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도동 국사봉중 학생들, 교사·학부모·마을과 사회적협동조합 꾸려
기후변화 대응·에너지 자립 실천 활동
전 세계가 폭염과 가뭄, 산불과 홍수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온도가 1.09℃(2021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상승해서 일어난 변화이다. 국제사회는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 안으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해도 21세기 중기(2041~2060)까지는 지구 표면 온도가 최대 2℃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성세대에겐 가장 더운 해가 지금 태어난 세대에겐 생에서 가장 시원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없는 미래세대가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은 가장 크게 오래 받게 되는 끔찍한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배움이 삶과 연계되고, 실천되길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마지노선, 즉 향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의 한계치를 ‘탄소예산’이라고 부른다. 2021년 IPCC가 1.5℃ 목표 달성을 위해 제시한 탄소예산은 4000억t이다. 이 이상 배출하면 1.5℃로 상승폭을 묶어놓기 어렵다는 뜻이다. 연간 온실가스가 400억t 정도 배출되는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탄소예산은 2030년이 되기 전 고갈되거나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손 놓고 있으면 미래세대는 에어컨도, 비행기도 맘 놓고 이용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이런 불평등을 바꾸려면 지금 당장 과감히 행동해야 하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아직도 느긋하게 흘러간다. “당신은 세상 무엇보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들의 눈앞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고 있다”는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2018년 12월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연설 중)에 누구라도 뜨끔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가 주저하는 사이, 아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중학교 학생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 학교 학생들은 2015년부터 학부모, 교사, 마을과 함께 환경·생태 교육에 중심을 둔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활동 중이다. 이들은 매년 생태축제를 열어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생명 다양성, 에너지 자립을 위한 실천 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 9월 7일 국사봉중학교 ‘에너지전환카페’에서 최소옥 교사 조합원과 5명의 학생 조합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국사봉중사협)의 출발점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배움과 삶이 연계되는 수업을 고민하던 차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전환 운동을 하던 마을 주민들과 뜻이 맞아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국사봉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적정기술을 이용한 제로에너지 하우스 개념의 에너지전환카페도 지었다. 기초부터 지붕 공사까지 학생들이 손수 참여해 만들었다.
처음엔 동아리로 활동했는데, 활동의 지속성과 적극성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 최소옥 교사는 “서울 전체에 중학교 협동조합은 3곳에 불과한데, 특히 학생·학부모·교사가 처음 출발부터 마을과 함께 학교협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에는 학생 이사 3명을 포함해 12명의 이사가 있다. 국사봉중학교 351명의 학생 중 5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1만원 이상의 조합비를 내면 가입할 수 있는데 조합비 액수에 상관없이 동등한 1표의 권리를 행사한다.
학생들은 조합 운영에 참여하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경험한다. 조합 이사인 임도경 학생은 “학부모·학생·선생님·마을 등 4주체가 서로 의견을 조율해 결정한다”면서 “학생 이사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대표한다는 점에서 어른들도 우리가 말할 때 진지하게 경청하고, 결정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인 김시우 학생은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 크고 작은 활동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우리끼리 회의해 의견을 전달하면 그 내용이 실제로 많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3학년 정수인 학생은 조합 활동으로 공부에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고 말했다. 배움을 실천하고, 구체적인 배움을 할 공간으로서 협동조합의 의미를 높이 샀다. “학업은 다른 학교에서도 할 수 있지만 사회적 협동조합은 여기밖에 없는 거잖아요. 학생들이 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저는 더 낫다고 생각해요.” 국사봉중학교는 매년 7월 생태축제를 연다. 작년 축제 동안 플리마켓을 열었던 정유경 학생은 “반 애들이 안 쓰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직접 만들어 벼룩시장을 열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면서 “협동조합 활동이 계기가 된 터라 무척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일주일 한 번 지구를 지키는 급식
학교 곳곳에서 기후변화와 연계된 교과 활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3학년 학생들이 국어 융합수업으로 진행한 ‘청소년이 바꾼다 지금 토론회’의 결과물이 한쪽 벽면에 붙어 있었다. 주 1회 기후급식(채식 위주 급식)을 주제로 했다. “기후급식을 주 1회로 늘리면 환경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 주장에 “의무적인 채식급식으로 인해 영향 불균형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 대립했다. 학교는 토론회 결과 모인 학생들의 중지를 따라 주 1회 기후급식을 시작했다.
3개월 전부터 페스코 베지터리언(붉은 육류·닭고기는 먹지 않고, 생선·달걀·유제품은 먹는 채식 유형)인이 됐다는 정수인 학생은 “기후급식은 학생 의견이 잘 반영되고 있다는 걸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면서 “페스코 식단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채식은 그저 푸르고 맛없다는 친구들의 시선도 많이 바뀌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 분석실에선 그간 생태 관련 융합교육의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인포그래픽을 비롯한 여러 전시물 중 수학 활동지가 눈에 띄었다. 먼저 각 가정의 전기, 수도, 교통, 가스요금을 통해 탄소발자국(제품·서비스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확인하고, 가족회의를 열어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두가지 선택하게 했다. 이후 각각의 항목을 x, y로 해 연립방정식을 세운 후 한 달 후 사용량을 비교해 함수 그래프로 그리는 내용이다. 중2 수학의 연립방정식과 함수 단원을 탄소발자국과 연결지었다.
3학년 사회 수행평가로 ‘생태도시 사례 탐구’도 있었다. 한 학생은 과제물에서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주택은 물론 축구장, 학교 등 다양한 시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화석에너지가 아닌 친환경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연계 과제로 ‘우리 마을 생태 전환 마을 만들기 아이디어 제안서’도 있었다. 살고 있는 마을을 생태 전환 마을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방안이 소개됐다. 한 학생은 비건 식당을 제안했는데, “채식을 개인의 힘으로 할 때는 채식 재료인지 아닌지 구별하고 요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채식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을 만들면 그러한 불편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차도 없는 거리를 늘려야 한다고 제안한 학생은 “도로를 없앤 곳에 꽃과 나무를 심어 볼거리를 만들 수 있고, 벤치를 배치해 공원처럼 바꿀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고, 주변 상점들 또한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국사봉중학교는 지난 9월 7일 환경부의 ‘환경교육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환경과 교과 교육을 연결짓는 교사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아이들의 성실한 참여가 더해진 덕분이다.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올해 처음 시작한 사업인데 전국에서 중학교로는 딱 두 곳이 우수학교로 뽑혔다. 최 교사는 “모든 학년, 여러 교과가 함께한다는 점과 학교협동조합, 마을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학교의 강점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미래세대가 무력감을 그만 느끼게 해줬으면”
국사봉중사협이 만든 태양광발전소의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을 보면 올해 누적 발전량이 3만1848㎿h, 이산화탄소 절감량은 13.5t이라고 나온다. 협동조합은 33㎾ 규모의 학교 옥상 태양광에서 생산한 전기를 그린피스에 판매하는 계약을 진행 중이다. 그린피스와 공동으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기로 했다. 발전 수익은 학생들의 복지 증진과 지역사회 나눔 활동에 사용된다. 그린피스 쪽은 학생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태양광발전 전기를 판매하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2018년부터 소셜벤처 수퍼빈이 개발한 ‘네프론’을 설치해 자원순환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네프론은 투명 페트병과 캔을 넣을 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자원순환 로봇이다. 국사봉중사협에선 50개당 1시간을 기준으로 5시간까지 봉사시간을 인정해주고, 그 이상 참여하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상품으로 교환하거나 기부할 수 있는 마일리지를 제공한다. 김시우 학생은 “분리배출을 잘하면 보상을 주는 식으로 벌을 주는 것보다는 상을 주는 게 더 효과적으로 참여를 끌어들일 수 있고 홍보도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자전거도로를 넓히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유럽 등의 선진 사례를 자세히 조사한 후 우리 사회에 적용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국사봉중사협의 모델이 확산하면 변화의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타냈다. 윤신영 학생은 “지구와 환경에 도움을 주고, 기후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수 있는 활동을 협동조합이 할 수 있다”면서 “국사봉중사협의 모델이 전국에 확산한다면, 실제로도 기후변화 대응에 큰 도움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세대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여지를 남겨달라고도 했다. 임도경 학생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감수하며 사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후손이나 다음 세대가 잘 살도록 환경을 어느 정도 만들어주면 이후엔 우리가 알아서 구축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이 지역 주민과 더 적극적으로 연계해 상도동이 생태마을이 되고 더 나아가 동작구가 생태도시가 될 때까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표했다.
기성세대의 반성과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성세대는 미래세대가 무력감을 그만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지금 이렇게 지구 기온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건 우리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많은 청소년이 잠에서 깨면 멸망할 지구를 생각하면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해요. 이를 느낄 때마다 솔직히 억울함이 없지 않고, 바뀌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해요.”(정수인) “저는 어른들이 이제 조금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받을 피해가 조금이라도 줄도록 지구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행동만은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윤신영) 솔직한 만큼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