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상상-우연이란 현실성에 상상의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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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에는 매번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 인물들은 서로의 이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인격이 되고, 사건을 가늠하는 중요한 방향키가 된다.

제목 우연과 상상(偶然と想像)

제작연도 2021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21분

장르 드라마, 모음집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모리 카츠키, 우라베 후사코, 카와이 아오바

개봉 2022년 5월 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그린나래미디어㈜

그린나래미디어㈜

2000년대 초반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손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성은 지금도 건재하지만, 뒤를 이어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요즘 그를 향한 비평계와 관객들의 애정은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읽힌다.

그의 작품이 거론될 때마다 따라다니는 족쇄는 무지막지한 상영시간이다. 2012년 작 <친밀함>은 4시간 15분 동안 한편의 연극이 준비되고 상연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담아낸다. 2015년 작 <해피 아워>는 친구인 중년여성 4명의 번민과 방황을 5시간 17분에 걸쳐 펼쳐보인다. 최근작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각본상,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2시간 59분으로 작품이 지닌 완성도와 별개로 긴 상영시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질 않는다.

이처럼 긴 상영시간에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이야기의 힘은 놀랍다. 영화는 매우 차분하고 신중하게 전개되지만 필요한 사건과 담론으로 지루할 틈 없이 알차게 채워진다. 그의 작품을 볼 때면 매번 마치 스크린을 통해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장편 같은 3편의 중편 옴니버스

다행히도 이번에 개봉하는 <우연과 상상>은 121분. 긴 호흡을 선호하는 감독의 작품목록 속에서 옴니버스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채롭다. 3개가 별개 이야기니 한편당 40분 내외의 중편 모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 각각의 이야기는 충분한 여유와 감흥을 동반해 개별적으로도 풍족한 여운을 안긴다.

제1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동요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모델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는 절친한 친구 츠구미(현리 분)의 데이트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하며 행복해하던 츠구미와 헤어진 그는 충동적으로 몇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의 사무실로 쳐들어간다.

제2화 ‘문은 열어 둔 채로’는 소심한 복수극에서 파생된 뜻밖의 파국과 이를 통해 재조합되는 관계를 다룬다. 나오(모리 카츠키 분)는 잠자리 상대인 동급생 사사키(카이 쇼마 분)의 부탁에 못 이겨 교수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 분)를 유혹하려 하지만 녹록지 않다.

제3화 ‘다시 한 번’은 아쉬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서로를 다독이는 두 중년여성이 등장한다.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왔다 돌아가던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는 역 앞에서 그리워하던 친구 아야(카와이 아오바 분)와 마주친다. 기쁨도 잠시 대화가 이어질수록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아픔이 되살아나면서 뜻밖의 상황이 속출한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입문작

<우연과 상상>은 제목 그대로 우리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우연’적 사건과 이를 통해 확장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작품이다. 감독은 “세상에는 우연이 넘치며 일상에선 흔한 현상이다. 우연은 세상의 현실성이고, 역으로 이 세계를 그린다는 건 우연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이야기 측면에서 어려웠지만 그래서 더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우연’에 방어적이다. 창작의 느슨함이나 허점을 메우는, 가장 손쉽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보일 수 있어서다. 감독의 말처럼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이 넘쳐난다.

그의 작품에는 매번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 인물들은 서로의 이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인격이 되고, 사건을 가늠하는 중요한 방향키가 된다.

또 매번 노골적인 연기(演技)장면이 등장한다. 인물들은 매번 타자의 입장에 놓이는, 일종의 ‘역할놀이’를 하게 된다. 평범한 연극무대나 소설 낭독회 같지만, 매우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선보이는 작품일 수도 있다.

이번 영화 역시 그의 작품을 관통해온 특징이 고스란히 발견된다. 여기에 통찰과 재미를 재치 있게 안배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작품세계의 입문작으로 추천한다.

일본영화 속, 눈에 띄는 한국 배우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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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는 친한파 감독으로 보이고, 유독 그에 대한 한국관객들의 애정도 두텁다. 두 번째 장편이자 도쿄예술대학의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초기작 <심도>(2011)를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협업해 완성한 과정도 이런 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주 한글이나 한국인 배우들이 나온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각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서 역시 다수의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결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국풍경은 관객들 사이에 다양한 추측을 난무케 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 한국인 배우 현리가 출연한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도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늘 한국에서 무언가 도전하고 싶던 차에 2007년쯤 연세대학교 국제학부에 교환학생으로 진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꿈을 갖게 됐단다.

활동은 주로 일본에서 했다. 오디션 합격으로 데뷔한 이후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2014년 공개된 <물의 목소리>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무속인이 된 재일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진출을 비롯해 홍콩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 출품되며 호평을 받았다. 2020년 개봉한 한국영화 <카오산 탱고>에선 주인공 하영 역으로 출연해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애플TV를 통해 방영돼 전 세계적인 화제를 낳은 바 있는 대하드라마 <파친코>에서 키요 역으로 출연했다.

본명은 이현리로 연기자로서는 성을 뗀 현리(玄理·Hyunri)라는 이름을 쓴다. 일본 연예계에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진짜 이름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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