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찬란한 빛이 되리라.”
K팝과 드라마 열풍으로 한국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듯한 요즘, 이 시는 마치 지금의 세계적인 한류를 예고하기라도 한 듯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이 시는 인도의 시성 타고르(본명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입니다. 이 시가 주는 울림이 워낙 큰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타고르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시성으로만 기억합니다.
타고르는 위대한 문학가이면서도 미술을 비롯한 예술에 폭넓은 조예를 갖고 있었으며, 교육자이자 시대를 앞선 철학가이자 사상가였습니다. 특히 그의 여성에 대한 선구적인 시각은 100년 전의 시각이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보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타고르는 인도 벵골주 콜카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문학과 사상은 인도-파키스탄의 분할 전 당시에는 지금의 벵골 지역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두 나라는 지금도 타고르의 탄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기념합니다. 지난 5월 7일 타고르 탄생 161주년을 맞아 한국에서도 타고르 탄생기념일 행사가 열렸습니다. 인도 대사관과 방글라데시 대사관이 함께 기념행사를 개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도에서 타고르는 훨씬 더 큰 존재감으로 다가옵니다. 인도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의 국가를 작사·작곡했고, 스리랑카 국가를 작곡한 아난다 사마라쿤의 스승으로 그가 국가를 작곡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탄잘리>라는 시집으로 비유럽인으로서 최초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국민한테 큰 자부심을 안겼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깊은 친분을 나눴고 유럽과 북미, 동아시아의 많은 인물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앙드레 지드, 안나 아흐마토바 등이 그 예입니다. 또한 그중에는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있습니다. 타고르는 그에게 ‘아마르티야(‘불멸의’라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유년시절에 타고르가 설립한 ‘샨티니케탄’(샨티니케탄은 지명으로, 이 지역의 대지를 타고르의 집안에서 소유하고 있었다)에서 공부한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진보적 시각 타고르의 작품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알려졌음에도 사실 우리는 ‘동방의 등불’ 외에는 타고르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최근 조금이나마 그의 작품을 체감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인도인이 OTT 플랫폼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듯이, 우리도 타고르의 작품을 OTT 플랫폼을 통해 접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2015년 아누라그 바수라는 인도 감독이 타고르의 단편소설을 ‘벵골 지역의 유려한 미를 담아’ 제작한 TV시리즈 작품을 N사를 통해 <타고르 단편극장>이라는 제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티아지트 라이 단편 걸작선> 역시 타고르의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기에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영상입니다.
타고르 단편극장에서 타고르가 그려내는 여주인공들은 당시의 관습과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억압 등에 맞서면서 이야기마다 다양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그립니다. 예를 들면, 인도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남편을 여읜 여자를 향한 시선과 억압에 맞서는 주인공(눈엣가시), 조신한 여자이기를 바라는 시어머니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주는 남편에 못 이겨 억지로 한 결혼이라고 생각하며 갈등하던 여주인공이 점점 자신의 진심을 깨달아가는 이야기(깨달음), 의붓아버지 덕에 좋은 집안과 결혼했으나 태어난 계급이 들통날까봐 걱정하는 주인공이 사실을 밝히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무효), 여자·아내·며느리로서의 삶과 특히 아끼던 의붓딸이 원치 않는 결혼으로 비참한 끝을 맺자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여성(므리날의 편지)의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몇몇 단편은 타고르 자신의 유년시절과 형, 형수 사이의 관계를 투영하기도 했습니다. 26편으로 구성된 이 ‘타고르 단편극장’을 보면, 100년 전의 벵골주를 중심으로 한 인도사회에서 존재하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억압과 모순이 일부는 여전히 존재함을 알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여성들이 선택하는 삶을 통해 타고르가 여성에 대해 얼마나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교육자로서의 타고르 세계적인 경제학자 아마르티야 센이 유년시절 공부한 샨티니케탄은 타고르의 아버지 데벤드라나트 타고르가 설립한 학교이자 교육도시입니다. 인문, 과학 교육과정 외에 음악, 무용 및 예술, 그리고 언어 과정을 비슈바 바라티 공립대학교에서 제공합니다. 틀에 박힌 교육을 싫어했다고 알려진 타고르는 ‘발도로프 교육’, ‘대안교육’처럼 기존 교육이 가진 한계에 속박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각자의 다양한 재능을 발견해갈 수 있는 다방면의 교육을 지향했습니다. 이를 위해 샨티니케탄에 학교를 설립해 열린 교육을 하며 지역 전체를 하나의 교육도시로 발전시켰습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그의 교육철학과 사상에 주목해 다양성과 개별적 특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의 대안으로 샨티니케탄의 교육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타고르 탄생 161주년을 맞아, 이제 우리도 ‘동방의 등불’의 시성 타고르만이 아니라 100년 전부터 이미 개인의 역량을 다양하게 계발하는 데 주목했고,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선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선각자’ 타고르를 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한유진 스타라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