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법인세 인하, 과연 서민에게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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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 발표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민간주도의 성장을 강조하면서 구체적 수단으로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감세안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인세 감세가 ‘부자 감세’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정부 정책의 목표는 중산층, 서민”이라며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게 해줌으로써 시장 메커니즘이 역동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게 중산층과 서민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가 지난 6월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전면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참여연대가 지난 6월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전면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과연 그럴까. 법인세 감세가 서민에게 도움이 돼 불평등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경제학 논문을 쓴다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결론은 역사적 경험과 그간의 여러 연구 결과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부자의 세금부담을 줄이면 투자와 성장이 촉진되고 모든 국민이 잘살게 된다는 주장은 낙수효과 경제학이라 불린다. 이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가 도입한 보수적인 경제정책의 배경이 됐다. 레이건은 심지어 너무 높은 세금이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세수를 줄이므로 감세가 오히려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아서 래퍼가 식당에서 냅킨에 그렸다는 소위 래퍼 곡선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주술경제학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한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신념을 대변했고, ‘줄푸세’를 주장한 박근혜 정부로까지 이어졌다.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 미칠 수도

문제는 낙수효과의 증거가 미약하며 그런 경제정책이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정책들을 도입한 미국과 영국에서 투자와 성장은 촉진되지 않았고 불평등은 크게 심화됐다.

낙수효과를 지지하는 이들은 법인세를 낮추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가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뚜렷하지 않다. 트럼프 정부가 2018년 법인세를 35%에서 21%로 크게 인하한 이후 여러 분석이 제시됐는데, 대부분은 그 정책이 투자를 촉진하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다른 여러 실증연구를 봐도 법인세 인하의 투자촉진 효과를 지지하는 증거가 명확하지는 않으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에는 미래의 경제상황과 매출 변화 등 다른 요인들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험도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감세 이후 기업의 투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고 고용증가는 미미했던 반면 대기업들의 이윤은 증가했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8년 법인세 인하 이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기업들이 절감한 법인세는 모두 26조700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동안 투자 증가는 이전 4년간에 비해 증가하지 않았고 고용률도 높아지지 않았다.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 하락폭이 훨씬 더 커서 감세의 이득은 대기업에 집중됐다.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들도 법인세의 투자효과에 관해 상반된 결과들을 보고한다. 몇몇 연구는 법인세 인하가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고 보고하지만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그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 기업자료를 사용한 연구들은 거시경제적 효과를 잡아내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법인세 인하가 성장을 촉진하지 못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재정지출을 제약해 총수요를 억제한다면 투자에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선진국 18개국의 50년 동안의 감세 정책을 연구한 국가 간 연구는 감세가 성장을 촉진하는 증거는 없고 불평등을 악화시켰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또한 42개의 실증연구를 함께 분석한 메타스터디에 따르면 법인세 인하가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제로에 가깝다. 법인세 인하는 기업의 이윤을 증가시키지만, 주식은 대부분 부자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소득자의 자본소득을 높여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주별 데이터를 사용한 한 실증연구는 법인세 인하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보고한다.

법인세 인하가 성장률을 높이지 못한다면 세수감소를 낳아 서민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지출을 통제하고 서민을 위한 예산을 크게 늘리지 않은 중요한 이유로 부자 감세가 꼽혔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기 감세로 인해 2010~2012년 3년간 약 17조5000억원의 세수가 줄었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이번 정부의 법인세 인하계획으로 세수가 약 1조7000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이 세수감소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기조와도 반대되며 특히 다른 증세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복지 지출을 제약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새 정부의 법인세 인하계획의 혜택을 보는 기업은 신고기업의 약 0.01%인, 80여개의 극소수 대기업이다.

타 선진국보다 한국의 법인세가 높다고?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국의 법인세가 높다는 것을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는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중앙정부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G7 국가 중 프랑스 다음으로 높고,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방세를 포함한 법인세율은 한국이 G7 국가 평균과 비슷하며 독일이나 일본이 한국보다 높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기업에 중요한 것은 명목세율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과 비교해 법인세를 얼마나 내는지를 보여주는 실효세율이다. 법인세 실효세율은 각종 세금공제로 인해 명목세율보다 낮은데 국제적으로 비교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크만 버클리대 교수 등은 최근 150개국의 자본과 노동에 대한 실효세율 장기데이터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소득 대비 법인세 실효세율 역시 G7 국가 중 중간 수준이었다. 법인세가 조금 높다 해도 다른 국가로 기업이 쉽게 옮겨가지 않겠지만, 법인세 부담이 국제적으로 크다는 주장도 사실은 아니다.

낙수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코미디언 윌 로저스가 193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에게 패배한 공화당의 후버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에서 처음 썼다. 대공황 시기 공화당 정부는 돈이 아래로 흘러가길 바라며 부자들에게 소득을 집중시켰다. 그는 기술자였던 후버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알지만 돈은 사실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는 건 모른다고 꼬집었다. 1980년대에 살아났지만 실패하고 말았던 이 낡은 아이디어가 한국의 새 정부에서 다시 등장한 것은 보수의 사상과 정책의 빈곤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법인세 감세에 관해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그럼 하지 말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하지 마시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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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