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지난 1월 20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구역에 불이 났다. 5시간 걸려 불길을 잡았지만, 다닥다닥 붙은 비닐·합판 소재의 집들은 잿더미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날 화재로 주택 60여 채가 타고 44가구 6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닷새 뒤인 25일, 전국에 한파특보가 발효됐다. 구룡마을을 찾았다. 이날 서울은 아침 기온이 영하 16.7도, 체감온도는 영하 25.5도까지 내려갔다. 몇몇 이재민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소된 집을 찾았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일그러진 기둥과 벽, 그을린 소화기, 타버린 책, 까맣게 변한 가재도구를 둘러보며 황망해했다. 그들을 따라 현장을 훑던 중 재로 변해 여기저기 흩어진 졸업앨범이 눈에 띄었다. 한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을 친구와 선생님, 정든 공간이 담긴 사진이 조각조각 찢겨 있었다. 불에 타서 사라진 건 물건만이 아니었다.
구룡마을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준비하던 1980년대 후반 강남 도심개발로 탄생했다. 주거지에서 밀려난 영세민 1000여 가구가 구룡산과 대모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재난에 취약한 주거 형태인 탓에 주민들은 구호소로 대피했다 돌아오는 일을 거의 매년 반복하고 있다.
화재 현장 한쪽에 설치된 비상대책본부 천막에서 연탄난로를 쬐던 주민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사진·글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