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물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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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와 20~50개의 대화를 하면 대략 500㎖ 생수 한 병이 소비된다. 챗GPT 월 사용자의 10%인 1000만명이 이 생성 AI와 매일 질문을 주고받으면 하루 5000만ℓ, 월 15억ℓ의 물을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AI가 유발하는 탄소발자국만큼이나 물발자국 관리가 중요해진 배경이다. 이는 허황된 통계가 아니다. 지난 4월 6일 발표된 논문 ‘AI를 덜 목 마르게 하기’에서 입증된 결과다. 생성 AI의 탄소발자국에 가려져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물발자국의 규모와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Photo by D koi on Unsplash

Photo by D koi on Unsplash

생성 AI 혁명이 가져올 위기는 비단 일자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구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진중하게 검토해야 할 항목이다. 현재 발표됐거나 운영 중인 초거대 언어모델은 GPT-3나 GPT-4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글, 아마존과 같은 미국 내 빅테크 기업부터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테크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초거대 언어모델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새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데이터 학습이 이뤄지고, 또다시 물 소비로 이어진다. 이 논문의 연구진은 GPT-3를 학습시키는 데만 70만ℓ의 담수가 소비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테슬라 전기자동차 320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담수량과 같은 양이라고 한다. AI 전용 반도체 개발 등이 포함된 생성 AI의 수명 주기를 고려하면 생성 AI로 물발자국이 대략 10배는 더 늘어나리라고도 했다.

생성 AI발 물발자국 발생의 근원은 데이터센터다. AI 혁명은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 구축 전쟁을 불러오고 있다. AI 모델의 학습-운영-이용은 모두 데이터센터와 직결돼 있다. 문제는 적지 않은 데이터센터가 물 부족, 가뭄 취약 지역에 있다는 점이다. 친환경 설계로 평가받아온 구글의 미국 내 한 데이터센터조차 해당 지역 물 소비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막대한 양의 물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국내라고 여건이 다르지는 않다. 심각한 물 부족 상태에 이르지 않았다고는 하나, 데이터센터가 모여 있는 수도권은 물 부족 현상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강수량 감소는 위기 시점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은 더 심각하다. 일례로 광주광역시는 30년 만에 제한급수를 거론할 정도로 물 부족이 위기 수준이다. 이곳엔 ‘AI 집적단지’가 한창 건설 중이고, AI 전용 데이터센터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물 부족 현상이 지속된다면 지역의 미래 산업이 흔들릴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게 된다. 물발자국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해진 배경이다.

대안이 없지는 않다. 생성 AI를 학습하거나 운영할 때 물 효율이 높은 위치의 데이터센터에 서버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탄소발자국처럼 물발자국을 AI 모델 개발 시 투명하게 공표하도록 강제한다면, 물발자국에 대한 인식을 상당 수준 개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생성 AI가 상당한 양의 물발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팩트 자체를 자각하는 게 우선이다. 다만 지금의 격화한 경쟁 구도가 이 모든 인식과 논의를 덮어버릴 수도 있다. AI 경쟁에 쉼표가 필요할 이유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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