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가능하다, 민주주의를 위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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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검출과정을 그린 <중력의 키스>라는 책에서 사회학자 해리 콜린스는 뜬금없이 ‘민주주의 세계에서 과학의 역할’을 말한다. “이 모든 잔소리는 쓸데없지 않다. 과학은 민주주의를 위해 잠재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과학의 발견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한때 과학의 특권을 부정하던 노년의 사회학자는 계속해서 외친다. “사회 안에서 과학의 근본적 역할은 개인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 집단적인 가치의 등대로서 구실을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탐욕으로부터 구해내려면 과학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필요성은 중력파 천문학의 필요성보다 더 크다.”

관찰과 실험에 대한 존중, 정직성, 진실성, 무사무욕, 보편주의, 조직된 회의주의, 반증과 개방성, 재현 가능성, 전문가에 대한 존중 등의 규범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추락하지 않은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로 구현돼야 한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관찰과 실험에 대한 존중, 정직성, 진실성, 무사무욕, 보편주의, 조직된 회의주의, 반증과 개방성, 재현 가능성, 전문가에 대한 존중 등의 규범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추락하지 않은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로 구현돼야 한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과학이 그 발견들보다 자연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태도로 인해 인류에게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지적은 머튼의 과학적 규범에 관한 연구로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머튼은 과학자사회가 공유하는 도덕적 규범들이 존재함을 밝히고, 이를 공유주의, 보편주의, 무사무욕주의, 조직화된 회의주의로 정리했다. 사회학자인 그가 겨눈 목표는 실상 따로 있었다. 머튼이 활동하던 1930년대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정치체제는 파시즘이었고, 머튼은 과학자사회에서 발견한 이 규범들이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 사회를 지켜줄 도덕적 수호자로 기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학의 도덕적 가치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철학자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과 열린 사회에 대한 강조 역시, 과학의 가치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적 가치가 돼야 한다는 열망의 표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과학의 가치를 깎아내린 건 물리학자로 훈련받은 과학철학자 쿤이었다. 1962년 그가 쓴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자사회가 자연을 발견하는 과정을 개방적이라기보다는 독단적으로 묘사했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 속에서, 과학자들의 이론 선택은 종교적 개종에 비유됐다. 쿤의 계승자를 자처한 과학사회학자들은 과학지식도 사회적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들어 과학이 다른 지식체계들보다 우월한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라투어 같은 학자는 “과학은 형태를 바꾼 정치”라는 말로, 과학과 정치의 경계를 섞어놓았다.

1990년대가 되면, 이런 상대주의적 과학관의 유행에 위협을 느낀 일부 과학자와 과학철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공격한다.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로 촉발된 이 시기의 격렬한 논쟁은 ‘과학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위에서 언급된 해리 콜린스는 바로 이 시기에 과학자의 반대편에서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옹호했던 인물이다. 그랬던 콜린스가 2000년대 후반부터 ‘과학사회학의 제3물결’ 혹은 ‘선택적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개종한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첫째, 콜린스는 과학연구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중력파 과학자들의 연구과정을 수십년 동안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중력파 연구자들의 공개적인 보고서뿐 아니라 그들의 e메일도 분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는 이 과정에서 과학자사회가 자연을 발견하기 위해 규범으로 채택한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을 재발견한다. 둘째, 그가 과학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던 시기에, 그의 조국인 영국에선 브렉시트를 계기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었다. 콜린스는 브렉시트를 통해 과학적 가치가 배제된 민주주의의 위험을 깨닫게 됐다고 술회한다.

포퓰리즘 시대와 정상정치를 위한 과학

포퓰리즘의 시대다. 이번 대선을 통해 좌우와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세력이 민주주의적 제도보다 포퓰리즘적인 선동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는 포퓰리즘의 광기로 추락해버린 베네수엘라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생태계를 포획하는 일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콜린스는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차이를 소수의견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선호에서 찾는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견이 존중되고, 다양성은 사회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지만, 포퓰리즘 사회에선 여론이 51%만 넘어서도 그 의견이 민중의 의지로 포장돼 소수의견을 배제하는 절대적 명분으로 둔갑한다. 이런 포퓰리즘 사회에서 다양성은 실패 혹은 위험의 표시로 간주되기도 한다. 정치인과 언론 모두가 여론조사 결과를 맹신하는 한국에서, 포퓰리즘 정치는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은 각종 여론조사의 광고판으로 전락하며, 수준 높은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토론과 그 합의를 기다리는 일은 즉각적인 여론조사에 비해 쓸모없는 과정으로 배제돼버린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체제는 파시즘 같은 일방적인 포퓰리즘의 폭정을 막기 위해 몇가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고 불리는 이런 제도들은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자유 등을 포함한다. 이런 제도조차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목도해왔다. 한국은 대통령의 독재를 막는 제도적인 장치를 더해왔지만, 제왕적 대통령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가 과학적 근거를 존중하지 않고, 오직 여론조사 결과만을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는 정부에서 부동산은 망가졌다. 특권은 대물림됐으며, 민주주의는 타락했다.

콜린스는 과학자사회가 구축해온 여러 가치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와 중첩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관찰과 실험에 대한 존중, 정직성, 진실성, 무사무욕, 보편주의, 조직된 회의주의, 반증과 개방성, 재현 가능성, 전문가에 대한 존중 등의 규범은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추락하지 않은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로 구현돼야 한다. 이런 과학의 모더니즘적 가치를 사회와 문화의 핵심가치로 선택하는 철학적 입장을 콜린스는 ‘선택적 모더니즘’이라고 불렀고, 이런 과학적 가치들이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실천규범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나는 ‘과학적 삶의 양식’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정치를 물들인 조류는 포퓰리즘이다. ‘검수완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현 상황은 한국의 정치생태계에 과학적 가치를 담보하는 제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징후다. 행정부 관료와 국회의원들이 중력파 검출과정의 과학자들처럼 일하는 세상은 가능하다. 우리가 과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때, 한국의 정치 또한 불가역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과학, 가능하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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