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잘 자란’ 비엣텔, 태생도 달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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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는 브랜드 파워, 시장점유율, 고객충성도 등을 수치화해 해마다 전 세계 주요 브랜드 가치 순위를 발표한다. 산업 카테고리별 브랜드 순위와 별도로 산업 구분 없이 종합적으로 전 세계 최고 500대 브랜드를 공개한다. 해당 조사에서 최근 5년 동안 세계 최고 브랜드 상위 3개는 아마존, 애플, 구글이었으며 삼성은 4~5위권이었다. 2023년 보고서에서는 현대(67위), SK(84위), LG(90위) 등의 한국 브랜드가 상위 100개 브랜드에 선정됐다.

베트남 하노이 비엣텔 본사 / https://www.reliablecontrols.com

베트남 하노이 비엣텔 본사 / https://www.reliablecontrols.com

최고 500대 브랜드 중 아세안 기업 중 유일하게 5년 연속 글로벌 500대 브랜드에 선정된 곳이 있다. 비엣텔(Viettel)이라는 베트남 통신사다. 비엣텔은 2019년 처음으로 브랜드 가치 세계 482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356위, 2023년에는 234위로 해마다 가파르게 브랜드 가치가 상승 중이다. 글로벌 통신사 카테고리에서의 비엣텔 순위는 16위로 한국의 양대 통신사인 SKT(39위), KT(40위)보다 압도적으로 순위가 높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에는 비엣텔이 47위였고 SKT가 28위였다. 몇 년 사이에 완전히 순위가 뒤바뀐 셈이다. 놀랍게도 수년째 아세안 최고 브랜드로 평가 받고 있는 비엣텔은 민간 기업이 아닌 베트남 국방부가 소유한 군대 기업이다. 인근 아세안 국가인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는 물론 중남미의 페루·아이티, 아프리카의 모잠비크·부룬디 등 전 세계 10개 국가에 진출해 있다. 그중 5개 국가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다. 2022년 비엣텔의 연결매출액은 68억달러(약 9조원)로, 이중 해외 매출은 30억달러(약 4조원)다. 한국의 KT가 아프리카 르완다 진출 10년간 2500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보도됐다. 그러나 베트남 기업, 그것도 국방부 소유의 군 기업인 비엣텔은 모잠비크, 부룬디, 탄자니아, 카메룬 등 아프리카 대륙 4개 국가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9)‘잘 자란’ 비엣텔, 태생도 달랐‘군’

게다가 비엣텔은 베트남 전국에 베트남만의 5G 모바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비엣텔의 연구 개발 자회사인 비엣텔 하이테크(Viettel High Tech)를 통해 5G 기술 국산화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5G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이제는 해외로 5G 장비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비엣텔은 인근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에서도 5G 서비스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1인당 국민소득 6621달러로 베트남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남미의 페루에 2019년 5G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4년 진출해 페루 시장점유율 20%를 눈앞에 두고 있는 비엣텔은 3만5000㎞의 케이블 네트워크와 5300개의 3G 기지 송·수신국 및 3400개의 4G 기지 송·수신국 등 페루에서 가장 큰 통신 인프라를 구축한 통신기업이다. 본격적으로 5G로 장비가 바뀌게 되면 매출액은 지금보다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2년 12월 비엣텔은 인도 최초의 모바일 서비스 업체이자 전 세계 24개국에 진출한 유나이티드 텔레콤스(United Telecoms)와 5G 모바일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솔루션 제공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베트남 기업이, 그것도 민간 기업이 아닌 군대가 운영하는 통신사가 14억 인도의 5G 첨단 통신기술 구축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 국방부가 소유한 기업은 비단 비엣텔만은 아니다. 은행, 부동산 개발, 건설사, 항만 사업, 항공 운송 사업, 석탄 채굴 사업 등 다양한 수익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군의 이러한 영리사업을 베트남 정부는 왜 허용한 걸까.

[가깝고도 먼 아세안](9)‘잘 자란’ 비엣텔, 태생도 달랐‘군’

개혁·개방 위해 군이 국가경제의 축이 되도록 한 베트남 베트남은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통일된 남부지역에도 공동 경작을 통한 본격적인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 익숙한 남부지역 시민의 반발이 거셌다.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 머이’를 선언할 때까지 해마다 물가상승률은 연간 50~70%를 넘나들었다. 경직된 경제 체제로는 국가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베트남 지도부는 발 빠르게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전쟁 직후의 베트남에는 그러나 우수한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했다. 과거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개발도상국,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군의 권력이 막강하다. 그 사회의 엘리트들이 군에 집중된다. 베트남 정부는 전문적인 군의 조직력과 풍부한 군 인프라를 활용해 국가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고자 했다. 또한 당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가 붕괴하는 등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이뤄진 개혁·개방은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로 이어졌다. 군의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민간 기업에 맡겼다가는 소홀해질 수 있는 국가 인프라 사업 등을 군이 할 수 있게끔 했다. 군이 무력이 아닌 경제 성장의 한 축이 되게 함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군의 위상은 유지하면서도 베트남 지도부에 대한 충성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23년 1분기 베트남 경제성장률이 기대치의 절반 수준인 3.32%로 최근 집계됐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3월 1% 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 이어 15일 만에 0.5% 추가로 금리를 내렸다. 베트남 경제가 위험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이라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직되고 보수적일 것만 같은 군이 최첨단 기술 경쟁 사업인 통신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잘 운영하고 있는 걸 보면, 지금의 경제위기도 현명하게 극복할 것으로 보인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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