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내 경기는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GDP 성장률이 1.7%로 낮아지겠으나, 경제위기가 아닌 경기 사이클상 둔화 국면으로 평가된다. 실물경기는 상반기 위축되다 하반기 반등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통화정책이 주도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 위험을 뒤늦게 인지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함에 따라 시중 유동성이 급속히 축소됐다. 실물경제에도 시차를 두고 부정적 영향(기업이익 감소)이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과 채권가격이 동반 급락했다. 미 달러화는 초강세를 나타냈다. 상당수 투자자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약세장이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3고1저’(고물가·고금리·고환율·저주가)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무역적자 확대,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등의 영향으로 고공행진을 보였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국내 자금시장 경색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콜 옵션) 번복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우려가 가세하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반도체 등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이익 기대치가 하향 조정되면서 주가지수는 연초 이후 계속 낮아졌다.
지난해 11월에 들어서야 금융시장은 안정 기미를 찾았다. 정책당국이 5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회사채 금리 급등세가 멈췄다. 지난해 11월까지 4번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연준은 12월 14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0%포인트(상단 4.50%)로 속도를 늦췄다. 금융시장에서는 물가 우려보다 경기둔화 때문에 연준의 긴축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를 반영해 원·달러 환율이 하락했다.
미 연준 속도 조절과 양극단의 전망 2023년 금융시장에서는 ‘3고1저’ 현상이 점차 진정되리라고 전망한다. 즉 물가안정 과정에서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장기금리가 하락하고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된 가운데 주가는 기업이익 감소 가능성이 상존해 반등 폭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국내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살펴보면, 연준은 올해 상반기 5.00~5.25%포인트(현 상단 4.50%) 수준에서 금리 인상 기조를 멈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FOMC에서 연준은 2023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1.2→0.5%)를 낮췄지만, 물가상승률 예상치(3.1→3.5%)는 높이면서 점도표상 기준금리 고점을 4.75%에서 5.25%로 상향 조정했다. 이를 배경으로 연준이 매파적 발언을 지속하고 있지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미국의 물가안정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서비스물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공급망 개선과 재고 부담으로 재화 가격이 하락하고 집세와 유가도 안정세를 보여 2023년 미국 물가상승률은 연준 전망치(3.5%)를 하회할 가능성이 크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다수의 투자은행(IB)은 미국 가계와 기업의 재무상황이 건실하기 때문에 2023년에 극심한 신용경색, 부도 급증, 대량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하고, 연착륙 또는 완만한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화 강세 기조는 더욱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국내 금융시장은 미국 경기둔화 우려 확산으로 양극단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일부 기관들은 동시다발적인 글로벌 리세션(경기침체)으로 국내 수출이 급감하고 주택시장 침체와 금리 급등이 가계부채 조정을 불러와 민간소비가 감소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를 하회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비관적 시나리오 하에서는 현재 3.25%인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말에는 2.00~2.50% 수준까지 인하되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로 다시 높아지면서 코스피도 2000선을 하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면 대다수 기관은 국내 경제성장률이 1% 중반대로 둔화되는 연착륙을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성장세가 국가별로 차별화되면서 중국 경기 반등이 한국에 도움을 주고, 물가안정 이후 국내에서 내수와 부동산시장 부양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해 초 한두 차례 올린 후 하반기에 한 차례 인하할 것으로 예측한다. 원·달러 환율은 완만하게 낮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스피지수도 저점을 다지고 반등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양측의 주장을 점검해보면, 올해 상반기에는 경기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GDP 성장률이 1%를 하회하는 경착륙 시나리오는 사실상 경제위기를 의미한다. 최근 물가여건 개선 흐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완화 움직임, 가계·기업부문의 재무건전성, 당국의 정책 여력에 비춰 극단적 비관론으로 평가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연간 GDP 성장률이 1%를 하회한 경우는 2009년(0.8%), 2020년(-0.7%) 등 두 차례 위기에 불과했다.
현재 5% 수준인 물가상승률은 국제유가 안정, 원·달러 환율 하락에 힘입어 여름에는 2%대까지 낮아져 가계의 실질소득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정책당국이 경기회복에 나설 수 있는 여건도 제공할 전망이다. 글로벌 경제는 동시다발적 침체보다 나라별로 성장률 격차가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빠르게 완화하고 있어 한국의 수출 부진을 일정 부분 상쇄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 미국처럼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전체 가계와 기업의 순자산이 크게 늘어나 금리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 2022년 9월 말 현재 가계와 기업(비금융법인)의 순금융자산은 각각 2592조원과 143조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 수준(가계 2102조원·기업 40조원)을 크게 상회한다. 최근 회사채·기업어음(CP) 금리 하락 등 자금경색 완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데는 근본적으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개선돼 취약차주(다중 채무자·영세 자영업자·한계기업·부동산 PF) 부실이 시스템 위기로 파급되지는 않으리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분기 금리 인상 후 4분기 인하 전망 종합하면 2023년 국내 경기는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GDP 성장률이 1.7%로 낮아지겠으나, 이는 경제위기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 사이클상 둔화국면으로 평가된다. 실물경기는 상반기에 위축되다 하반기에 반등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둔화에 힘입어 금융여건은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중 기준금리를 3.50%로 0.25%포인트 올린 후 경기둔화에 대응해 4분기에는 3.25%로 인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물가 하락, 통화 긴축 완화, 국채발행물량 조정, 경기둔화 우려 등을 반영해 3% 초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도 외국인 채권자금 유입 증가와 글로벌 강달러 완화로 소폭 강세로 전환해 1200원대 안착이 점쳐진다. 특히 내년 한국이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될 경우, 연간 50조~90조원 규모의 자금이 들어와 시중 금리와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코스피는 시장금리 하향 안정화, 위험자산 투자심리 개선 등으로 반등하겠으나, 기업이익 하향조정으로 개선 폭이 제약될 전망이다.
<권영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