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목장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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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했다. 쌓여 있는 과제, 그것도 난제들이 많다. 그래서 향후 5년의 국정기조와 철학, 새 대통령의 목표 설정을 발표하는 취임사에 주목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취임식 후 언론에 많이 회자됐다. 자유라는 낱말이 35번으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 실황중계로 보면서도, 무슨 이야기지? 어떤 자유? 왜 자유? 어떻게 자유? 필자 머릿속에는 21세기 들어 거의 회상해본 바 없는 지난 20세기 사상가들의 저서가 스쳐지나갔다. 새 대통령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해 그랬을까? 마르쿠제의 <자유에 대하여>, <이성과 혁명>도 떠올랐고, 청년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갤브레이스의 <어느 자유주의자의 초상>도 20여년 만에 기억에 소환됐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1980년대 필독서 같았던 책이니 자연히 연결됐다. 20세기 계몽주의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가들이 떠오른 것은 우리 세대가 당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임사에 나온) 용어와 표현이 ‘레트로’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일대 모습 / 권도현 기자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일대 모습 / 권도현 기자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그것은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 그리고 세계시민. 사실 새 대통령의 취임사에 놀랐다. 그런데 국회 마당을 꽉 채운 4만여 참석자의 호응은 이질감이 있었다. 똑같은 연설을 넬슨 만델라가 했다면 분위기와 수용성이 또 달랐을 것 같다. 경력의 대부분을 검사로, 검찰총장으로 공직을 마치고 대통령이 된 분이 외치는 자유의 역설을 들으니 아, 피의자의 인신 구속을 결정하고, 유죄를 이끌어 징역을 살려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얼마나 고뇌가 많았을까 싶어 짠한 마음도 들었다.

취임사에는 반지성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도 제시돼 있다. 반지성주의의 반대, 좋은 것은 당연히 지성주의일 텐데 대통령은 그것을 ‘과학과 진실’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라고 멋지게 규정한다. 우리는 무속과 주술, 신화와 형이상학의 시대를 뒤로하고, 과학의 시대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지난 대선, 그리고 인수위의 시간을 거치며 과학과 기술을 가장 강조한 인물은 안철수일 것이다. 과학기술부총리제 주창을 비롯해 새 정부 청사진에 이를 담고, 또 내각에 과학기술 전문가를 포진시키려 노력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런 안철수 전 위원장의 비전이 드디어 신임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긴 것인가. 그것은 두고 보기로 하고, 두 달의 임무를 마친 안철수 전 위원장은 인수위 해단과 동시에 오는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 보궐지역, 그것도 경기 성남 분당갑의 후보가 됐다. 오랫동안 서울 강북지역의 노원병을 지역구로 삼았던 분이어서 명분이 필요했을 터인데 너무 좋은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창업해 성공시킨 벤처기업, 안랩 본사가 마침 이 지역에 있었으니까.

대항마가 만만치 않다. 게임업체 ‘웹젠’의 이사회 의장 출신으로 이 지역에서 이미 의원을 지낸 바 있는 김병관 전 의원이다. 그리하여 분당 목장의 결투는 벤처기업인 출신 정치인 간의 대첩이 됐다. 3D MMORPG, 온라인 역할게임과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의 대결은 어떻게 결론날 것인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대결을 보듯 IT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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