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어린 생명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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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억울한 어린 생명들을 위하여

태어나 두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아이가 기침할 때마다 아빠는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틀어주며 기침이 잦아들기를 바랐다. 2016년 5월 2일, 서울 여의도의 한 건물에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당시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RB코리아)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아이의 아버지는 “내 손으로 자식을 4개월 동안 서서히 죽였다”며 울부짖었다. 그 이후로 다시 6년이 흘렀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첫 역학조사를 발표한 때로부터는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정부에 신청한 피해자는 7768명에 이른다. 이중 피해가 인정된 사람은 4350명, 사망자는 1784명이다.

피해 인정자 중 88.3%인 3842명은 여태껏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한 옥시나 애경 등 생산기업의 배상을 받지 못했다. 최근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폐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료 공급업체 SK케미칼 전직 임원과 직원들에게 징역 10개월에서 2년을 선고했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생산기업의 전직 임원들은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공론화 1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30일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 한편에 만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을 찾았다. 피해자 가족들이 심은 나무에는 조그마한 푯말이 매달려 있었다. 어린이를 그린 검은색 실루엣 그림이 초록의 숲속에서 시선을 끌었다.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푯말에는 하얀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 ‘억울한 어린 생명들을 위하여’

<사진·글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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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