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점 혁명’ 칼 뽑은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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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규제론자 3인 앞세워 ‘기업결합 가이드라인’ 개정

미 의회엔 반독점법 개혁·빅테크 규제안 등 계류 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정책은 이전의 정부, 공화당은 물론이고 오바마 정부와도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지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오바마 정부 당시 테크기업은 혁신의 상징이었다.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를 비롯해 빅테크 기업들이 잠재적 경쟁자 인수를 통해 지배력을 키웠지만, 정부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승인한 테크기업 인수·합병은 600건에 이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이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초기부터 빅테크 규제에 나섰다. 반독점법 집행을 양분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 반독점국의 인사를 보면 방향이 명확하다. 예일대 로스쿨 재학 중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을 발표(2017)해 주목받은 리나 칸이 2021년 6월 FTC 위원장으로, ‘구글의 적’으로 불리던 변호사 조너선 캔터가 7월에 법무부 반독점국장으로 임명됐다. 국가경제위원회 기술·경쟁정책 특별자문으로 영입된 팀 우까지 포함하면, 대표적 빅테크 규제론자 3인이 모두 요직을 맡았다.

이런 행보는 단순히 ‘빅테크의 문제가 심각하니 규제하자’가 아니라 ‘반독점법은 무엇을 규제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독점법의 규제 대상은 독점 혹은 대기업 자체가 아니다. 구글이 검색엔진 시장 대부분을 장악해도 그 자체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반독점법 위반의 판단 기준은 경쟁 사업자 수, 시장 집중도 같은 구조적 요소가 아니라 ‘소비자 후생’이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법률가 로버트 보크는 1978년에 펴낸 <반독점 역설>에서 “반독점법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자 후생”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방대법원도 채택하고 반독점법 실무를 지배하는 법리가 된다. 아마존이 시장을 지배해도 소비자가 최저가로 물건을 살 수 있으면 그만이고, 소상공인 피해나 가혹한 노동조건 등은 다른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논리다.

소비자 후생의 법리로는 빅테크를 규제하기 어렵다.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을 둔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를 모을수록 가격을 내리거나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빅테크의 시장점유율이 독점에 가까워지고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해도, 소비자 가격에 영향이 없는 한 반독점법 위반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향력이 커진 빅테크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낸다. 빅테크가 수집하는 광범위한 개인정보는 결국 사람들을 조종하고 기업의 이윤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 러시아 정부가 페이스북을 통해 2016년 대선에 개입한 사례, 가짜뉴스가 넘치는 유튜브는 규제되지 않는 빅테크가 민주정에 미치는 해악을 실증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존 법리에 대한 도전이 등장했다. 칸의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은 제목부터 보크의 책에 대한 도전이다. 칸은 시장을 독점해도 가격에 영향이 없으면 괜찮다는 논리는 빅테크에 적합하지 않고, 가격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아마존을 규제하지 않으면 그 지배력은 더욱 커지고 소상공인, 저임금 노동자가 플랫폼에 종속돼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팀 우 역시 2018년 11월 펴낸 저서 <빅니스>(The Curse of Bigness·큰 것의 저주)에서 패전국 독일, 일본의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독점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은 악영향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반독점법’ 목적은 ‘소비자 후생’

이들은 1916년부터 1939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사상을 이어받았기에 ‘신(新)브랜다이스주의자’로 불린다. 브랜다이스는 기업에 힘이 집중되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으로 20세기 초반 독점기업의 대명사인 록펠러, J. P. 모건 등에 맞서 ‘민중의 변호사’로 불렸다.

21세기에 등장한 그의 후예들 역시 빅테크가 가진 통제하기 어려운 힘을 문제 삼는다. 독점기업의 힘은 입법이나 규제 자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개별적 행태 규제를 넘어 인수·합병이나 사업영역을 제한하고 필요하면 기업을 분할하는 등 구조적 조치를 통해 독점기업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 외에는 실효적 해결책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독점기업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를 해치므로 소비자 후생은 반독점 규제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칸은 로스쿨 교수 시절 뉴욕타임스의 IT 전문 팟캐스트에 나와 “빅테크 독점의 문제는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시민으로서 직면해야 할 문제”라고 했는데, 이 발언은 이들의 사고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토대 위에서 반독점법의 규제 대상을 재정의하기 위한 조치를 다방면에서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7월 ‘경쟁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행정명령으로 할 수 있는 정책은 의회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시행하겠다는 적극적 행보로 이해됐다. 이에 따라 FTC와 법무부 반독점국은 2022년 1월 인수·합병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수평적 기업결합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주된 대상이 빅테크 기업이었음은 물론이다.

“빅테크 독점은 정치적 시민의 문제”

의회 역시 반독점법 개혁과 빅테크 규제를 추진 중이다. ‘미국의 혁신과 온라인 선택권 보장법안’이 2021년 6월 하원 법사위, 2022년 1월 상원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에 따르면 자사 플랫폼에서 자사의 상품·용역을 우선 취급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 제품을, 구글이 유튜브 검색 결과를 상단에 노출할 수 없다. 애플의 폐쇄적 앱스토어 정책 또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경쟁 촉진을 이유로 빅테크의 사업모델 자체를 건드리는 적극적 조치라 할 수 있다.

한편 큰 기대와 달리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지 못하던 FTC의 경우, 작년 12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합병을 금지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주목된다. 최근 가장 큰 규모의 테크기업 인수·합병에 FTC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정책 방향의 일관성을 해치고 다른 작은 규모의 기업결합에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인수·합병으로 게임 사용자에게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전통적 시각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향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빅테크 규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빅테크 규제에 찬성 입장을 밝힌 응답자들이 그로 인해 아마존 프라임의 무료배송이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소비자 후생이 아니라 빅테크의 힘을 문제 삼는 논리가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투어 예매를 진행했는데, 예매 사이트인 티켓마스터에 접속이 폭주해 결국 티켓 판매 자체가 취소되고 의회 청문회가 열릴 정도로 파문이 일었다. 티켓마스터는 콘서트 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과 수직계열화돼 티켓 예매의 약 80%를 차지하는 독점기업이라, 단순한 운영 실수가 아니라 독점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사건에 대해 칸은 “내가 했던 어떤 조치보다 하룻밤 사이에 더 많은 반독점 세력을 만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빅테크의 폐해와 규제가 유권자들의 향후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와 빅테크의 싸움이 단기간에 끝날 리 없다. 의회에 계류 중인 반독점 법안이 최종 입법으로 완수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민주당 의원이라고 모두 빅테크 규제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공화당이 빅테크 규제에 일단 우호적인 건, 트럼프를 소셜미디어에서 퇴출시킨 것처럼 보수의 주장을 억압하는 진보성향 빅테크 기업을 적대시하는 정치적 계산에 기인한다. 소비자 후생을 반독점의 법리로 선언했고, 압도적 보수 우위를 굳힌 연방대법원이 새로운 반독점 규제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미지수다.

20세기 중반 보수진영이 소비자 후생을 내세운 혁명으로 반독점법을 지배하게 됐다면, 바이든 정부는 빅테크를 상대로 반독점법을 재정의하려는 싸움을 시작했다. 이런 시도가 성공한다면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점기업의 행동이 아니라 그 자체를 약화시켜 경쟁을 촉진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신브랜다이스주의자들의 공격과 자신들이 이룩한 제국을 지키기 위한 빅테크의 역습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한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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