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영향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 1일 ‘2023년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 가계와 기업에 미친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악재가 올해 지속·확대되고 내수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다수 기관과 전문가들도 올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투자·소비의 위축을 경고한다. 가계와 기업은 자산시장 하락, 이자 부담 증가로 고통이 가중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국내 경제성장 위협 요인은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6%. 한국은행(1.7%)과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전망치(1.8%)보다 낮다. 통상 다른 기관들에 비해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는 기재부가 잠재성장률(2%)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망치를 내놓은 배경은 단순하다. “전 세계가 지난해보다 더 힘든 한 해를 보낼 것”(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 총재)이란 전망이 지구촌에 압도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1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에 출연해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이른바 ‘빅3’의 경기 둔화로 인해 세계경제가 더욱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앞서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박, 주요국 통화긴축 등의 영향을 반영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9%(7월 전망)에서 2.7%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미국은 상반기 2개 분기 연속 성장세 둔화가 점쳐지며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잠재수준(2023년 기준 추정치 1.9%)을 크게 밑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코로나19 감염 재확산 등으로 올해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큰 변수로 떠올랐다. IMF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의 비중은 18.1%로 미국(23.9%)에 이어 2위였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가 전 세계 경기침체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다.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472억달러(약 60조원)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경제전망은 엇갈린다. 물가는 하반기에 진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내외 경제전망 기관들은 지난해 10%에 육박하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 시장 예상치를 하회(11월 7.1%)하는 등 추세를 봤을 때 올해 완만한 하향세를 띨 것으로 내다본다. 연준이 조기에 금리 인상 기조를 멈출 것이란 전망의 근거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25일 해외경제포커스에서 “대다수 투자은행(IB)은 연준이 최종 정책금리가 5~5.25% 수준이 되는 3월 또는 5월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준의 최종 정책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추세적으로 하락해 정책금리를 밑도는 시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준은 시장의 이런 예측에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연준은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제로금리 시대를 마감한 이후 현재 기준금리 상단을 연 4.5%까지 올려놓은 상태다. 올 연말에는 5.00~5.25%(중간값 5.1%) 수준에 달할 것으로 봤다. 금리 상단이 현재보다 0.7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지난 1월 4일 공개된 12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을 보면, 회의 참석자들은 “위원회의 대응에 대한 대중의 오해로 금융여건이 부적절하게 완화되면 물가안정을 복원하려는 위원회의 노력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금리 인하가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 위원은 19명의 FOMC 위원 중 한 명도 없었다. 연내 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시장의 낙관론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와 경기침체 현실화 여부에 따라 금리 정책이 좌우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 연준의 기조로 봤을 땐 상당 기간 긴축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KIF)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해외 투자은행들을 중심으로 연준이 올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다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주로 나오는 반면 연준은 인하보다는 연말까지 고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경제주체들의 ‘혹한기’ 온다 이러한 대외 불확실성 요인 지속과 확대의 영향으로 올해 국내 경제성장은 위축되고 물가상승 압력도 장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은 등은 당분간 국내 물가수준이 물가안정목표치(2%)를 한참 웃도는 5% 안팎의 고점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직접적인 물가상승 압력 요인은 전기료와 버스·택시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다. 전기료는 올해 1분기(1~3월) kWh(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됐다. 4인 가구 기준(월 307kWh) 요금은 4022원(부가세 전력기반기금 미포함) 늘어난다. 가스요금은 2분기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지자체가 결정하는 대중교통 요금과 상하수도 요금 등도 인상될 예정이다. 서울 택시 기본요금은 2월부터 4800원으로 1000원 오르고, 4월에는 지하철과 시내버스 등 요금이 300원씩 오른다.
미 연준의 통화 긴축은 한·미 간 금리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이는 통화당국 부담을 늘리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외국인 자금 유출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을 부채질한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23일 ‘2023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에서 “국내 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내년 중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올해도 긴축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 기준금리는 연 3.25%. 오는 1월 13일 열릴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인상될 여지가 있다.
금리 인상의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연 최대 7%대 수준이던 시중은행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월 3일 기준(5대 은행) 5.25~8.12%로 상승했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26일 한은으로부터 받은 ‘자영업자의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변동 규모’ 현황을 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 이자 부담은 연간 7조4000억원 늘었다. 1인당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추가 이자 부담은 0.25%포인트 인상 때 60만원, 1%포인트 인상 때 238만원이다. 이는 한은이 자영업자 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3분기 말 약 72.7%) 등을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다. 자영업자 대출은 2020년 1분기 말 700조원에서 지난해 3분기 1014조2000억원으로 크게 불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을 보더라도 가계부채는 1870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기업부채는 1722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0% 각각 늘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일 신년사에서 “(지난해) 금리상승으로 국민의 어려움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높은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올해도 녹록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 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 증가와 부동산시장 침체 등 민간소비가 급속하게 얼어붙을 공산이 크다. 기재부는 1월 4일 설 민생대책에서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긴축이 계속되며 금리상승으로 인해 가계와 소상공인 등 취약부문 대출이자 부담도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지난해 12월 28일 ‘2023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고금리 지속 과정에서 과다차입부문의 부실 우려 등으로 금융시장 경색이 초래되면 실물경제 부문의 신용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내수부진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당분간 통화긴축 정책을 유지하고, 재정당국은 한정된 재원을 단기적인 성장촉진보다는 취약계층 지원과 미래여건 변화 대응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금리 인상 영향으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이다. 특히 상반기에 경제주체들의 어려움이 가장 클 것으로 본다. 당국이 경기침체 우려에도 경기를 부양시키거나 금리 인하를 쉽사리 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대응 여력이 약한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