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봉과 청진기
2022년 1월부터 만 18세 이상의 말기 환자 등이 의료진의 도움으로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면서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에서 조력 자살을 합법화한 5번째 국가가 되었다. 2016년 일명 ‘웰다잉법’ 혹은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헌법의 기본 권리로 인정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게 되었다. 1970년 62.3세였던 한국의 기대수명은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 83.5세가 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과 안락사의 필요성

대한민국헌법 제10조 / pixabay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행복추구권의 대표적인 게 자기결정권으로, 개인이 자신 삶의 중대한 사항에 대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이다.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의 본질적 내용은 개인이 자신의 신변이나 생활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선택ㆍ결정하는 데 있다”고 판시하였다.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자기결정권이라면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행위 역시 자기결정권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16년에 소극적 안락사의 형태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어 2017년 시행되었다.

응급실로 실려가는 환자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촌각을 다투는 의료진과 환자를 포용하기에 부실한 게 사실이다.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홍지형 교수는 “일단은 진료현장에서 연명결정중단을 논의할 만한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5분의 진료시간에 연명의료중단 결정의 의미를 공유하고, 그것을 결정하는 대화를 하기는 너무 어렵다. 자칫 환자를 방임하는 의사처럼 비칠까 봐 치료를 더 권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또는 연명의료중단서)를 이미 작성하였어도 문제는 발생한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둔 걸 의료기관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해버리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은 환자에게 미처 인지하지 못한 119구조대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에 후송하거나,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때가 간혹 있다.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전국적인 연락이나 확인 체계가 미비하여 사전연명의료결정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 연명의료결정법은 안락사 대상자의 임종기 시간 범위를 지나치게 엄격히 제한하면서도 대상자의 동의 방식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규정해 환자의 편안한 죽음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첫째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논의하는 대상과 기간에 관한 개념은 의사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모호하다. 제2조(정의)에서는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의 대상인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자”라고 명시하며, ‘말기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기준에 따라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라 표현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임종환자라고 판단할 것인지, 환자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고 있거나 급속도로 악화하지 않는 장기환자를 임종환자로 판단할 것인지 불명확하다. 의료 실무에서 더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걸 당연시하여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시행하였으나 이 법률에 따라 오히려 연명의료 중단 대상의 환자 범위가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연명의료중단결정에서 미성년과 무연고자의 대리 결정이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으나 확인할 수 없을 때 연명의료결정법 제18조는 타인의 대리 결정을 명시한다. 미성년자인 환자는 “법정대리인(친권자에 한정한다)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의사표시를 하고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확인한 경우”나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의사표시를 하고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확인한 경우”에 해당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생명은 타인이 처분할 수 없는 법익으로 일신전속적 권리인 생명권을 자신의 의사가 아닌 타인이 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데서 논란이 생긴다. 자기결정권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가족의 역할은 환자 본인의 평소 언행을 진술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 특히 나이를 기준으로 획일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오로지 자기 결정권에 따른 결정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2018년 이후 2022년 1월까지 누적 8만 2,064명의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를 등록했고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이행이 통보된 수는 19만 7,237명이었다. 향후 임종과정의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2022년 1월까지 총 118만 6,697명이 등록했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의료 서비스를 ‘거부’하는 현재의 연명의료중단을 넘어서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결정하고 죽음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진전하고 있다. 죽음이 더는 사적 영역과 운명에 종속되지 않고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됨에 따라 우리 사회는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거쳐 합의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존엄사, 안락사, 조력자살… 차이는?

조력자살 허용 찬성의 이미지
존엄사, 안락사, 조력자살은 많이 혼용하지만,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존엄사는 일반적으로 회복의 가망이 없는 말기상태의 환자에 대해서 연명(延命)치료를 중지하여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다. 존엄사에서 말하는 ‘존엄’이라는 개념은 환자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며 연명치료를 중지함으로써 인간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주체성이 중심이 된다.
안락사는 크게 ‘진정안락사’와 ‘부진정안락사’로 나뉜다. 생명의 단축을 가져오지 않는 안락사, 즉 진정안락사는 살해 행위의 개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형법상 처음부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생명의 단축을 가져와 살인죄의 성립 여부가 문제 되는 부진정안락사가 쟁점이 된다. 형법학자들은 생명의 단축을 가져오는 부진정안락사를 다시금 ①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② 직접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로 구별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e)란 죽음이 임박하고 현대의학의 견지에서 불치의 환자, 특히 식물인간의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해 의사가 생명유지에 필요한 의료적인 처치를 취하지 않거나 이미 부착된 인공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경우를 말한다. 고통 완화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 시술 방식이 ‘적극적인 처치’에 의하여 행해지는 안락사를 적극적 안락사(aktive Euthanasie)라고 한다. 또한 적극적 안락사는 ①고통 제거를 위하여 행해지는 안락사가 환자의 생명 단축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해서 시술되는 직접적 안락사와 ②환자의 생명단축을 직접적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다만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 처치가 불가피하게-부작용으로-환자의 생명단축을 초래하는 간접적 안락사로 나누어진다.
존엄사는 말기 환자한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생명을 연장하거나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지 못하는 등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치료, 영양공급,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존엄사에 의한 죽음은 치료의 중단으로 생명이 단축되는 게 아니라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결과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다는 점, 살 권리 내지 살 의무를 전제로 자연적인 죽음을 구한다는 존엄사와 달리 ‘소극적 안락사’는 죽을 권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 환자가 불가역적 의식 상실 상태에 있을 때에는 환자의 의사표시 및 그 범위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양자를 구분한다.
의료관계인의 조력에 의한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PAS) 혹은 ‘의사조력사’(physician-assisted death, PAD)는 안락사와는 외형적으로 다른 형태이지만 적극적 안락사 문제와 동반하여 많이 논의되고 있다. 주로 의사가 처방하고 지급하는 약물 혹은 주사제의 도움을 받아 실제 죽음의 실행은 안락사를 원하는 본인이 직접 시행하는 방식이다. 즉 외형적으로 의사조력자살은 안락사하는 본인에 의한 자살의 형태를 취하고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에 의한 타살의 형태를 취하지만 적극적인 방식으로 안락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적극적 안락사, 당하는 것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
적극적 안락사 금지론의 주된 법적 논거는 ①생명보호 원칙 위반 ②남용의 위험성이다. 절대적 생명보호 원칙에 위반한다는 주장은, 실정법상 사형제도가 아직 남아 있고, 전시에 적군을 사살하는 정당행위, 정당방위 등에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긴급피난 과정에서 일어난 생명 침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으므로 이론적 근거가 미약해 보인다.
금지론의 주된 이유인 남용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자격을 갖춘 변호사, 의사, 심리 및 가족윤리 전문가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가칭 ‘심사원’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본인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일정 기간 거듭되고 확고한 의사표시를 하였는지를 제일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 신중하고 엄숙하게 적합성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가족에 의한 남용 위험성은 물론이고 본인에 의한 잘못된 판단의 위험성까지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그 생명권 주체의 촉탁을 승낙하여 안락사 시술을 한 제삼자(의사 등)를 크게 보아 적극적 자살권 행사의 부수적 내용으로 판단해 처벌하지 아니할 것인가이다. 안락사의 허용 요건에 해당한다면, 일반적 상황이 아닌 예외적 특수 상황으로서 형법상의 위법성 조각 사유 원리(주관적 정당화 요소와 객관적 정당화 사정)를 충족시키는 구조와 요건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므로 위법성이 부정된다. 형사 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안락사 요청자 본인 이외에 사회 또는 타인에 해악을 줄 가능성, 즉 처벌 이익이 있어야 한다. 안락사에서 이러한 처벌 이익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개인 소유의 재산에 사회적으로 일정한 제한을 가하듯이, 자기의 신체ㆍ생명에 대해서도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일정한 해악(법익 침해의 가능성)을 끼칠 수 있다면 자기의 신체ㆍ생명의 처분권이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적극적 안락사 및 조력자살은 그것이 남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허용 요건과 절차 등을 정하여 허용하는 게 타당하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통계적 근거는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40세 이상∼79세 이하 남녀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태도 등을 조사한 결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응답자의 75.7%가 목숨만 유지하는 연명치료를 반대했다. 연명치료를 포함해 죽음과 관련하여 필요한 결정의 주체로는 ‘본인’ 74.5%, 가족 18.1%, 전문가 7.4%의 순으로 답했다.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게 좋은 죽음이 아니다”에 63.3%가 동의했다. 또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에 90.2%가 동의했다.

안락사 허용 이미지
■선진국 중심의 뜨거운 감자 ‘안락사’
전 세계적으로 적극적 안락사 및 조력자살 허용 논의는 뜨거운 감자이다. 의사조력 자살을 법제화하는 나라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미국에서는 오리건주(1994년 입법, 1997년 시행)를 필두로, 워싱턴주, 콜로라도주, 캘리포니아주, 몬태나주, 버몬트주, 뉴저지주, 메인주, 하와이주 등이 의사조력 자살을 입법하였다. 유럽에서는 네델란드, 벨기에, 스위스가 일찌감치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도 법제화한 데 이어 스페인이 2021년에 불치병 환자의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정해 조력사망이 가능한 유럽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절대 숫자로는 적어 보이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허용 국가가 증가하는 상황을 미루어 볼 때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곧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은 미국법이 적용되는 관할구역 가운데 2021년 9월 기준 12개 주에서 안락사가 합법이고, 14개 주에서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다른 주와 다른 국가의 모범이 된 오리건주 존엄사법에 따르면 의사조력 자살에 참여한 의사의 행위가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약물 처방을 요청한 환자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의사능력이 있고, 오리건주 주민이며, 담당 의사와 자문 의사로부터 말기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죽기를 원한다고 자발적으로 의사를 표현한 만 18세 이상의 성인이 서면으로 약물을 요청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기질환이란 합리적인 의학적 판단으로,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의학적으로 확인된, 치유될 수 없고 회복 불가능한 질병을 의미한다.
환자를 사망케 할 의도를 가지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기 위하여 환자의 허가 없이 약물요청서를 고의로 변조 또는 위조하거나 요청 철회서를 은닉하거나 파기한 자, 환자를 사망케 할 목적으로 투약요청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는 A급 중범죄자로 처벌된다는 형사책임 조항을 두어 이 절차의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요청에 의한 생명단절과 조력자살의 심리절차 및 형법과 장례법 개정법률’이라는 제목의 안락사법을 시행하였다. 이 법은 의사가 적극적 안락사 또는 조력자살을 수행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러나 의사가 아니거나, 의사라 하더라도 이 법에 규정된 요건을 준수치 않으면 범죄로 처벌된다. 안락사의 요건으로, 환자가 개선될 전망이 없고, 고통이 극심하고,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안락사에) 동의하고, 의사는 환자에게 그의 상황과 전망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최소 1인 이상의 다른 의사와 협의하고, 그 다른 의사(들)는 환자를 직접 문진하여 이 요건에 관한 서면의견서를 작성하는 등을 충족하도록 했다.
벨기에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법’을 2002년 9월에, 2009년 3월에‘안락사 및 조력자살 법’을 도입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0년 2월 생명을 종결하려고 하는 사람을 업무상 조력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조력자살을 업무상 제공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독일 형법 제217조는 2015년에 제정된 것으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 같은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에 찾아가 조력자살을 실행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취지였다. 물론, 위헌 결정은 조력자살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안락사 합법화는 아니지만, 스위스 디그니타스 등을 통해 실행되는 독일인의 조력자살이 가능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안락사 허용 여부에 따른 세계 지도 / Wikimedia Commons
안락사를 합법화한 대부분 국가가 기독교 국가로서 자살을 금기시하는 전통이 있음에도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의사 조력사 내지 적극적 안락사 제도를 일찌감치 시행했고, 제도 운영기간에 비례하여 이 제도를 이용하여 웰다잉의 권리를 실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사전 및 사후의 철저한 확인과 통제로써 반대론에서 제기하는 부작용 및 위험성을 최소화하였다. 예방 및 방지를 통해 부작용과 위험이 특별한 사회 문제로 현실화하지는 않는 걸로 보인다.
■한국도 적극 검토해야
한국에서 2016년 1월 8일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허용하는 ‘존엄사법’인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명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뇌수술 환자의 연명 의료를 중단한 의사에게 살인방조죄 판결이 내려진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7년 만이다. 현 존엄사법은 연명치료 중단 방식을 1)환자의 분명한 의사(意思) 표시가 있을 때 2)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을 때 3)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근거가 없을 때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1)은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여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본인의 뜻에 따라 환자가 담당 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POLST)’나 ‘사전의료의향서(AD)’를 명확한 의사표시로 작성했을 때이다. 2)의 방식은 이미 임종 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에 해당하는데, 평소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환자의 의사가 있었으며, 환자의 가족 2명이 같은 진술을 하고, 의사 2명이 확인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3)의 방식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의사(意思) 추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가 미성년자이면 친권자인 법정대리인의 의사 확인으로, 환자가 성인일 때에는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와 의사 2명의 확인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 법은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을 기대 생존 기간이 수개월 이내로 진단을 받은 말기 환자로 제한함으로써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말기 암 환자, 에이즈,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질환 같은 말기질환에 적용된다. 한국의 존엄사법은 생명만 연장할 뿐 치료 효과가 없는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기 때문에 소극적 안락사 범주의 존엄사만을 인정한다. 따라서 현행 존엄사법이 ‘인간다운 죽음’을 온전히 구현하는지 의문이다.
이미 이루어진 다른 나라의 주요 안락사 입법을 충분히 참조하여 우리의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을 바탕으로 의사조력 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 관련 규정을 신설 삽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북대 이문호 교수의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허용 입법의 필요성’ 논문에서 제안한 안락사의 최소한의 요건은, 성년자 본인의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의사표시,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극심, 변호사ㆍ의사ㆍ윤리전문가ㆍ심리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원(가칭)’에서 3개월 전후 기간 3차례 이상에 걸친 본인의 의사표시와 그 의사표시에 대한 재확인, 그리고 이 요건들에 대한 신중한 심사의 이행으로 정하고, 당사자가 미성년자면 직계존속 및 법정대리인(직계존속과 법정대리인이 다를 때) 전원의 동의이다. 심사위원 등의 위법과 비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법정형을 정하여 판단의 윤리성과 신중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손 잡고 있는 사진
또한 ‘잘 죽는’ 방법, 즉 웰다잉 교육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옴에도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적, 공적인 차원에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까지 살아오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생애주기에 따라 죽음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구하여 죽음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사회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죽음의 범주에는 단순한 신체 기능의 상실만이 아닌 삶의 흔적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포함돼야 한다.
웰다잉 교육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환자 본인에게 시행될 치료 행위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를, 의사표시 능력이 있는 사전에 표현한 것이다. 법적인 지위를 갖기 때문에 국가 지정 기관에 등록되며 품위 있는 죽음을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서류이므로 안락사 도입 시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말할 수 없어 죽음의 실체가 종국엔 미궁이라 하여도, 산 사람이 죽음을 말함으로써 삶의 마지막 순간의 미궁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기획 주간경향·ESG연구소·(사)ESG코리아·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
※이번 편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