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우는 삶’ 말고, 진짜 시간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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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일상을 소개했다.

박송이 기자

박송이 기자

오후 9시쯤 자녀들과 함께 잠이 든다. 새벽 3시쯤 일어나 오전 6시까지 명상이든 운동이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6시부터는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자녀들을 등교시킨 후, 오전 9시에 학교에 도착한다. 오전 시간은 자신의 연구에 매진한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낮잠을 자고 오후에는 수업준비 등을 한 후 5시에 퇴근한다. 그는 거의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필즈상 수상 이후 바빠진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곧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긴 인터뷰 내용 중에서 그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의 하루에는 그의 노동, 그의 가족, 그 자신이 오롯이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의 똑같은’ 하루를 만들어내기까지 그는 많은 시간을 스스로와 대화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 중요한 것들에 시간을 어떻게 안배해야 하는지, 자녀들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좀더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아침에 집중력이 좋은지 밤에 집중력이 좋은지, 휴식할 때는 산책이 도움이 되는지 낮잠이 도움이 되는지….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을 노사에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개편안이라 치켜세웠지만, 장시간 노동은 ‘때우는 삶’일 뿐이다. 장시간 노동과 일에 쫓겨 살아간다면 가족을 위한 시간도,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도 기획할 수 없다. 그저 일 외의 시간은 때울 뿐이다. 야근에 치여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일에 쫓겨 학원으로 양육을 때우고, 유튜브 쇼츠 영상으로 취향을 때운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큰 상은 못 받더라도 일상만큼은 허준이 교수 정도로 기획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일에 치여 때우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시간의 주도권을 갖는 삶 말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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