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취재 반성문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학생이었다. 학교에 갈 준비를 하며 양치를 하고 있었다. TV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이 흘러나왔다. 구조 상황을 시시각각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고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자막에 온 신경이 멈춤 상태가 됐다. 그날 오래도록 칫솔을 입에 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지난 11월 15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지난 11월 15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일을 하며 ‘문제’로 보이는 사안들을 취재했다. 가끔은 캘린더성 기사도 썼다. 명절을 맞아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을 담은 기사처럼 핼러윈도 그중 하나였다. 많은 시민이 이태원으로 삼삼오오 모이고 기자들은 들뜬 표정의 시민들을 포착해 인터뷰한다. 지난 10월 29일 현장을 취재하러 간 후배에게는 여느 핼러윈 취재처럼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둔 터였다.

이태원의 한 골목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는 정보가 당일 밤 기자들에게 퍼졌다. 후배가 곧장 현장으로 갔다. 경황이 없었지만 ‘추정’이 아니라 ‘사실’인 정보를 쓰려 노력했다. 특히 인명피해 규모를 틀리지 않게 쓰려고 여러차례 확인했다. 참사 당일 일부 언론이 피해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을 기사에 실어 비판받았다. 현장에 있던 후배가 “이 사진은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줬고, 선배가 나를 포함한 팀원들에게 주의사항을 환기해준 덕분에 참사 당일 사진 사용에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8년 전 TV 앞에서 뉴스로 참사 소식을 접하며 멍하니 있던 대학생은 기자가 돼 마주한 참사 현장에서도 쉬이 입을 뗄 수 없었다. 현장 ‘기록’에 필요한 부분은 동료들 덕분에 간신히 채워갈 수 있었다. 기사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마주해 나오는 결과물이다. 기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뒤늦게나마 다시 바라보게 됐다.

어떻게 하면 기자가 덜 다치며 취재할 수 있을지,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심화시키지 않기 위해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의 고민이 참사 당일을 지나고서야 밀려왔다. 이는 비단 기자 개인의 몫이 아니다. 회사와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에 대한 질문과 답이 지연된 사이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다. 참사 피해자와 이들 곁의 사람들, 취재를 이어온 기자도 그러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든 재난보도준칙은 취재와 보도 시 유의사항과 재난보도 사전 교육, 사후 모니터링 등 언론사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사람에게 한없이 다정한 내용 일색이다. 그러니 이 지침을 받아든 기자들이 조금 더 다정해지면 어떨까. 시간을 들여 재난보도 교육을 하고 취재 과정에서 모두의 회복을 위해 함께 고민하며, 이후에는 보도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소해 보이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대화 속에서 털어놓는 각자의 감정과 생각, 그 안에서 피어나는 공감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세상을 조금씩 더 나아지게 만든다. 계속해서 서로에게 안부를 건네자.

<박하얀 사회부 기자 white@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