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이날 5만명이 광화문에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처한 상황과 분야는 다르지만 기후위기 앞에 똘똘 뭉쳤다. 이번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후위기와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GM 2차 하청업체인 DGF오토모티브 부평공장. 지게차가 공장 안팎을 돌아다니며 화물을 운반하고 있다. DGF오토모티브 노조를 이끌고 있는 이재영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장은 얼마 전 회사에 내연기관 지게차를 전기 지게차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기후위기 문제의식을 조합원들과 공유하고 탄소 감축에 동참하기 위해서 지게차만이라도 전기차로 바꿔보자고 했지만, 회사가 부담스러워하더라. 회사 입장에서는 이윤이 발생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렴한 인건비로 먹고사는 하청업체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GM은 일찌감치 RE100(기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을 선언했다. 공급망 맨 끄트머리에 있는 한국GM의 2차 하청업체 DFG오토모티브의 생산현장은 RE100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재영 지회장은 “ESG, 탄소배출량 제로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경영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이는 대기업이나 그 계열사한테나 가능한 것이지 하청업체 현장에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RE100… 하청업체는 빼고 DGF오토모티브는 한국GM 부평공장이 생산하는 내연기관차 자동차부품(칵핏)을 만드는 2차 하청업체다. 한국GM의 생산량에 전적으로 종속된 직서열 체제다. 한국GM 부평2공장은 2022년 8월 이후 생산계획이 없다. 오는 9월과 11월 부평2공장에서 생산하던 트랙스와 말리부가 단종되면서 공장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재영 지회장은 “1공장을 제외하고 2공장 소속 조합원들은 사실상 일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전체 직원이 180명 정도인데 30명 정도가 여기 해당한다. 회사에 고용유지 방안으로 1공장 생산라인으로 전환배치 등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여력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잦은 해고와 고용불안은 늘 있었다. 채용 시 6개월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하지만, 아웃소싱 업체는 자꾸 바뀌었다. 13년을 일해도, 근속연수는 1년을 넘기기 힘들었다. 2020년 5월 이재영 지회장이 노조를 만든 건 이러한 문제들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고용불안이 더욱 심해졌다. 이재영 지회장은 “과거에는 차량이 단종돼 해고돼도 1~2년 다른 일을 하다가 신규 차종이 생산되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조합원들에게 기후위기로 인한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해도 아직 체감을 못 한다. 옛날처럼 해고돼도 언젠가 또 돌아올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내 생각엔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라며 “노동자가 해고당하는 일 없이 고용을 유지하면서 산업전환 시기를 넘어갈 수 있도록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오는 9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에 조합원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고용 불안의 원인이 기후위기로 인한 에너지 전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오랜 시간 누적돼온 불공정한 고용 구조의 문제가 기후위기를 계기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하청업체가 하다못해 지게차 하나 바꾸지 못하고, 전환과 관련해 어떤 준비도 못 하는 데는 지금까지 원청은 단가 후려치기로 하청은 저렴한 인건비로 이윤을 남겨온 오래된 불공정 거래 관행 때문이다.”
기후정의행진은 2019년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대학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처음 열렸다. 그동안 코로나19 유행으로 개최되지 못하다가 3년 만인 올해 두 번째 행진이 기획됐다. 주최 측인 기후정의행동은 이번 행진에 5만명의 시민이 광화문에 모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YWCA연합회 등 크고 작은 여러 시민단체가 조직위원회로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조직 단위로는 올해 처음 참여하게 됐고, 민주노총 조합원들만 1만명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진 ‘기후위기’ 정치 3년 전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세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선언을 실시하라. 둘째, 온실가스 배출제로 계획과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 셋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범국가기구를 구성하라. 기후정의행동은 “(정부가) 이 요구를 모두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기후위기 대응 방향으로 ‘탄소중립’을 내세우지만, 오히려 허구적인 ‘녹색성장’으로 기업과 자본의 새로운 이윤추구와 ‘그린워싱’의 계기를 제공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2050넷제로를 선언하고 2030년에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인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를 위해 국회에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통과시키고 탄소중립위원회라는 범국가기구를 만들었다. 굵직한 약속과 명패는 만들어냈지만 이를 지켜낼 구체적이고 정교한 이행계획이나 실천은 없었다. 특히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부는 아무런 대책과 지원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기후위기 피해의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 근무 중인 정철희 KPS비정규직발전노조 지회장과 김영훈 부지회장도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김 부지회장은 기후정의행진에서 “정부 정책에 의해 발전노동자들이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발전소 폐쇄와 함께 정의로운 전환을 이행하라고 정부에 요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충청남도는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절반에 달하는 29기가 몰려 있는 곳이다.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2020년 12월 보령화력 1·2호기를 조기 폐쇄했고 2025년까지 보령화력 5·6호기와 태안화력 1·2호기, 2045년까지 도내 모든 화력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할 방침이다. 당장 3년 후에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향후 어떻게 전환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 지회장은 “기후위기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른 전환정책이 나와줘야 하는데 전무한 상황이라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 회사 모두 관련한 정보나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있어 자구책으로 노조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최근에는 폐쇄되는 석탄화력발전소 인력을 새로 짓는 LNG(액화천연가스)발전소 인력으로 전환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2021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방안 연구’ 용역보고서는 2034년까지 석탄발전소 30기가 문을 닫게 되면 최대 7935명의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이중 3024명은 LNG발전으로 전환가능하지만 4911명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지회장에게 3024와 4911이라는 숫자는 어느 것도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LNG 발전소에 일자리가 생긴다고 해도 태안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발전소 비정규직 임금으로 태안 외의 다른 지역의 집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정 지회장과 이 부지회장은 Kps 소속 정규직 직원과 함께 팀을 이뤄 동일한 경상정비 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하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1년 단위의 쪼개기 계약으로 일을 하고 있다. 급여와 처우도 큰 차이가 난다. 정 지회장은 “Kps 같은 큰 공기업은 전국 사업소를 두고 있는 순환근무 체제이기 때문에 발전소가 폐쇄된다고 해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2차 협력업체는 순환근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형식적인 ‘취업 알선’이나 재교육 방침이 아닌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악순환에 빠진 기후위기와 사회 불평등 기후위기와 사회 불평등은 서로 악순환의 효과를 낸다. 기후위기가 전환산업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되는 것처럼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취약계층은 기후위기 때문에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예정인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은 “기후위기가 21세기의 가장 큰 건강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세계보건기구는 기후변화로 인한 직간접적 건강 영향으로 2030년부터 2050년 사이에 해마다 25만명이 추가 사망할 것으로 추계했다. 보수적인 세계은행조차 기후변화라는 단일 요인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1억명 이상이 극단적인 빈곤상태로 내몰릴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지만 그중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큰 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원은 “구체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 등에 더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뿐 아니라 위험에 직면하면 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 해를 입은 후 그에 대한 대응력과 회복력이 더 떨어진다는 사실 등이 복합돼 기후위기는 기존의 사회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로즈마리(활동명) 홈리스야학 학생회장도 이번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로즈마리 회장은 “온도가 올라가고 건조해진다고 하는데 우리와 직결된 일이다. 벌이 죽었다고 하고 곤충도 없어지고 바다에 멸치도 사라졌다고 한다. 썩지 않는 일회용품을 많이 쓰고 배달음식도 많이 먹고 너무 편하게 살다보니까 생태계가 이상해졌다. 내일로 미뤄야 할 일이 아니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즈마리 회장은 노숙인들과 저소득층이 폭염과 폭우, 추위에 노출된 상황을 전했다. “주로 서울역과 신림역을 오가며 지내거나 신림동에 있는 지인의 옥탑에서 지낼 때가 있는데, 여름만 되면 무기력에 빠져 숨을 쉴 수가 없다. 말복이 언제 오는지부터 따진다. 그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 더울 때도 너무 힘들고 지치지만, 겨울은 추우면 영하 18도 이하로도 떨어진다. 추워서 핫팩을 끼고 몸을 개 떨듯 한다. 가난해 더위와 추위를 몸으로 맞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든 통장이든 복지사든 한 번씩 돌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정보에 어둡다. 뉴스를 접하기도 어렵다. 그저 오늘 비가 오나, 어디 가면 뭘 먹을 수 있나. 내 짐은 어떻게 됐나 그런 것만 신경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옛날에는 서울역 앞에 낮보호센터가 있었기 때문에 라디오도 듣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어 정보를 접할 공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공간도 없다. 컨테이너 하나라도 설치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경제성장의 욕망과 그 이면의 불평등은 기후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다. 강연과 기고를 통해 과학적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해온 조천호 경희대 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도 이번 행진에 참여한다. 조 교수는 끊임없는 경제성장의 욕망이 자연을 불균형 상태로 만들었고, 그것이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성장은 한쪽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끊임없이 뺏어야 가능하다. 한쪽을 계속 고갈시키고 다른 한쪽을 계속 쌓아두고 있다. 자연은 불균형 상태를 결코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조 교수는 소화하기 벅찰 정도로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가급적 요청에 응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기후위기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는 과학자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보통 환경 사고가 터지고 나면 과학자들이 이를 규명해내고, 그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기후위기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막상 기후위기가 우리 눈앞에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고 경고했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해 2℃ 상승을 넘어서면 지구의 자기증폭성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진입할 수 있어서다. “현재는 1.5℃ 상승 내에서 막아야 그나마 수월할 수 있다. 이를 넘어서게 되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변화하는 게 아니라 지구 스스로 변해버리는 상황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노력도 별 의미가 없는 세상이 온다.” 불균형과 불평등을 강화하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인류에게는 기회가 없다는 경고다.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듣자 참여자들은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내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우정 참여연대 청년위원장은 이번 924기후정의행진이 두 번째 참여다. 2019년에는 한국이 아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교환학생으로 스톡홀름에 있었다. 기후행진에 꼭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섰다기보다는 당시 스톡홀름은 자연스럽게 기후행진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학생들이 모인 단톡방에서도 기후정의행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행진에 직접 참여하면서 막연했던 생각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강 위원장은 “이번 924기후정의행진에 가급적 많은 사람이 참여하길 바라는 이유는 그때의 경험 때문이다. 약간의 관심만 갖고 참여했는데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피켓을 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에 참여하는 ‘정치하는엄마들’은 회원들의 참여신청을 받으며 “당연히 어린이도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이 기후위기의 실제 피해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의 참여는 당연하다고 전했다. “학교에서도 유튜브 등 미디어에서도 기후위기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대부분 어린이는 당장 내년이 어떨지 몰라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은 직접 행동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한다. 본인들의 일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많고 걱정을 많이 하고 대책도 원하고 있다.”
조천호 교수는 기후정의행진이 기후위기에 둔감한 정치권을 각성시킬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시민이 나와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에 알아서 하라고 하면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에너지의 판을 바꾸는 일이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일부 유권자들한테 욕을 먹더라도 정치권이 미래를 위해 책임지고 가야 할 길이다.” 기존의 정치세력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모여 그 힘을 드러내고 여기에 표가 있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보면 ‘해방적 파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위기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결국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도약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인류 전체가 기후위기에 직면한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