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신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샤워를 한 후 커피 한잔을 마신다.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물을 사용한다. 식사 후 사용한 식기를 닦기 위해서도 물을 사용한다. 식사를 위해 준비한 쌀, 채소, 달걀 등의 식재료도 내가 쓰지는 않았지만, 국내외의 어느 누군가가 많은 물을 소비해 만든 생산품이다. 매일 쓰는 전기도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 등을 통해 물을 끓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생산한다. 또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수력발전을 사용해왔다. 이처럼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영위하는 데 물은 필수 요소다.
인간의 몸 곳곳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혈관처럼 인간활동이 있는 곳에는 상수도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혈관이 몸 안에 숨어 있는 것처럼 상수도관도 지하에 매설돼 눈에 띄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에 잘 잊어버리지만, 상수도는 도시가 형성되고 성장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다. 오래전에는 우물이나 강에서 물을 길어 사용했지만, 이제는 강·호수 같은 수원지에서 취수해 정수하고 상수도관을 통해 개별 소비자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한다.
상수도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을 취수하는 수원지에 남조류가 과대하게 퍼져 물의 색깔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4대강 중 한강, 금강, 영산강에 비해 낙동강은 녹조 문제로 매년 특히 골머리를 앓는다. 최근 대구시와 창원시의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서 남조류가 검출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수돗물은 기본적으로 정수장에서 음용수 기준에 맞춰 정수처리를 하고, 상수관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보낸다. 어떻게 상수관 말단에서 남조류가 검출됐다는 것일까. 수원지에 녹조가 생긴 수돗물을 마셔도 괜찮은 걸까. 과연 수돗물은 지금 안전할까?
녹조의 시작, 조류 녹조는 부영양화된 호수나 유속이 느린 하천에 남조류가 대량 증식해 물색을 현저하게 녹색으로 변화시키는 현상이다. 갈색을 띠는 규조류가 번성해 바다가 붉게 물드는 적조와 대비해 통용되기 시작했다.
녹조의 원인은 조류다. 조류는 강이나 바다, 호수, 연못과 같은 물속에 사는 작은 생물이다. 엽록소를 가지고 있어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산소와 유기물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 작용을 한다. 녹조 문제는 코를 막고 눈을 찡그리게 하지만,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조류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온실효과로 기온이 높았던 초기 지구를 산소가 풍부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먹이사슬의 1차 먹이가 돼 지구 생태계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무시무시한 우주 방사선을 막아낼 오존층도 만들었다. 지금의 ‘푸른별’ 지구는 조류가 있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조류가 지금 비난을 받고 있다. 수생태계에 꼭 필요한 생명체지만 너무 과다하게 증식해 수생식물의 광합성을 방해하고 산소 부족을 일으키는 등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녹조의 주성분인 남조류는 냄새물질과 독소를 생성한다. 냄새물질은 인체에 영향을 주진 않으나, 수돗물의 맛을 떨어뜨리고 불쾌감을 유발한다. 물에서 나는 흙냄새나 곰팡내는 남조류가 엽록소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또한 ‘마이크로시스틴’으로 대표되는 남조류의 독성물질은 간세포를 파괴해 두통, 열, 설사, 구토 등을 일으킨다. 미량이라도 오래 복용하면 간질환을 비롯한 만성 피해를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음용수의 마이크로시스틴 기준을 1ppb(물 무게의 10억 분의 1) 이하로 정했다. 이는 맹독으로 사용이 금지된 DDT와 같은 수준이다. 지금 낙동강에서는 녹조 발생 시 마이크로시스틴 수준이 WHO 기준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해외의 강이나 호수에서도 녹조가 발생한다. 각 나라는 녹조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구증가와 산업화에 따라 오염물질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기후온난화로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녹조는 더욱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오대호 중 하나인 이리호(Lake Erie)는 미국과 캐나다에 접하고, 남쪽으로 미국 오하이오주·펜실베이니아주·뉴욕주와 서쪽으로는 미시간주와 닿아 있다.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닿아 있다. 인근지역 1100만명이 상수원으로 이용한다. 주변 과수농사와 와인용 포도재배에도 사용한다. 산업혁명 시기 이리호에서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산업용 담수는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버펄로 등이 세계 굴지의 중공업 산업도시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물을 마음껏 오남용한 결과는 처참했다. 이리호는 1970년대부터 녹조현상과 수질 악화, 수생태계 오염 문제를 겪어왔다. 이리호로 유입되는 하·폐수의 방류수를 관리하면서 수질이 1990년대 들어 개선되는 듯했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 녹조가 심해지고 있다. 2014년은 특히 정도가 심각해 주변 도시의 식수공급을 중단할 정도였다. 관련 오염 규제와 법률을 만들어 시행 중이지만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이리호의 녹조 관련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수돗물 문제 녹조가 발생하면 낚시, 수상스키 등 수상 여가활동을 즐기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남조류가 발생시키는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 신체적인 접촉이나 어패류의 섭취를 금하는 것이 좋다. 또한 유해 남조류가 대량으로 발생한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면 농작물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녹조현상의 다른-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문제는 수돗물로 이용되는 많은 수원지가 녹조 문제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녹조와 독성물질로 오염된 물을 수돗물의 원수로 이용한다면 이후 정수처리 과정을 거치더라도 불안감을 남긴다. 최근 들어 더욱 심해진 녹조현상과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서 남조류가 검출됐다는 소식은 수돗물의 안전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수장에 들어가는 남조류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조류의 냄새와 독성물질은 정수처리를 통해 음용수 기준에 맞게 제거가 가능하다. 환경부와 관련 상수도 사업본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취수장 주변 조류 차단막과 취수탑을 이용해 녹조에 따른 환경변화에 따라 적절한 취수 수심을 선택함으로써 조류의 유입을 최소화시킨다. 남조류의 특성상 주로 수면에 부유하기에 수심 5~6m에 이르는 깊은 곳에서 취수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수장으로 유입된 조류는 분말 활성탄의 투입량을 조절해 여과 효율을 높임으로써 수돗물의 안전성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오존과 염소를 이용한 소독과정을 통해 남아 있는 독성물질을 제거한다. 오존산화를 통해 독성물질과 냄새물질을 제거하고 염소처리를 통해 수돗물에 잔류 염소를 제공함으로써 2차 안전막을 설치한다.
결국 수돗물은 정수처리를 완벽하게 했는지 등 신뢰의 문제다. 녹조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정수장에서 생산되는 수돗물을 수시로-매일-검사하고, 조류독수물질 검사결과를 공공에 발표하면 신뢰는 자연히 회복된다. 필요할 시 검사과정을 환경단체와 함께 공유함으로써 검사결과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도 있다.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 남조류가 나온다는 환경단체의 주장과 정수장에서 검출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주장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이 두 주장은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이 같은 수질상태로 가정집 수돗물로 전달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이 가정은 정수장과 가정집 사이에 있는 상수관망과 저수탱크의 오염 가능성을 고려치 않았다. 2019년 발생한 인천시 적수사태, 2021년 춘천시에서 발생한 탁수사태, 최근 2022년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에 발생한 흙탕물사태는 상수관망을 통한 오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파트 가정집에 설치된 저수탱크는 정기적으로 세척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남조류를 포함한 외부 오염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혹시 지금 환경단체와 정부가 벌이는 공방이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려운 문제다. 남조류 문제는 날씨가 추워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수온이 20℃ 이상이 되는 여름과 가을에 주로 증식하고 온도가 맞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매년 방문하는 불청객처럼 내년 여름에도 다시 찾아온다는 얘기다. 지구온난화로 좀더 빈번하고, 좀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JBS 수환경 R&C’는 수자원 관련 디지털 인프라와 녹색전환 연구·컨설팅을 시행하는 기업이다. 필자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환경기업인 하이드라텍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주간경향에 ‘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를 연재한 바 있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