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베트남의 ‘국민 소스 기업’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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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외 투자 대상국 1위는 미국이며 2위는 아세안이다.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한국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지역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수가 많고, 투자도 증가하면서 현지기업에 직접 투자한 사례도 있다. 한국 SK가 지분을 투자한 마산그룹이 대표적이다. 2018년 SK가 5300억을 투자해 9.5%의 지분을 취득했다. 이후 2021년에 추가로 4000억을 자회사 크라운엑스에 투입했다. 마산그룹이 어떤 회사이길래 이런 주목을 받았을까.

베트남 최대 식음료 기업 마산그룹의 제품 / 마산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베트남 최대 식음료 기업 마산그룹의 제품 / 마산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마산그룹은 베트남 최대 식음료 기업이다. ‘포브스’가 뽑은 베트남 50대 상장기업에 9년 연속 오를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온 대표 민간기업이다. 마산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상품은 소스류와 라면이다. 베트남의 대표 음식으로는 우리에게 쌀국수와 스프링롤이 유명한데, 이러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소스가 함께 등장한다. 피시 소스의 일종인 느억맘(한국의 액젓과 유사한 소스)과 베트남 스타일 간장과 매운맛 소스 등 다양한 양념장이 거의 모든 베트남 요리에 사용된다. 이 소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회사가 바로 마산이다. 1인당 라면 소비량에서 한국에 이어 2위인 베트남의 거대한 라면시장에서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칸타르에 따르면 베트남의 가구 100곳을 방문하면 그 가운데 95개 가정집에서 최소 1개 이상 마산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평범한 무역회사로 시작

마산그룹의 시작은 평범한 무역회사였다. 베트남의 빈그룹이나 비엣젯, FPT 등 유명 기업의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산그룹 창업자 응우옌 당 쿠앙(Nguyen Dang Quang) 역시 1980년대 벨라루스에서 유학한 인재였다.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응우옌은 베트남에 돌아와 과학원에서 연구자로 일했으나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가 베트남 음식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를 차리게 된다. 식품 수출입을 하던 응우옌은 러시아에서 직접 라면 제조업을 차렸고, 이후 소스로 영역을 확장했다. 처음에는 러시아와 동유럽에 있는 베트남 교민과 유학생들이 고객층이었으나 점차 현지인들로 확대했다. 러시아에서 성공을 거둔 응우옌은 베트남으로 돌아온다. 라면과 소스 제조 노하우와 경험을 기반으로 베트남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2009년 마산그룹의 피시 소스 시장점유율은 55%에서 2010년 65%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 간장은 69~70%를 차지하면서 업계 1위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일상생활에서 매일 사용하는 소스와 자주 먹는 라면을 판매하는 마산그룹은 높은 시장점유율과 매출성장률을 바탕으로 2009년 호찌민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자본시장에서는 베트남 식음료 산업의 성장 기대감과 마산그룹의 경쟁력에 긍정적 시각을 보냈다. 상장 첫날에만 마산그룹 주가가 20% 상승했다. 주식시장 상장으로 자금의 여유가 생긴 마산그룹은 이때부터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2010년 텅스텐 광산을 보유한 누이 파오 코퍼레이션의 지분 70%를 사들이면서 자원산업에 발을 디뎠다. 2011년 인스턴트커피 1등 사업자인 ‘비나 카페 비엔 호아(Vina Cafe Bien Hoa)’의 지분 50.3%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음료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빈 하오 미네랄 워터와 푸 엔 맥주음료(Phu Yen Beer and Beverage·현재 마산 브루어리)를 잇달아 사들이면서 주류시장에까지 손을 뻗었다. 태국의 맥주 시장 1위 업체인 싱하(Singha)가 마산그룹에 11억달러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해 마산 컨슈머 홀딩스 주식과 마산브루어리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마산의 소스는 싱하의 도움을 받아 태국에 진출하고, 싱하는 맥주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마산에 브랜드파워를 가져다주면서 양사 모두에 윈윈 전략이 됐다.

마산그룹이 인수한 빈마트 내에 있는 푹 롱 카페 / Infornet

마산그룹이 인수한 빈마트 내에 있는 푹 롱 카페 / Infornet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

2010년대 중반 마산그룹 식음료 사업의 수직계열화 전략에 중요한 인수합병이 일어났다. 사료업체 프롱콩코(Pronconco)와 앙코(Anco)를 인수했고, 육류가공업체 비산(Visan)의 지분을 늘려 사료부터 육류생산, 그리고 각종 농식물 원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라면 등 최종 가공식품 생산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비산은 주로 돼지고기를 취급하다 보니 닭고기를 제품군에 포함시키기 위해 ‘3F비엣푸드(3F Viet Food)’를 2020년 추가로 인수한다. 육가공 시장 진출은 또 다른 사업기회의 신호탄이었다. 베트남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육류시장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통업 진출 역시 인수합병을 통해 이뤄졌다. 빈그룹의 소매 및 농업부문 사업을 마산소비재와 합병시키면서, 빈커머스가 거느리고 있던 슈퍼마켓 체인 빈마트와 편의점 빈마트플러스, 농업 빈에코가 마산의 품으로 들어왔다. 유통까지 갖춘 마산그룹은 세제 등 생활용품에도 손을 뻗었고, 2021년 베트남의 스타벅스라 불리던 푹 롱(Phuc Long) 커피체인 브랜드를 인수했다. 전국에 있는 빈마트에 푹 롱 매장이나 키오스크를 열고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확대해 매출을 늘리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다양한 사업 부문을 갖게 된 마산은 그룹 전체의 구조를 개선하고 사업 부문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컨슈머 홀딩스와 윈커머스를 통합하고 2020년 크라운엑스를 출범시켰다. 크라운엑스는 소매 유통의 지주회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향후 새로이 추가될 디지털 컨슈머 서비스 등을 연계시키는 플랫폼의 기능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디(Reddi)라는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비캐스트를 인수했다. 마산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금융 부문은 테콤뱅크가 맡고 있다. 테콤뱅크의 호훙안(Ho Hung Anh) 회장은 마산의 창업자와 유학 시절부터 친분을 나눠온 사이로 1990년대부터 양사에 서로 투자하면서 특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마산그룹 지주회사에 테콤뱅크 회장의 지분이 있고, 이 지주회사가 테콤뱅크의 지분을 14.9% 보유하는 식이다.

지난해 마산그룹은 88조6290억동(약 39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최근 5년 동안 평균 15.4%의 매출증가율을 자랑한다. 주가는 2020년 팬데믹 초반 하락세를 면치 못했으나 다시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가총액은 약 60억달러를 넘나든다. 러시아의 무역회사에서 출발해 베트남 식음료 기업으로, 그리고 이제 유통과 농업에 이르기까지 인수합병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한 마산그룹의 성장전략은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효한 성과를 보인 마산그룹의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기업을 품고, 어떤 미래를 보여줄지 마산그룹의 행보를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고영경 선웨이 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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