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고팠던 괴물들, 소원 이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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벰: 비컴 휴먼

인간이 되길 갈망할수록 이들은 점점 내몰린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괴물만도 못한 인간’들을 만나고 인간군상의 비뚤어진 욕망을 직접 조우한다.

제목 벰: 비컴 휴먼

제작연도 2020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90분

장르 애니메이션, 액션, 스릴러

감독 이케하타 히로시

출연 코니시 카츠유키, 이치미치 마오, 오노 켄쇼 외

개봉 2022년 6월 16일(시네마캐슬 단독 개봉)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미디어캐슬

㈜미디어캐슬

벨름은 제약회사 홍보부에 근무한다. 어느 날, 사장은 홍보부를 방문해 그를 지명하면서 그가 만든 홍보 책자가 정말 훌륭하다고 치하한다. 동료들은 출세는 떼 놓은 당상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는 정작 그 글을 쓴 기억이 없다. 반복되는 일상. 아이는 저녁밥을 먹기 전에 게임 한판 하겠다 하고, 고등학생 딸은 밖에서 친구들과 먹고 들어왔다며 지나쳐 자기 방으로 간다. 부인에게 “자신이 홍보 책자를 만든 기억이 없다”고 고백하자 부인은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들었다”고 자랑하지 않았냐며 책 뒤편 자신의 서명을 보여준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부인은 제약회사에서 만든 신경안정제를 준다. 뭔가 의심스러운 벨름은 약을 먹지 않고 화장실 변기에 버린다. 그는 자주 악몽을 꾼다. 어떤 ‘존재’에 관련한 실험이다. 자신이 그 ‘존재’로 피실험자가 되는 꿈이다. 다시 회사. 바쁜 업무를 보기 시작하자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책상에 쓰러진다. 홍보부 다른 직원들은 일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어디론가 실려가는 벨름. 실험실이다. 쓰러진 건 연기였다. 처방받은 약을 족족 버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떠올린다. 벰이다.

TV 만화영화 <요괴인간> 첫 극장판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벰! 베라! 베로! 3명의 ‘인간이 되고 싶은 괴물’ 이야기. 일본에서 1968년 제작한 TV 애니메이션이었고, 1970년대 동양방송을 통해 방영됐다. 원래는 총천연색으로 제작한 작품인데, 당시 한국의 TV 사정은 흑백이었다. 음산한 분위기와 염세적 주제. 선행을 베풀면 결국 언젠가는 사람이 되리라고 믿는 이 괴물들의 소원은 이뤄졌을까. 오리지널 시리즈는 열린 결말이었다. 요괴 자매 저택에 화재가 발생한다. 벰과 베라, 베로를 상징하는 물건들(벰의 중절모, 베라의 굽 높은 구두 한짝, 베로의 망토) 잔해만 남기고 흔적을 감췄다.

이번에 만들어진 극장판 <벰: 비컴 휴먼>의 스토리는 오리지널 작품과 이어지지 않는다. 2019년 심야 TV시리즈로 만든 작품의 연장선에서 나온 영화다. 오리지널 작품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베라의 설정이 성년 아줌마에서 ‘전투미소녀물’에나 어울릴 법한 여고생으로 바뀌었으니까. 대머리에 느끼한 중년남이었던 벰도 날렵한 외모에 와이셔츠 정장이 어울리는 샤프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오리지널 작품에서 3명의 괴물은 의사(疑似)가족이다. 벰은 아빠, 베라는 엄마 그리고 베로는 아들로 고도성장기 일본의 3인 가족을 투영한다.

변치 않은 주제는 이것이다. 인간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품고 있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오해’가 쌓인다. 인간이 되길 갈망할수록 점점 내몰린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괴물만도 못한 인간’들을 만나고 인간 군상의 비뚤어진 욕망을 직접 조우한다.

어린이들 대상 만화영화였던 오리지널 <요괴인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이들이 감정 이입할 대상은 당연 베로다. 2019년판 리메이크판을 보면 베로도 10대 중반 청소년으로 업그레이드돼 있다. 커다란 헤드폰을 항상 끼고 다니며 세상과 의도적으로 단절한다(이번 극장판에서는 이 헤드폰을 목에만 끼고 있다).

2019년판 리메이크 TV시리즈에서 불사(不死)의 존재인 벰은 그동안 일어난 살인사건의 혐의를 모두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어차피 죽지는 않을 테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이자 이들의 활동 무대인 ‘리브라시티’의 숨은 지배자 베가와 다리 위에서 일대 격전을 벌인다.

업그레이드된 시리즈 주인공 벰, 베라, 베로

이 리메이크판에는 이들의 존재를 추적하고 결국 함께하게 되는 인간인 여성 형사 소니아가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니아가 중심인물인 것도 오리지널과의 차이점인데, 영화판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극장판 초반부 약 1분 사이에 소니아가 작성한 보고서의 형태로 캐릭터 설정을 보여준다. 막연하게 오리지널 <요괴인간>만 기억하고 극장에 들어간 관객이라면 살짝 당황할 법도 하다. TV시리즈에서 살아남은 악당 ‘닥터 리사이클’이 제약회사에 들어가 요괴인간 연구를 지속한다. 영화판에서는 이들 요괴인간들을 만든 ‘창조주’도 등장해 결국 벰과 대결을 펼친다. 리메이크판 TV시리즈의 연장 선상에서 만든 영화라 아무래도 <요괴인간> 마니아층을 겨냥한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요괴인간> 방영 50주년 프로젝트

(C)ADK/DLE

(C)ADK/DLE


영화 시작 장면에 등장한 로고. 요괴인간 50주년. 50주년이 언제였는지 찾아보니 2018년이었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많은 사람이 ‘빨리 인간이 되고 싶다(早く人間になりたい!)’는 오프닝 곡의 후렴구를 기억할 것이다. 이번에 개봉하는 극장판도 주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극장판을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래도 50주년이다 보니 뭔가 이정표를 세우지 않겠는가 싶은데 엔딩을 보면 확실히 그런 것도 같다. ‘창조주 백작’은 대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벰에게 이야기해줬고, 벰은 우연한 기회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방법을 실현했다(앞으로 영화를 볼 사람도 있으니 자세한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다). 벰은 소원을 이뤄 인간이 됐을까. 목격한 베라와 베로는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얼버무린다. 막판의 ‘대첩’ 후 베라는 다시 인간놀이로 돌아간다. 베로는 홀로 남아 인간을 위해 싸우는 일을 계속해나간다. 엔딩 스크롤 후 쿠키영상으로 폐허 속에서 닥터 리사이클과 소니아에게 데이트를 청했던 경비원이 살아나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마도 언젠가 다시 제작할 시즌2를 염두에 둔 설정이리라.

요괴인간 50주년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50주년을 맞은 프로젝트가 이 극장판 제작만은 아니었다. 베로가 룸살롱 ‘삐끼’로 활약하고, 베라가 성애물을 찍는 등 성인코미디물로 바꾼 <우리들은 요괴인간(俺たちゃ妖怪人間)>(2017·사진)이라는 작품도 있다. 하긴 1968년(일본) 또는 1970년대(한국)에서 오리지널 TV시리즈를 봤을 꼬꼬마들이 지금은 50·60대 장년이 됐으니….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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