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톱클래스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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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엄마, 톱클래스가 뭐야?” 대형 서점에서 이런 대화를 엿들었다. 어린이는 한글을 떼고 이것저것 읽어보는 중인 것 같았다. “응? 제일 잘한다는 뜻이야.”

새학기를 앞둔 지난 2월 19일 어린이들이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 도매시장에서 학용품 등을 고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새학기를 앞둔 지난 2월 19일 어린이들이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 도매시장에서 학용품 등을 고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옆에 있던 나도 속으로 답해보았다. ‘톱은 꼭대기야. 산의 꼭대기. 클래스는 뭔가를 나누는 거야. 낮은 데 있는 사람, 높은 데 있는 사람. 꼭대기에 올라간 한 줌의 사람들을 톱클래스라고 부르는 거야.’

지난해 초·중·고 학부모가 쓴 사교육비는 26조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영어유치원’ 등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사교육비는 포함도 안 된 수치다. 올해 교육부의 유·초·중등 부문 예산이 81조원이니, 교육예산과 견주어도 상당한 규모다. 사교육비 지출은 당연하게도, 가구 소득별 격차가 매우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나라가 떠들썩했던 게 2019년 초였다. 불과 4년새 1명도 너무나 대단해 보이는 상황이 됐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OECD 평균인 1.59명(2020년)과도 차이가 상당하다. 무엇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삶을 물려주는 일을 이토록 두려워하게 했을까.

아이를 낳으라고 닦달하기 전에 청년의 삶에 주목하라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편에선 보육과 양육에 투자해봐야 출생률은 오르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15년간 이에 방점을 두고 280조원을 썼지만, 소용이 없지 않았냐는 것이다. 귀한 세금을 제대로 써야 하는 건 맞지만, 자칫 이 논의가 미래 세대에 돌아갈 몫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선 안 될 것 같다.

아이들은 곧잘 한국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가족주의에 기반을 둬 부모와 ‘한 덩어리’로 취급된다. 하지만 부모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국가)가 아이를 필요로 한다면, 누구의 아이든 잘 자라도록 지원하는 게 옳지 않나. 더구나 아이들 수가 이처럼 급감하는 때라면 말이다.

가진 것을 옹골차게 물려주려는 이들이 기득권으로 아이의 앞길을 방어하려 온갖 수단을 쓰는 것을 본다. 올라보지 못한 특권층으로 아이를 밀어 넣겠다고 삶을 송두리째 갈아 넣는 이들도 본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진실은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쓴 사회학자 오찬호의 설명에 더 가까울 듯하다. 그는 “사교육의 효과는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고 분석했다. “헬조선에서 ‘평균치’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니 사교육을 멈출 수 없다. 모두가 멈추지 않으니 모두가 시작점을 앞당긴다.”

‘톱클래스’를 원하는 이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고 모든 아이의 성장을 동등하게, 더욱 전폭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지금 국가가 할 일이 아닐까. 부모를 대신해 자녀를 위한 투자를 책임지겠다고, 형편에 상관없이 맘껏 놀고 배우라고 아이들을 향해 약속하는 국가를 꿈꾼다. 세상은 결국 혈연의 것을 물려받아 떵떵거리는 이들이 아니라 기대를 배반하고 부모를 뛰어넘는 자식들이 밀고 갈 것이다. 함께 이들을 길러냈으면 좋겠다.

<최미랑 뉴스레터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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