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동물 중에는 포식자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자신의 딱딱한 신체 구조를 이용하는 종이 더러 있다. 바다거북은 견고한 등딱지 속에 몸을 숨기고,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와 조개류는 단단한 껍데기가 있다. 어류 중에는 비늘이 변형된 딱딱한 외피를 덮어쓰고 있는 종도 발견된다. 이들과 달리 집게는 방어 수단을 외부에서 찾는다. 바로 딱딱한 고둥 껍데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해수면 아래 얕은 바닥, 한 무리의 고둥 사이로 뒤뚱뒤뚱 움직이는 고둥이 보였다. 조심스레 집어 보니 빈껍데기 속에 집게가 들어 있다. 위협을 느낀 집게는 돌출된 두 눈과 몸을 고둥 껍데기 속으로 부리나케 집어넣는다. 그러고선 오른쪽 큰 집게발로 입구를 막는다. 그 동작의 민첩함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집게가 고둥 껍데기에 들어가 사는 것은 부드러운 살이 그대로 노출된 말랑말랑한 배와 꼬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집게는 다른 갑각류처럼 외골격 전체가 석회화돼 있지 않다. 머리와 다리가 딱딱한 껍데기나 가시 같은 털에 싸여 있지만 배 부분은 얇은 막뿐이라 포식자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다. 이 연약한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딱딱한 고둥 껍데기를 이용한다.
얕은 수심 바위틈에서 집게와 눈이 마주쳤다. 집게는 자신을 위협할지, 친근한 이웃인지, 단지 지나가는 객인지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다.
<박수현 수중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