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기상 현상도 없다. 누구에게나 비에 대한 특별히 생각나는 추억이 있을 것이다. 비 오는 날 유난히 당기는 음식도, 우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도 꽤 될 것이다.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황순원의 ‘소나기’나 윤흥길의 <장마>는 아직도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에는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다. 숙면을 돕기 위해 특히 빗소리 ASMR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비가 너무 오래 내리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여름철마다 찾아오는 장마 이야기다. 평소보다 환기가 힘들고 습기가 자주 찬다. 음식이 쉽게 부패하고 곰팡이가 잘 생겨 위생과 건강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다. 줄어든 일조량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폭우로 활동량이 줄어 울적한 기분이 심화되기도 한다. 습도는 치솟고 온도는 많이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모기의 개체수가 증가해 짜증을 더욱 돋운다.
눈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습도가 높아지면 각종 세균이 번식하기 쉽고, 전염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장마철을 전후해 크게 유행하는 유행 각결막염, 급성 출혈 결막염에 대한 주의와 예방이 필요하다.
유행 각결막염은 아데노바이러스로 인해 일어나는 염증성 안질환이다. 직간접 접촉으로 옮길 수 있으며 강한 전염력을 갖고 있다. 주요 증상은 충혈, 눈물의 양 증가, 타는 듯한 통증과 가려움증 등이 있다. 심하면 눈앞이 흐려지거나 각막염, 시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주일 정도의 잠복기를 가진 후 발병한다. 2~3주 동안 증상이 나타난다.
엔테로바이러스가 원인인 급성 출혈 결막염은 일명 ‘아폴로눈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행 각결막염 못지않은 전염력을 갖고 있다. 결막에 출혈이 생기고 눈이 심하게 충혈되는 특징을 보인다. 결막부종, 결막하출혈, 눈꺼풀 염증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환자와의 접촉 후 하루 이틀 정도의 잠복기를 갖고 발병해 자연 치유까지는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유행성 눈병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사람이 많은 곳의 방문을 삼가는 것이 좋다. 세균 침투가 쉬운 콘택트렌즈 대신 안경을 착용하는 것도 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손을 깨끗이 씻고, 눈을 함부로 비비지 않고, 스마트 기기를 적정시간만 사용해 눈의 피로도가 증가하지 않게 하는 등 평상시보다 생활습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수영장이나 워터파크, 해수욕장 등의 시설에서는 개인위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물안경을 착용하고 물놀이가 끝난 후에는 깨끗하게 몸을 씻어야 한다.
눈병은 쉽게 전염된다. 가족 등 가까운 사람에게 발생했다면 세면도구와 식기, 수건을 별도로 사용하는 등 직간접적인 접촉을 피하는 게 좋다. 눈병 환자가 사용한 수건은 반드시 삶도록 한다.
눈의 충혈, 가려움증, 통증, 이물감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땐 즉시 가까운 안과를 찾아 소염제와 항생제를 처방받기를 권한다. 많은 유행성 눈병이 2~3주쯤 자연스럽게 치유되지만 적절한 처치 없이 각막염 등의 2차 감염으로 이어지게 되면 시력 저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하다.
<박영순 압구정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