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무등산 폭격기, 국보급 투수,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렸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이종범. 호타준족, 바람의 아들로 불리며 수비(유격수)까지 완벽해 ‘야구천재’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지요. 둘은 40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사(史)에서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1회) 기록을 남긴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끈 쌍두마차였습니다. 우승 제조기로까지 불린 김응용 감독이 1998년 시즌을 앞두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유명한 어록이 있습니다.
![[편집실에서]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https://img.khan.co.kr/newsmaker/1461/1461_6.jpg)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투타 양쪽에서 핵심으로 활약하던 ‘에이스’들이 차례로(선동열은 1996년·이종범은 1998년) 일본에 진출하자 전력 약화를 우려하며 김 감독이 했다는 말입니다. 선동열과 이종범의 공백은 천하명장인 그로서도 좀처럼 헤쳐나가기 어려운 상황임을 토로하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최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어록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좌동훈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우상민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입니다. 조선시대 좌의정, 우의정에 빗댄 말로, 풀어쓰면 윤석열 대통령의 왼팔과 오른팔쯤 되겠네요. 참여정부 시절의 ‘좌희정’(안희정) ‘우광재’(이광재)도 떠오르고요. 실세, 최측근을 지칭합니다.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합니다. ‘소통령’, ‘왕수석’, ‘왕차관’이라 불리던 이들도 생각납니다. 선을 넘으면 비선, 문고리 권력으로까지 나아가지요.
대한민국 사정(査定)기관의 양대 축은 검찰과 경찰입니다. 두곳이 요즘 이상합니다. 검찰 조직의 최고 수장인 검찰총장 자리가 여태 비어 있습니다. 할 건 다합니다. 최근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윤석열 사단’을 전진배치했습니다. ‘친윤완판(윤석열 대통령과 친한 검사들이 완전 판치는 세상)’이라는 비판이 야당(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나옵니다. 이원석 대검차장(검찰총장 직무대리)과 충분히 소통했다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좌동훈’의 작품입니다. 검찰총장 시절 ‘식물총장’ 운운하며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맹렬히 대치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했는데 어찌 된 걸까요. 이쯤 되면 검찰총장 임명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고교·대학 후배인 ‘우상민’이 총대를 멨습니다.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을 만들어 비대해진 경찰조직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겠답니다. 경찰이 들고일어났습니다. 꽉 틀어쥐려는 의도라는 거지요. 급기야 경찰청장이 사표를 냈습니다. 검찰에 이어 경찰조직도 수장이 ‘공석(空席)’이 됐습니다. 후임 인사, 어떻게 될까요. 입맛에 맞는 후보가 나타나면 빨라질 겁니다. 여의치 않으면 공석 상태, 오래갈 겁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이은 두 조직의 힘겨루기가 훨씬 더 복잡하게 굴러가는 양상입니다. ‘검찰도 없고, 경찰도 없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아야 할 텐데요.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