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한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2009년 1월, 용산 참사가 터졌다.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급하게 현장에 투입됐다. 유족이 있는 병원으로 가라는 지시였다. 선배는 취재할 내용을 지시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감정에 동요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기자는 냉정해야 해.”
![지난 4월 10일 경북 경산에서 만난 고 정유엽군의 어머니 이지연씨가 대접해준 ‘샐러리 김밥’ / 유선희 기자](https://img.khan.co.kr/newsmaker/1525/1525_73a.jpg)
지난 4월 10일 경북 경산에서 만난 고 정유엽군의 어머니 이지연씨가 대접해준 ‘샐러리 김밥’ / 유선희 기자
하지만 현장에서 유족들의 사연을 듣자 마음이 일렁였다. 결국 같이 엉엉 울고 돌아왔다. 감정은 나눴는데 취재노트는 비어 있었다. 기사에 쓸 만한 멘트도 당연히 없었다. 기자가 되기에 불합격이었다. 인턴이 끝날 무렵 선배는 “기자도 사람이라 감정이 있지만, 취재에서 감정을 내세우면 중심을 잃거나 정말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탐사팀이 다룬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보도가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개인에 분노하는 기자를 달래 ‘시스템’에 집중하도록 이끈 편집국장 마틴 배런의 냉정함 덕분이었다.
기자로 일하면서 감정을 덜어내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했다. 억울한 사연을 맞닥뜨릴 땐 감정 이입 자체를 막을 순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의연하게 취재에 임할 수 있게 됐다. 사건 현장에서 정신없이 취재하다가 시민들로부터 “지금 (한가롭게) 취재나 하고 있을 때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가끔은 스스로 ‘감정이 무뎌진 게 아닐까’ 자문할 때도 있는데, 무심해진 건 아니다. ‘굳은살’이 박였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새삼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코로나19 초기 아들을 잃은 이후 모자상 도자기를 빚는 어머니를 취재하면서다. 코로나19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연장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녹취를 듣게 됐다. 분량상 기사에 담지 못한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엄마가 맨날 김밥 장사 하느라 유엽이 간식이 김밥만 됐지. 근데 오늘도 마지막 가는데 엄마가 줄 게 김밥밖에 없어. 그래서 오늘 김밥 가져왔거든. 배고프지 않게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알았지?”
의료공백에 맞선 싸움을 이어나가면서도, 이젠 아들을 떠나보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새벽부터 만든 김밥이었으리라. 여전히 아들이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뿐인 엄마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 마음을 감히 상상하니 눈물이 왈칵 났다. 취재를 하러 가서 꼭 김밥을 먹어야지,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늦은 점심이어도 먹고 나서 인터뷰하자며 김밥을 대접했다. 인터뷰 내내 어머니는 많이 울었다. 몇 번이고 고비가 있었다. 인턴 때와는 달리, 감정을 누르고 인터뷰를 잘 끝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김밥 두 줄과 본인이 만든 도자기를 손에 쥐여줬다. ‘정말 맛있다, 유엽아’ 하면서 김밥을 아껴 먹었다. 도자기는 잘 보이는 곳에 뒀다. 불쑥 솟구치는 감정 때문에 이번 기사는 개인적으로 특히 힘들게 썼다.
기사를 출고한 날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이 잘 담겼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기사를 봤다는 한 선배는 “담담하더라”고 했다. 기자로선 참 다행이었다. 취재원인 그 어머니 앞에서 차마 드러내지 못한 감정을 여기 이렇게나마 기록해둔다. 아마 어떠한 사안에서 뒤돌아 한바탕 눈물을 쏟거나 불같이 분노하며 기사를 쓰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감정이 이렇게 또 굳은살이 되어 한 겹 쌓인다.
<유선희 뉴콘텐츠팀 기자 y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