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등줄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이 있다면, 북아메리카 서부에는 이와 비슷한-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미국의 뉴멕시코주까지 길이가 4800㎞에 이르는 대산맥인-로키산맥이 있다. 로키(Rocky)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기암의 산봉우리들로 이뤄진 산맥이다. 특히 캐나다 쪽의 로키산맥은 눈이 오랫동안 축적돼 만들어진 빙원, 그 빙원의 무게에 의해 천천히 움직이는 빙하, 빙하가 녹아내려 만들어진 화려한 색상의 호수 등으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장엄하고 수려한 절경으로 매년 수백만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곡 ‘레이크 루이스’는 그가 방문한 로키산맥 루이스호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작곡했다. 이 곡은 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서울 크기의 절반’ 컬럼비아 대빙원 개인적으로 로키산맥 관광의 백미는 컬럼비아 아이스필드(Columbia Icefield)다. 캐나다의 웅장한 자연미를 보여주는 대규모 빙원지대로 면적이 325㎢, 서울시의 절반을 조금 넘고, 100~365m 깊이를 가진 로키산맥에서 가장 큰 빙원이다. 마지막 빙하기인 1만년 전부터 매년 7m 정도의 눈이 내리며 얼고 다시 또 눈이 내려 얼어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형성됐다. 일반 얼음과 다르게 빙원은 푸른색을 띤다. 이는 수천년의 시간 동안 중력에 의해 단단하게 다져져 얼음 내 공기 방울이 작게 압축된 결과다. 푸른색의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물은 투명하다. 이 물이 모여 만들어진 루이스호와 페이토호의 색깔은 에메랄드색이다. 형태와 양,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물의 변신이 신비롭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에서 애서베스카 빙하(Athabasca Glacier)는 산악장비 없이 설상차를 이용해 빙원지대로 진입해 빙하를 관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빙하수의 맛은 어떨까 궁금해 흐르는 물을 떠먹어 보았다. 의외로-당연하겠지만-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얼음물 맛과 다르지 않았다. 그곳의 안전요원에게 푸른 빙하 위에서 일하는 게 부럽다고 전했다. 그는 자연환경에 대한 캐나다인 특유의 자부심과 동시에 걱정을 말했다. 이 빙하가 매년 지구온난화로 점점 녹아내려 해마다 몇m씩 뒤로 밀려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애서베스카 빙하는 지난 125년 동안 1.5㎞ 이상 후퇴했으며 부피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애서베스카 빙하의 과거와 현재 사진은 지구온난화의 뚜렷한 증거로 여러 논문과 기사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식수원이 고갈되고, 주변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며 결국 인류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는 태평양, 대서양 그리고 북극해로 이어지는 3개의 큰 강(컬럼비아강·북사스카추완강·애서베스카-매켄지강)의 수원지다. 빙하로부터 내려오는 수원지의 식수가 줄어들면서 강 주변 농산물 생산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상승한 해수면은 인구가 밀집된 해변 도시에 바닷물 범람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
1.12도 더워진 지구의 ‘대홍수’ 지구온난화에는 빙하를 많이 녹이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구 대기가 따뜻해지면서 대기에 존재하는 수분의 양이 증가했다. 노아(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는 2021년 평균 온도가 1880~1920년 평균 온도보다 1.12도 상승했다고 발표했는데 대기 수분 증가량은 7% 이상이다. 이는 지구의 물 순환 사이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기후변화를 야기한다. 증발하는 물의 양과 다시 비의 형태로 대지에 돌아오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강우량을 가진 폭우의 가능성을 높였다. 증발이 증가한 대지는 더 건조되고, 단단해진 땅의 특성으로 비가 왔을 때 물을 흘려보내 폭우와 함께 대규모 홍수의 위험을 키웠다.
지난 8월 초 지구상에서 가장 덥고 건조하기로 유명한 미국 데스밸리 국립공원에 1000년에 한 번 등장하는-한해에 발생할 확률이 0.1%에 해당하는-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연평균 강수량의 약 75%가 3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건조한 사막협곡이 호수로 변했다.
비슷한 시기에 대홍수가 켄터키, 미주리, 일리노이 3개 주를 휩쓸었다. 폭우는 가옥을 파괴하고 농작물을 휩쓸었다. 최소 39명이 사망했다. 이 집중호우는 과거 최대 강우량 기록을 깨며 지역사회를 파괴했다. 특히 켄터키주는 4일간 350~400㎜의 강우량으로 최소 37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컸다.
같은 8월 초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은 500㎜의 물 폭탄을 맞았다. 특히 서울시의 동작구 지역은 최고 시간당 141.5㎜의 강우량과 일일 강수량 381.5㎜로 기존의 공식 최고 일일 강수량을 뛰어넘었다. 배수시설 인프라가 이번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고 침수 피해를 일으키는 도시 홍수 현상이 발생했다.
인류의 큰 도시들은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강에 근접한 도시는 항상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노출돼 있기에 물을 다스리는 치수는 과거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의 근간이었다. 왜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도시들이 홍수에 속절없이 당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홍수에 대비한 기존의 하천, 하수도 설계에 있다. 홍수에 대비한 하천제방과 하수도는 과거의 관측 강우량에 대비해 설계한다. 일반적으로 하천제방은 50년에서 100년, 하수도는 10년에서 30년 빈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설계한다. 이번 홍수는 그 설계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홍수였다.
두 번째 이유는 기존의 방지대책은 일반적으로 일일 ‘평균’ 강수량에 근거한다. 서울시 동작구의 예처럼 시간당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폭우는 일일 강수량을 기준으로 한 배수 인프라에 부하량을 순간적으로 집중시킨다. 그 순간 배수로의 기능은 정지하고 맨홀에서 물이 역류하며 도시의 저지대가 침수된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높아진 폭우와 홍수의 불확실성이다. 기존의 방지대책들은 ‘과거’의 관측치에 기반을 두는데 기후변화로 불확실해진 미래의 강우량은 과거의 설계기준을 무너뜨린다. 100년 만의 폭우, 100년 만의 폭염, 100년 만의 혹한 같은 역대급 기록은 더 이상 극한 한계치를 나타내지 못한다. 기후변화된 미래에는 매년 발생하는 연례행사가 된다.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은 대기로 인해 국지성 집중폭우가 더 빈번해지고 더 강력해진다. 결국 기존의 홍수 방지책들은 유명무실해지고 물은 도시를 침탈하며 도시 인프라를 붕괴시키고 인명손실을 일으킨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후변화의 위협이 커지면서 이에 대항하는 노력을 미국에서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기후변화 대응 법안-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이 지난 8월 7일에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기후 관련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무려 3690억달러(약 480조원)를 투자한다. 이 법안은 이어 지난 8월 12일 하원도 통과했다.
더 뜨거워지는 미래를 대비한 온실가스 감축에 각국 모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지역 사회, 가정 그리고 개개인이 나서 지구 환경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 등의 자연재해 피해와 희생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자연과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지켜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넘겨주기를 바란다. 로키산맥 호수의 화려한 색 향연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질까? 그랬으면 좋겠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