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난해 겨울이었다. 외과병동 직원 한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 병원 측에서는 그 병동에 출입한 모든 의료진에게 PCR 검사를 시행하라고 요청했다. 응급실 옆에 있는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 대부분의 외과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추운 날씨에 몸을 떨며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 응급실 외과 당직이었다. 응급실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잠시 대기줄에서 벗어나 바로 옆에 있는 응급실로 향했다. 들어가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상황이 심각했던 응급실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당연히 그날 당직이었던 심장내과 교수는 관상동맥 조영술을 해 막힌 심장혈관을 다시 개통했다. 운이 나쁘게도 혈관이 약했는지 그 혈관이 터져버렸다. 다시 혈관에 피가 나는 부분을 스텐트를 넣어 지혈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혈관에서 나온 피가 심장을 감싸고 있던 심낭에 가득 차 심장이 뛰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심낭압전(Cardiac tamponade)의 발생이었다. 그래서 심낭천자(심낭강에 정체된 혈액 등을 빼내는 시술)를 하고 거기에 배액관까지 넣었다고 했다.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갔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심낭압전을 해결하기 위해 바늘을 심장 쪽으로 삽입하는 과정에서 그 바늘이 간을 찢어 대량 출혈이 일어났다. 배가 불러오고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심장내과 교수는 급하게 흉부외과 교수를 불러 체외 산소화 장치인 ‘에크모(ECMO)’를 삽입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연락을 했던 거였다.
환자의 복부 CT를 보니 조영제가 간 내부의 동맥 쪽에서 새는 것이 보였다. 즉시 당직 외과 레지던트에게 마취과에 연락해 급속 수혈 장치와 배 속에서 났던 피를 다시 환자에게 넣어줄 수 있는 장치(Cell Saver)를 미리 준비해달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또 영상의학과에 연락해 수술 들어가기 전에 좌간 동맥을 혈관조영술을 통해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영상의학과 당직 교수가 바로 피가 나는 동맥을 찾아서 막았다. 마취과에서는 그 이후 즉시 수술방으로 환자를 불러줬다. 이제 외과의사가 수술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동료 간담췌외과 교수의 도움을 얻어 함께 환자의 배를 열었다. 이미 났던 피를 걷어내고 나니 간의 왼쪽엽(left lobe)에 자상이 보였다. 이미 동맥을 막았기 때문에 출혈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책이나 논문에서 본 적은 없지만, 평소에 ‘간이 찢어졌을 때 이렇게 꿰매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방식대로 간의 자상을 꿰매고 나니 더 이상의 출혈도 없었다. 에크모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급속수혈장치와 셀 세이버(Cell Saver)가 미리 준비돼 있었기에 환자의 활력징후는 매우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수술을 잘 마무리하고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처음 환자를 진료했던 심장내과 교수가 어찌나 책임감이 강한지, 수술 후에도 환자 담당을 내게 넘기지 않고 직접 맡아 치료를 계속 이어갔다. 환자는 몇주 뒤 무사히 잘 회복해 퇴원했다.
응급의학과, 심장내과, 흉부외과, 영상의학과와 마취과 그리고 외과가 모두 유기적으로 잘 협조가 됐기 때문에 환자를 잘 치료한 모범적인 사례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고 자부하는 모 병원의 간호사가 원내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그 병원에서 수술도 받지 못하고 타원으로 이송까지 가서 결국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최근 이슈가 됐다. 처음부터 환자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개두술을 빨리 시행했어도 예후가 안 좋았을 수 있다. 그럼에도 평소 ‘4차 병원’이라고 자부하며 다른 상급병원에서 보낸 환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자랑하던 그 병원의 모습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술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대중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병원이었다면 학회에 가 있던 의사라도 급하게 와서 수술하지 않았을까. 우리 병원은 수술이 되고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선 안 됐던 이유는 혹시 역설적으로 우리 병원은 그 병원만큼 그렇게 환자가 많지 않아 그런 건 아닐까. 환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의사들은 더 세부적인 분야에 매몰된다. 그 분야에서는 대가가 되지만 다른 분야는 점점 문외한이 돼간다.
지금도 환자들은 외래에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나는 집도 가깝고 여기서 수술을 받고 싶은데, 자꾸 자식들이 서울에 가서 수술받자고 하네요.”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치료 잘 받고 오시라고 하며 소견서를 써준다. 소견서 양식에는 해당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 보내는 경우인지, 아니면 치료할 수 있는데도 보내는지를 체크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앞의 경우로 체크해 보낸 적이 없다.
첨단만 생각하다 기본을 놓치고 있다?
이미 인구와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의 유출도 심하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는 지방에서는 하지 못하는 새로운 의료기술의 도입도 빠르다. 환자가 많으니 일부 환자에게서는 새로운 약이나 기술을, 나머지 환자에게서는 기존 약이나 기술을 적용해 그 효과를 대조해보는 임상시험도 훨씬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최신이나 첨단만 생각하다 정작 기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0년대 중후반에는 나도 그 병원의 외과 레지던트였다. 당시 일본에서 위암 수술을 배우러 온 외과의사가 있었다. 그 상황이 매우 의아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위암 환자가 적거나 위암 수술 실력이 뒤처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매우 재미있었다. “일본에서는 이제 복강경으로만 수술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개복 수술을 배울 기회가 없다. 나는 개복 수술을 배우러 왔다.”
어쩌면 우리나라 의료 전체가 저 일본 의사처럼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히 최신 기술은 습득하겠지만, 기본적인 것을 잃어버린 후에 얻는다면 그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지금 근무 중인 병원도 결국 더 ‘발전’하면 유기적으로 잘 협조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현행 시스템이 오히려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