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행정서비스 강화로 어려움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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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1월 당시 대우그룹 직원들이 본사 1층 로비에서 금모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1월 당시 대우그룹 직원들이 본사 1층 로비에서 금모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마 전 코로나19를 심하게 않으면서 한 달 만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습니다. 갑작스레 체중이 줄면서 움직일 힘조차 없어 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열흘 이상을 그렇게 지내며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를 읽었습니다. 예전처럼 잔잔히 가슴에 스며들었고 힘들었던 회복과정을 견디는 힘이 돼주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게 됩니다. 푸시킨은 이런 고난을 잘 헤쳐나가라고 격려하는 뜻으로 “시름의 날을 참고 견디면 멀지 않아서 기쁨의 날이 오리니”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려 깊게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살고”라며 일상의 고단함에 지친 우리의 심신을 따뜻하게 다독여주기까지 합니다.

외환위기와 성공 DNA

사무관 시절 본청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일선 세무서장으로 나가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침 시간과 주말을 활용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식단관리도 해 석 달 만에 몸무게를 10kg 줄였습니다. 5kg짜리 아령 두 개가 몸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체중을 줄여본 사람은 알겠지만 힘겨운 운동과 식단관리에 따르는 고통을 참아내고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이겨낸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힘들었던 기억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웠겠지만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순간이었고, 그때가 그리워지기까지 합니다.

25년 전 우리는 아무런 대비도 없이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1997년 상반기 동남아를 휩쓸던 외환위기의 회오리가 그해 11월, 우리나라에도 몰아쳤습니다. 미숙한 세계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제환경 변화로 전조가 보였지만 사전에 대처하지 못해 앉아서 당하고 말았습니다. 외환위기가 현실이 되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방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부도라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IMF 사태를 겪으며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과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세무서 사무실에서 우리 경제부총리와 IMF 협의단이 논의하던 장면을 TV 뉴스로 보았습니다. 주권을 침해하고 온 나라를 고통 속에 빠뜨릴 수 있는 IMF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황망한 장면이었습니다. 이후 순식간에 기업들이 부도로 쓰러지고 셀 수 없는 실업자가 생겼습니다. 국가가 침몰하고 있는데 손도 써볼 수 없는 절망감이 우리를 덮쳤습니다. 입사 2년차 신출내기 세무서 과장이었던 저도 납세자들의 하소연을 무기력하게 들어야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전설처럼 느껴지는 ‘전 국민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외화부채를 갚아나갔습니다. 결혼 전이었던 저도 여섯 살짜리 조카의 돌반지를 가져갔던 기억이 납니다. 대한민국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으로 전 분야의 체질을 바꾸는 개선 작업을 추진했습니다. 이런 희생과 노력으로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IMF 구제금융에 수반한 온갖 제약조건을 극복해내고 더 도약하는 저력을 세계에 보여주고 우리에게 성공 DNA를 새기게 된 것입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시름의 날들을 잘 견뎌낸 결과입니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건물 외벽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건물 외벽에 대형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초부터 시작한 코로나19로 세계는 지금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IMF 사태보다 더 큰 위기가 닥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얼마나 지속될지, 눈앞의 시련을 어떻게 이겨나갈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회 각 분야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 시름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잡아가야 할지 생각해봐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27년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경험밖에 없어 결국 행정 분야로 눈길을 돌립니다.

미국 국세청 출입문 벽면에는 “우리의 사명은 미국 납세자들이 납세의무를 이해하고 이행하는 것을 도우며 세법을 모든 사람에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집행함으로써 미국 납세자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 행정 집행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침해행정의 대표적 기관으로 인식되는 국세청이 그 사명을 최고 서비스 제공이라고 공표한 것입니다. 미국 국세청 명칭도 ‘Internal Revenue Service’(IRS·인터널 레비뉴 서비스)입니다.

침해 아닌 서비스로 전환해야

행정은 서비스입니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현재보다 훨씬 수준 높고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민간의 자율성을 저해한다고 지적되는 수많은 사전규제는 실질적으로 철폐해야 합니다. 정부가 주도하던 생태계가 민간 주도로 형성돼 가는 것에 비례해 규제도 서비스로 전환해야 합니다(이 글을 쓰는 중에 ‘규제 완화가 이뤄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규제법안을 국회가 쏟아낸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습니다). 대표적인 침해행정인 경찰, 국세청에서도 더 많은 서비스가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존 유지를 위한 행정을 제외한 모두가 지시·지도·처벌이 아닌 서비스로 전환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제언은 쉽게 할 수 있어도 실행은 어렵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해 뜨면 사라지는 새벽 안개 같은 전시성 구호보다 제도와 조직문화 개선을 먼저 이뤄야 합니다. 과거와 같은 국민의 희생과 노력보다 정치권과 고위공직자들의 인식 전환과 결단, 실행이 필요합니다.

산업화·민주화 세력은 계속된 정쟁 속에서도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지금의 세대별·지역별·성별 다툼과 이견도 결국에는 용광로에서 녹아 성장과 변화의 동력으로 바뀌리라 믿습니다. 계속된 쟁의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함께 성장시켜온 노사관계의 질적 변화도 이뤄지리라 기대합니다. 연초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소비자가전전시회 ‘CES 2023’에서 우리나라의 참여기업 수가 미국에 이어 2위였다고 합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밝혀줄 기업들의 진취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행정서비스는 이런 여러 사회 주체가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인프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시름의 날을 참고 견디며 멀지 않아 기쁨의 날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행정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잘 구축된 행정서비스 인프라와 민간분야의 역량을 합쳐 우리의 성공 DNA를 다시 한 번 아로새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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