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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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윤리의식에 대한 고찰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는 2001년 실제 일어난 네팔 왕실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네팔의 황태자가 왕과 왕비를 포함해 국왕 일가 8명을 사살한 사건이 벌어진다. 부모를 살해했다고 알려진 황태자 또한 현재 위중한 상황인데, 그가 깨어날 경우 왕위를 계승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왕궁 앞은 존경받는 왕을 잃은 시민의 슬픔과 분노로 소용돌이친다. 마침 여행 아이템 취재차 네팔 카트만두에 체류 중이던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가 사건의 내막 기사화에 나선다. 그는 당시 왕실 현장에 있었던 군인과 어렵사리 접촉한다. 하지만 군인은 자청한 자리임에도 지나치게 말을 아끼고, 뜻밖에도 다음날 골목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다치아라이가 우연히 목격한 그의 등에는 ‘INFORMER(밀고자)’라는 문구가 칼로 새겨져 있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 표지 / 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 표지 / 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데뷔한 이래 청춘과 미스터리를 엮어낸 작품으로 입지를 다진 작가다. <빙과>,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로 이어지는 ‘고전부 시리즈’와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의 이른바 ‘소시민 시리즈’는 모두 고등학생을 내세운 수수한 청춘 미스터리였다. 이후 폐쇄공간에서의 살인 게임을 다룬 <인사이트 밀>을 전환으로 완연한 본격 미스터리로 노선을 넓혔다. 뒤이어 <덧없는 양들의 축연>, <추상오단장>에서는 다섯가지 미스터리를 교차시키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한껏 부각하더니, <부러진 용골>은 아예 판타지 세계에서의 새로운 법칙을 추리의 토대로 삼았다. 그래서 더더욱 <왕과 서커스>의 질감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다치아라이가 정보원의 죽음을 추적하는 방식은 단서를 조합해 진실을 파헤치는 본격 미스터리의 정도를 그대로 따르는 한편, 기자의 보도 윤리를 정확히 중심에 놓은 채 진실과 주제를 한데 아우른다.

여러차례 기자 윤리의 핵심을 파고드는 데서도 작품의 정체성은 재차 확인할 수 있다. 다치아라이는 정보원이 ‘밀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해당한 것이 명백한 협박임을 알지만, 정확히 무엇을 쓰지 말라는 경고인지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이 살인 사건은 오로지 자신만 안다. 즉 특종이기에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면서 내내 기자로서의 신념을 저울질한다. ‘대머리독수리와 소녀’를 찍은 사진작가가 보도사진에 주어지는 최고의 영광인 퓰리처상을 수상한 반면 죽어가는 소녀를 외면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일화 역시 다치아라이의 취재 윤리를 관통하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결국 그는 애초에 기자의 직무란 진실을 확증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취합하는 것이란 답을 내놓는다. 무한한 지면과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니기에 무엇을 쓰지 않을지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기자의 본분과 관련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이러한 고민은 기자 윤리에 대한 성찰에 그치지 않고 살인 동인 및 진상과도 긴밀히 연관된다. 제목의 ‘서커스’ 역시 누군가의 참극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자극적인 오락으로 소비되는 보도의 함정을 은유하는 동시에 왕실 사건과는 무관한 무대 뒤 진실을 건드리는 것이다. 초반부 다치아라이의 성별을 알 수 없게 하다가 별것 아니라며 다잡는 방식에서도 알 수 있듯, 등장인물 중에 범인을 숨긴 본격 미스터리의 핵심과 기자의 철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특별한 작품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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