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얼굴 없는 검사들>을 출간한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책을 읽었습니다. 3장에 ‘임금 체불 사건’이라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임금체불이 ‘빚의 수렁’으로 이어진다는 대목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임금을 못 받게 되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제도권 금융 대출이 막히면 상상할 수 없는 고금리 사채를 써야 하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평소 깊은 문제의식이 없다 보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체불 피해 노동자가 민사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곧장 체불임금이 지급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사업주의 재산이 없으면 강제집행이 불가능해 승소 판결문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얼굴 없는 검사들>을 읽으면서 임금체불에 무감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반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임금체불을 주간경향의 ‘표지 이야기’로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해 지난 호에 임금체불의 실태,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다루는 기사 두 꼭지를 실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의 반응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산업재해를 제외하면 노동 이슈를 다룬 대부분의 기사에 ‘험악한 내용’의 댓글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공감의 메시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사 중 임금체불을 ‘임금절도’로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한 독자는 “절도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노동자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임금체불을 훨씬 더 절박한 문제로 여긴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울산 A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한다는 한 노동자는 “장기간 임금을 못 받아 답답한 마음에 몇자 적어본다”며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다음 달에 꼭 준다는 식으로 사람을 붙잡아둔다. 정말 갈 데 없는 사람은 나중에 줄 거란 믿음에 일을 한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하청업체에서 일을 못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임금체불은 가족들까지 죽으란 소리다.” 임금체불 근절은 이런 노동자의 현실과 매년 1조원을 웃도는 체불임금액 통계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