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초기부터 저임금·장시간 노동
1987년 첫 경비원노조 출범했지만
2000년대 용역화로 고용불안 심화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고달프다. 그들은 한 사람의 주인이 아닌 수천명 입주자를 상전으로 섬겨야 한다. 자신들이 해야 할 기본업무 외에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주민들의 갖가지 불평과 비난에 몸 둘 바를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보수와 처우는 보잘것없다. 특히 경비원들의 경우 하루 24시간의 고된 근무에도 불구, 받는 보수는 생활급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인간적인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희석씨는 2020년 5월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최씨가 일하던 경비실 앞에 입주민들이 마련한 추모공간 / 권도현 기자
오늘날의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경향신문은 1982년 3월 22일 서울 시내 22개 주요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임금·복지실태 현황을 조사해 이같이 보도했다. 무려 40년 전 작성한 이 기사는 경비노동자들의 오늘을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이들의 노동환경이 되레 뒷걸음질 쳐왔다는 방증이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때로는 경비노동자의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절박한 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정부 정책은 의도한 효과를 내기는커녕 처우가 더 열악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근본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둔 채 일단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식의 대증요법은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현실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80~90년대엔 경비노조 활발 공동주거용 주택인 아파트의 보급이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다. 5년 단위로 이뤄지는 통계청 주택총조사를 보면 1980년에 아파트에 거주하는 서울 인구의 수가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대규모 아파트들은 아파트의 치안, 주변 청소, 주차관리를 담당할 인력을 필요로 했다. 직업으로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등장한 배경이다.
현재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중 상당수는 그때 이미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문제가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다. 예나 지금이나 근로기준법은 ‘감시 또는 단속(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현상)적으로 일하는 사람 중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줄여서 ‘감단직’이라고 한다. 과거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에는 신청만 하면 거의 100% 감단직 승인이 떨어졌다. 정부는 아파트 경비원이 업무 특성상 노동강도가 약해 신체적 피로나 정신적 긴장이 적다고 봤다. 감단직으로 분류하면 하루 8시간의 근로시간 기준과 휴일·휴게에 관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들은 격일로 24시간씩 근무하면서도 일한 시간을 모두 인정받지 못했다. 임금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문제는 경비원에 대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인식이었다. 당시에도 입주민들의 각종 업무지시,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았지만, 입주민의 갑질이 본격적인 문제로 떠오르진 않았다. 경비원들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경비원 임금을 줄일 수 있는 비용으로 보는 입주민들의 시선이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관리비가 오르자 서울 시내 아파트 곳곳에서는 종전까지 아파트 건설사가 맡았던 아파트 관리를 주민자치 방식으로 전환하는 안을 검토했다. 주민자치회가 바통을 넘겨받으면 가장 먼저 검토하는 일이 경비원 인원 감축 내지 경비원 임금 삭감이었다. 1982년 5월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등이 주민자치회로 아파트 관리가 넘어간 뒤 이뤄진 월급 삭감에 항의해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원들의 삶은 지금보다 그때가 더 나았을지 모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경비원들은 노조를 조직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1988년 서울 시내 35개 아파트 관리원들의 연합노조인 서울지역아파트노조가 출범했다. 이들은 임금구조 개선, 경비원들의 휴일 및 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온수 공급을 끊는 등 파업에 나섰고, 아파트 주민대표단체인 전국아파트연합회와 단체교섭을 벌였다. 1990년대는 경비원들이 실질적인 사용자인 아파트 주민대표들과 교섭을 벌일 정도로 경비원 노동운동의 전성기였다.
경비용역이 낳은 고용불안 이 노동운동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침체기에 접어든다. 급속도로 진행된 아파트 관리업의 용역화가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파트 관리를 주민자치회가 하든, 외부 위탁업체가 하든 경비 업무는 용역업체를 선정해 인력을 공급받는 방식이 점차 일반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도입한 파견법은 이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대부분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경비원노조도 진짜 사용자와 협상을 벌이기 어려워졌다. 경비원들은 근로계약은 용역업체와 맺고, 위탁업체 소속 관리소장의 지휘·감독을 받았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주민들은 경비원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가 없었다. 기존 노조들은 점차 유명무실해졌다.

2012년 12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일하다 해고된 경비원들이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단지 내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용역업체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도 가져왔다. 고용불안이다. 용역업체가 1~2년 단위로 계약을 맺다 보니 경비원들의 계약기간도 짧아졌다. 대개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은 경비원들은 연말마다 재계약을 걱정해야 했고, 용역업체가 바뀔 때는 고용 승계를 염려해야 했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노동자들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몇 안 남은 노조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는 올 초 경비 용역업체를 변경하면서 일부 경비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 대상자 다수가 노조원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에는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퇴출 방법”, “신규 낙찰 업체의 고용 승계는 권장사항이라는 점을 이용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용역업체 변경 시 기존 경비원들의 고용을 승계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노조 와해를 시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은 경비원들이 입주민의 불합리한 지시나,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계약 변경에 저항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들의 절반한 처지는 역설적이게도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적용된 2007년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종전까지는 아무리 오래 일터에 머물렀어도 미리 정해놓은 임금만 받을 수 있었던 경비원들에게 그해 처음으로 일한 시간만큼 돈을 주는 시급제가 적용됐다. 1987년 도입된 최저임금제도가 경비원에게는 20년 만에 적용된 것이다. 첫해에는 최저임금의 100%(당시 시급 3480원)가 아닌 70%(시급 2436원)만 지급하고 향후 단계적으로 수준을 상향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을 다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경비원 인건비는 기존보다 크게 상승했다. 기존에 경비노동자들이 그만큼 장시간 노동을 해왔고, 임금 수준은 턱없이 낮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인건비 상승에 아파트단지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하나는 경비초소 통합 등을 통한 경비 인력 감축이었다. 동시에 아파트 현관에 자동문을 설치하고, CCTV를 확대하는 등 설비 자동화가 진행됐다. 경비원들 입장에서는 임금이 오르자 오히려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셈이다. 결국 일어나선 안 될 사고가 터졌다. 2007년 4월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는 자동문과 CCTV 설치로 경비 인력을 대체하겠다며 경비원 6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에 반발한 경비원 허모씨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분신, 끝내 숨졌다.
일부 아파트들은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확대하는 꼼수로 대응하기도 했다. 감단직으로 분류된 경비원들은 휴게시간 동안 일터에 머물면서도 그에 해당하는 임금은 받지 못한다. 당시에는 별도의 휴게공간을 갖추지 않은 아파트가 대다수였기에 경비원은 초소에서 대기하며 휴게시간을 보냈다. 휴게시간이라도 입주민이 도움을 요청하면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비원 입장에서는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형태를 유지하면서 휴게시간을 늘린 건 결국 경비원이 임금을 받는 노동시간을 서류상으로만 줄이는 것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적용 전후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근로조건 변화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비원의 월 휴게시간은 2006년 47.4시간에서 2010년 73.2시간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후로도 경비원의 휴게시간은 끝없이 증가했다. 2008년부터는 경비원에게 최저임금의 80%가 적용됐다. 최저임금의 100% 적용은 2015년에야 이뤄졌다. 정부는 당초 2012년부터 최저임금 100% 적용을 약속했지만 부작용 우려 등을 핑계로 이를 3년 유예했다. 그러나 3년의 유예기간만 가졌을 뿐 별도의 보완책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최저임금이 큰폭으로 상승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도와 달리 경비원들에게는 휴게시간 증가, 인원 감축으로 귀결됐다. 2019년 서울시의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경비원의 일 휴게시간은 9.4시간으로, 월 휴게시간으로 환산하면 141시간에 달했다. 하루 24시간의 근무시간 중 40%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명목상 휴게시간인 셈이다. 고무줄 휴게시간을 허용하는 감단직이라는 굴레, 경비원의 고용불안정 등 고질적 문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임금 수준 상향만 도모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파트노동자 조직화 서울 공동사업단과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지난 11월 29일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2022년 서울 아파트 경비노동자 한마당’을 진행했다. 이들은 초단기계약 근절, 고용안정 보장 등을 요구했다. / 정희완 기자
갑질, 고용불안의 이면 2010년 이후에는 경비원을 상대로 한 갑질 문제가 도드라졌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 시점부터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역시 앞서 누적된 문제들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고용불안은 안 그래도 기울어진 경비원과 입주민 간 힘의 균형을 극단적으로 무너뜨렸다. 재계약이 걸린 경비원에게는 참고 감내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2010년 10월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경비원 A씨가 입주민 B씨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A씨는 유서에서 “주민께 용서를 빕니다. 아무 잘못 없이 폭력을 당하고 보니 머리가 아파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이런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주민 여러분, 내 잘못이 있다면 나를 용서하시고 아파트 경비가 언어폭력과 폭행당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썼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 순간에도 입주민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2014년 10월에는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당시 53세였던 경비원 이만수씨가 분신, 3도 화상을 입고 투병 끝에 사망했다. 극단 선택의 원인은 70대 입주민의 지속적인 인격 모독이었다.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아파트 입주민들은 용역업체 변경을 결정하면서 경비원 78명을 포함 106명의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기로 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른바 ‘괘씸죄’였다. 2020년 5월에는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는 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있었다. 가해자는 “너와 나의 싸움은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며 사직서 작성을 종용했다.
고용불안과 갑질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움직인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3개월, 6개월짜리 초단기계약을 체결하는 경비원들이 늘어났다. 2019년 서울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1년짜리 계약을 체결한 경비원들이 53%로 가장 많았고, 3개월(30.9%)과 6개월 계약(11%)이 뒤를 이었다. 초단기계약을 체결하면 1년 이상 근무했을 때 발생하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경비원 해고를 요구하는 입주민들의 민원에 대응하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갑질성 민원 제기가 들어올 것을 염두에 두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경비원의 짧은 계약을 선호하는 셈이다.
뭉쳐야 산다 끝 간 데 없이 추락하는 경비원의 처우, 잇따른 극단적인 사건들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발족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이하 사업단)이 대표적이다. 그해 고용노동부의 전국 단위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전국 15개 지역의 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경비노동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업단을 꾸렸다. 사업단의 여러 목표 중 하나는 경비원들의 자조 모임 결성 지원이다. 결국 경비원들이 한데 뭉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때 이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이 모임들이 발전해 노조가 될지, 구인·구직 정보를 공유하는 협회가 될지는 개별 모임들의 선택에 달렸다.
이 흐름이 노동운동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아파트단지별 노조 결성과는 결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기존의 아파트별 노조는 진짜 사용자와 교섭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최저임금에 따라 임금이 결정돼 사업장별 임금 교섭도 실효성이 없다. 관리비 절감을 원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업단 발족을 지원한 안성식 서울 강북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의 말이다. “핵심적인 문제인 고용안정 부분을 개별 아파트의 문제로 국한해서 풀려고 하기보다는 정부 차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해법을 찾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예컨대 충남 당진시나 아산시 같은 경우는 지자체가 고용안정기금을 지원한다. 서울 노원구의 경우는 아파트 경비원과 2년 이상 계약을 체결한 아파트에 휴게시설 설치 비용을 지원한다. 초단기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노조가 만들어진다면 개별 사업장을 뛰어넘어 지자체와 교섭을 하거나 국회 입법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경비노동자인 정의헌 사업단 대표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는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라며 “아파트를 노인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들어가는 것은 더 이상 경비노동자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이효상·정희완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