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중장비, 이스라엘군 ‘인종청소’에 쓰여…‘인권경영’은 어디에
2022년 10월 3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의 칼렛 알 마야 마을. 대낮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중장비를 끌고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마을을 굉음과 먼지로 뒤덮던 거대한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거주민인 지하드 카밀 아부 후세인의 집 앞에 멈췄다. 후세인과 그의 아내 그리고 4명의 어린 자녀가 함께 사는 집을 굴착기가 이내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후세인은 굴착기를 막아서며 철거에 항의했다. 동행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를 폭행해 제압한 뒤 체포했다. 바라보던 아내와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유엔이 규정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이스라엘군의 이 강제철거 작전을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인종청소”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낯익은 이름이 현지 주민들에게 포착됐다. ‘HYUNDAI’. 후세인의 집을 물어뜯던 거대한 굴착기에 선명하게 새겨진 기업 로고였다. 중동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자동차 브랜드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월드컵의 공식 파트너 브랜드로도 주민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주민들은 굴착기를 생산하는 HD현대(구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에 편지를 썼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탄압하는 반인권적인 일에 현대의 중장비가 쓰이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1년 넘게 묵묵부답이었고, 올해도 마사페르 야타의 강제철거에 현대 굴착기가 동원되고 있다. 현대건설기계 측은 “중고거래로 유통된 굴착기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책임질 부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측이 외면하는 사이 이 문제는 국제 인권탄압문제로 비화됐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 및 활동가들은 “현대가 전쟁범죄를 방관하고 있다”라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주민들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 시기인 1967년부터 서안지구를 점령 중이다. 서안지구는 300여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이 거주하고 있는 엄연한 팔레스타인국(國)의 영토다. 유엔은 이를 ‘불법점령’으로 결론 내렸다. 2022년 10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전시에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일시적인 상황이며, 피점령국의 국가 지위나 주권을 박탈하지는 않는다”라며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점령은 그 영속성과 이스라엘 정부가 추진하는 사실상의 합병 정책을 고려할 때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점령에 그치지 않고 자국민의 ‘정착촌’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현지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고 있다. 말이 강제이주이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주민들을 무력으로 내쫓는 일이나 다름없다. OHCHR 조사위원회의 현지 조사 내역을 보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주택 철거 및 재산 파괴, 점령군의 과도한 무력 사용, 대규모 감금, 정착민 폭력, 이동 제한, 생계에 필요한 기본 필수품과 서비스 및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접근 제한”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HD현대의 굴착기가 포착된 마사페르 야타는 서안지구 헤브론 남쪽에 있는 도시다. 수십년간 크고 작은 강제철거를 진행해온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5월 “마사페르 야타에 군사훈련 구역을 만들겠다”며 해당 지역 12개 마을에 거주하는 1300여명의 주민에 대한 강제추방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팔레스타인 정부에 일방 통보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해온 단일 강제이주로선 가장 큰 규모로, 제4차 제네바 협약에서 규정한 중대한 위반 및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이 같은 전쟁범죄에 HD현대의 굴착기가 계속 사용되고 있음은 명백하다. 현지 주민과 국제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2022년 7월에 두 차례, 10월에 한 차례 등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적어도 다섯 차례 강제철거 현장에서 현대의 굴착기가 목격됐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유압 해머 부착물을 단 ‘HX330AL 크롤러 굴착기’와 ‘HW210 차륜형 굴착기’가 사용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강제철거를 단행하며 “해당 주민에게 정착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 정착지를 마련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쫓겨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는 토굴을 파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변에서 양을 방목하는 등 그간 이어온 생계활동을 당장 포기할 수 없어서다. 마사페르 야타에 거주 중인 사미 후라이니는 최근 HD현대건설기계에 보낸 서한을 통해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는 이스라엘 국가의 지속적인 시도에 현대건설기계의 중장비가 쓰이는 것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달라”며 “자체 원격관리시스템을 통해 해당 중장비가 마사페르 야타 지역에 반입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민들이 사측에 직접 서한까지 보낸 이유는 HD현대의 중장비가 팔레스타인 거주민의 가옥을 파괴하는 데 동원된 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과 미국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DWAN 등에 따르면 이미 10년 전인 2013년부터 HD현대의 굴착기가 가옥 파괴 및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이용됐다. 2013년 당시에도 인권단체에서 사측에 답변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당시 사측은 “해당 행위에 제품을 판매한 적 없다”라고 밝혔고, 현지 이스라엘 유통·판매업체와도 계약이 해지됐다고 응답했다. 이후에도 HD현대의 중장비는 파괴 현장에 계속 모습을 드러냈고, 마침내 주민들까지 나서서 공개서한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HD현대 측 “중고로 유통된 것. 책임 없어”
지난 3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HD현대 신사옥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인권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HD현대건설기계의 모회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구 HD현대제뉴인)의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경영을 선언한 HD현대건설기계가 강제철거 등 팔레스타인 인권탄압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측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직원이 나와 “여기는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고지한 뒤 집회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인근 경찰서에서는 정보과 형사들이 나와 동태를 살폈다. 집회는 방해받지 않고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달라진 건 없다.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HD현대 측의 대응방식은 일관되게 ‘무대응’이다.
“중고차가 범죄에 이용된다고 해서 해당 제작사가 책임을 지는 건 아니지 않냐”.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측은 이렇게 답변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동원된 굴착기 등은 현지에서 중고 거래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지 이스라엘 유통업체를 통해서도 확인했지만 우리는 이스라엘군에 중장비를 판매한 적이 없다”며 “중고거래를 통해 유통된 중장비까지 회사가 제재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굴착기를 중고거래하면 안 된다는 법은 물론 없다. 중고거래로 소유권이 바뀐 장비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HD현대의 입장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사측이 비유한 자동차와 중장비는 엄연히 다르다. 자동차로 범죄를 저지를 순 있겠지만 가옥이나 마을을 파괴하거나, 불법적인 정착촌을 짓는 일을 자동차로 하지는 않는다. 중장비가 전략물자나 군수물자, 전시동원물자 등으로 분류돼 필요에 따라 수출통제대상 등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HD현대의 굴착기가 ‘HYUNDAI’라는 고유 로고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 인권탄압 문제에 제품이 연관된 것이 범현대가에 결국은 좋지 않은 영향을 주리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범현대가에서 해당 로고를 쓰는 이유는 자동차, 건설, 조선 등의 분야에서 쌓은 세계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함”이라며 “엄연히 다른 회사라 하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질한 그룹집단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브랜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HD현대건설기계가 속한 HD현대그룹은 범현대가 중에서도 ‘직계’인 정몽준 회장이 이끌고 있다. 재계서열 9위에 해당하는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장기적인 기업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볼 때 팔레스타인 인권탄압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풀고 가는 것이 HD현대에 유리하다. 현지 가옥 파괴 문제로 논란이 되는 대상은 비단 HD현대 만이 아니다. 동원되는 중장비 숫자로만 보자면 캐터필러, 볼보, JCB 등 외국 중장비 기업들이 더 많다. 이들 기업 역시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대책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이중 사실상 인도 기업인 JCB의 경우 한 인권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OHCHR은 2020년 2월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사업에 연루된 112개 기업 명단을 발표했는데, JCB가 명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은 불법점령 상태에서 이뤄지는 행위로, 팔레스타인 가옥 강제철거 등과 유사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 명단에 오른 112개 기업 중 이스라엘 기업이 94개로 대다수였고, 해외 다국적 기업이 16개였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당시 HD현대건설기계도 명단 등재가 검토됐지만 ‘정착촌 건설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측 소명이 받아들여져 최종 명단에는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명단에서 HD현대가 빠진 것을 두고 현지 주민과 국제 인권단체 등이 반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HD현대의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계속 활동하는 한 OHCHR의 명단에 HD현대가 등재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인권경영” 선언 무색, 대응 못 하나 안 하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하는 건 HD현대건설기계가 지난해 선포한 ‘인권경영’ 방침과도 어긋난다. HD현대는 2022년 7월 20일 최철곤 대표이사 명의로 ‘인권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서 HD현대는 “글로벌 건설기계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하는 인권경영을 적극 실천하겠다”라며 “임직원은 물론 고객, 이해관계자, 지역사회에 대해 인권 존중과 관련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밝혔다. 중요한 건 그다음 문구다. 회사는 “인권경영의 실천을 위해 ‘유엔세계인권선언’과 ‘유엔 기업과 인권에 대한 이행 원칙(UNGPs)’ 등 각종 국제 인권 기준 및 규범이 제시하는 인권·노동·환경·반부패 등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지할 것”이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HD현대가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UNGPs’는 다국적기업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늘면서 기업에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국제 기준이다. 규범이나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강제성은 없지만 채택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인권경영의 기준으로 많이 도입했다. 법무부도 2021년 <기업과 인권>이라는 발간물을 통해 UNGPs에서 규정하는 내용과 각종 기준을 소개하는 등 국내 기업에 준용을 권고했다.
UNGPs에 따르면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유형은 직·간접적 영향에 따라 ‘유발’, ‘기여’, ‘연관’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나현필 기업인권네트워크 상임활동가에 따르면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 문제는 이중 가장 개입 정도가 낮은 단계인 ‘연관’에 해당할 수 있다. UNGPs는 이 같은 ‘연관’ 행위에 대해서도 기업이 인권 실사 대상으로 삼을 것과 이해관계자의 참여, 인권영향평가, 리스크 완화 및 제거조치, 정보공개, 피해구제 등의 활동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현필 상임활동가는 “HD현대가 선언한 인권경영을 고려하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자사의 굴착기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인권 실사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국내 기업의 경우 인권경영을 도입하면서도 주로 생산과정의 노동·환경 문제에 신경을 쓰고, 해외 인권문제엔 무관심한 성향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아예 사례가 없지는 않다. 국제앰네스티는 2022년 11월 “미얀마 군부의 전쟁범죄에 이용되는 항공연료 수송에 푸마 에너지, 팬오션 등이 연루됐다”라고 발표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발표 직전 푸마 에너지는 사전 질의를 받고 “미얀마에서 철수하겠다”라고 알려왔다. 국내 해상물류기업인 팬오션도 “쿠데타가 종식될 때까지 미얀마로 가는 항공연료 선적을 중단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자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는 “HD현대건설기계는 더 이상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인권 실사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라며 “국제인도법 및 국제인권기준에 준하는 권리가 현지에서 보장될 때까지 이스라엘 중개업체와의 사업관계를 일단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