 본색이 드러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양보한 기회는 남에게 돌아가고, 그 기회를 얻은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단지 자신이 없었을 뿐인데, 욕심이 없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등극한다. 몇 해 전 모 방송국에서 저녁 퇴근길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제안받았다. 실전 테스트까지 받고 합격했지만, 하루 이틀 고민하다 고사했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고,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방송국에서 제안이 왔다. 제안을 고사했다는 사실이 방송가에 풍문처럼 나돌아 새로운 제안을 해준 방송국에도 알려졌고, 그로 인해 나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낮은 자존감이 낳은 사양이 새로운 관계를 불러온 셈이다.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겸손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양보하는 특징 외에 또 하나의 대인관계 장점이 있다. 바로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불편한 관계에 있으면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는 험담을 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험담을 해서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내가 내게 하는 거의 유일한 칭찬도 ‘당신은 정말 뒷담화를 안 하는 사람이야’다.

험담은 왜 하는가. 심심풀이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혹은 제3자에 대한 정보 교환 용도로, 또는 공동의 적을 만들어 우리는 같은 편이란 걸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당사자에게 직접 하기 어려운 말이 우회해서 전해지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험담은 반드시 그 대상자의 귀에 들어가게 돼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험담을 들은 사람도 험담한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험담 대상자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다. 험담한 사람이란 방패막이가 생겼으므로 자기 얘기가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다. ‘내가 얘기했다고는 하지 말아줘. 사실 이 얘기를 해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면서 말한다. 상대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지배 감정을 만끽한다. 남의 칼을 빌려 차도살인(借刀殺人)하는 것이다. 당연히 험담한 사람과 험담 대상자는 불구대천지원수가 된다.

험담한 사람과 험담을 전한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망가진다. 험담한 사람은 그걸 듣는 사람이 자기편이라 생각해서,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말했을 것이다. “맞아, 맞아” 하며 들을 때는 언제고,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쳐? 그렇게 양다리 걸치는 기회주의자는 용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험담을 들은 사람은 험담을 전한 사람을 어떻게 볼까. 입이 싸고 못 믿을 사람, 언제든 나에 대해서도 험담할 사람으로 본다. 결코 좋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가서 참모들에게 했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이라 했든 “날리면”이라고 했든 험담을 했다는 것까지 부인하긴 어렵다. 그 발언이 미국이나 우리 국민에게 윤 대통령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줬을 리 만무하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주자가 그랬다지 않나. 험담을 하는 사람은 경망하고, 맞장구치는 사람은 비겁하며, 험담을 전하는 사람은 비열한 사람이라고. 험담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관계를 망친다.

험담도 사실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험담도 해악의 정도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경우다. 어디서 들은 얘기를 악의 없이 전하는 유형이다. 사실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왜곡, 과장하면 악담이 되고 문제가 된다. 비방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안이 심각하면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직장에서 주로 이뤄지는 상사 뒷담화다. 윗사람에게 대놓고 할 수 없는 말을 동료들끼리 주고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하소연 품앗이라고나 할까. 며느리끼리 모여 시어머니 흉을 보고, 부인들이 모여 남편 성토대회를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험담은 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도리어 험담하는 사람들끼리 우의(?)를 돈독히 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헐뜯기다. 누군가를 흠집 내기 위해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손가락질하는 경우다. 비판, 비난, 비방은 달리 봐야 한다. 사실과 근거를 가지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비판은 비록 등 뒤에서 하는 경우라도 권장해야 한다. 비판은 그 대상의 발전을 위해 행한다는 선의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비난은 다르다. 비판이 사실에 바탕하는 데 반해 비난은 비난하는 사람의 판단에 근거한다. 비판은 객관적이지만 비난은 주관적이다. 비판에는 칭찬도 포함될 수 있지만, 비난에는 상대를 깎아내릴 악의만 있을 뿐이다.

비방은 더 심각하다. 비난이 판단에 근거한다면 비방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증오와 분노의 감정 말이다. 비방은 없는 얘기까지 지어내는 가장 불순한 험담이다. 비방은 숨어서 하지도 않는다. 내놓고 한다. 비방하는 대상이 그걸 듣고 괴로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방은 그 대상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힌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낫지만, 말로 에인 상흔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관계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만약 험담의 대상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왜 입방아에 올랐는지 따져본다. 험담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 입을 막아봤자 소용없다. 또 다른 입을 통해 구설은 계속될 뿐이다. 그 원인을 제공한 나를 바꿔야 한다. 아니면 험담한 사람을 내 편으로 통 크게 끌어안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나에 대한 험담은 꼬리를 감춘다.

※어른도 흔들립니다. 중심을 찾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인 강원국 작가가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강원국 작가>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