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미국의 과학자 데이비드 사바티니(David Sabatini) 교수가 최근 MIT 화이트헤드연구소와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모두에서 해임됐다. 1968년생으로 미국 암생물학계를 이끌던 일류 과학자의 갑작스러운 해임은 의생명과학계를 뒤흔들었다. 해임의 이유는 성추행이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과학계의 미투운동
2021년 8월, 미국의 한 로펌이 그의 성추행 관련 조사내용을 발표했고,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와 화이트헤드연구소 모두 사바티니를 공식적으로 해임했다. MIT대학만 그에게 행정휴가를 명령했다. 사바티니는 예전 연인에 의한 복수라며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제소했고, 사바티니가 고소한 예전 연인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사바티니의 실험실이 성추행에서 자유롭지 않은 환경임을 폭로했다. 2022년 4월 MIT의 내부 조사결과가 나온 후에야 사바티니는 MIT에 사표를 제출했고, 종신교수직이 취소됐다. MIT 총장은 지난 4월 1일 대학 구성원 모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사바티니 교수가 대학의 연구규정을 위반했으며, 교원으로서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미국 과학계에서는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은 듯 감추는 미국 문화의 한단면처럼 겉으로는 가장 선진적으로 보이던 미국 과학계의 치부가 미투운동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희롱뿐 아니라 미국 과학계가 구조적으로 지니고 있던 성차별, 인종차별, 괴롭힘 문제 등이 속속 드러났다. 솔크연구소의 암생물학 권위자였던 인더 버마(Inder Verma)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른 나이에 성공 가도를 달린 권위 있는 과학자가 그의 연구실 여성 구성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인더 버마의 사례는 사바티니와 판박이다. 한 여성 과학자는 무려 30년 동안 그를 피해 다녀야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투운동은 주로 정치, 스포츠, 예술계에서 벌어졌고 과학계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위계관계에 있는 여성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문제를 유발하는 환경에 있어서 과학계는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실험실이라는 공간은 한명의 연구책임자를 피라미드의 꼭짓점으로 구성되며, 연구책임자가 절대적 권력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그나마 자정작용이 벌어지고 있는 다른 분야에 비해 과학계, 특히 한국 과학계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교수들에 의해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차별이 노골적으로 정착해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폭로가 이뤄지지 않은 곳이다. 연구환경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리에 관한 뉴스로만 짐작해도 한국의 과학계가 그동안 감춰온 성차별과 성폭력이 얼마나 많을지는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누군가는 미투운동으로 학계에서 쫓겨난 과학자들의 비윤리적 행동과 그의 과학적 성과는 독립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한 과학자가 가정폭력범이라 해도 그가 최고의 학술지에 출판한 논문과 연구성과는 훌륭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자의 연구성과가 그의 개인적인 취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논리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된다.
우리는 과학적 진리를 상대주의자로부터 보호하면서도 과학의 내용에 과학자의 개성이 충분히 투영된다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 과학적 진리가 참으로 판명되는 과정은 과학자 한 개인의 천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자공동체의 사회적 검증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즉 한 과학자가 발표한 논문에는 그 과학자의 총체적 개성이 투영될 수 있다. 과학자 개인의 맥락에서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그 논문이 과학자공동체라는 일종의 사회적 맥락에 놓일 때, 그 논문은 치밀한 검증과정을 거쳐 가치중립성을 획득한다.
사바티니는 mTOR라는 단백질 연구로 유명세를 얻었다. mTOR는 세포가 성장 인자와 영양소 등의 외부환경을 인지하고, 세포의 성장과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로 알려져 있으며,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치료제 표적으로 연구돼왔다. 사바티니의 논문실적은 정말 경이롭다. 그가 1저자로 처음 발표한 1994년의 논문은 1782회나 인용됐고, 이후 그는 400편이 넘는 논문을 쏟아내며 암생물학계의 연구비와 상을 휩쓸었다. 해직당한 2021~2022년만 해도 무려 19편의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다. 이대로 연구를 계속했으면 아마 노벨상을 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추행으로 해임되기 전부터 그의 논문 중 상당수에서 조작된 사진이 발견됐다. 논문 검증 사이트인 펍피어(PubPeer)는 이미 2017년부터 그의 논문에 실린 여러 데이터가 중복됐거나 조작됐음을 밝혀왔지만, 사바티니는 트위터 등을 통해 익명으로 폭로되는 이런 증거들이 악의에 차 있다고 항변해왔다. 그는 펍피어에 논문의 흠결을 익명으로 폭로하는 이들이 자신의 성공을 질투하는 실패한 과학자들이라고 모욕하며, 명백한 데이터 조작을 단순한 실수라고 변명해왔다. 인더 버마는 mRNA 백신과 관련된 특허 문제에서 제자가 수행했던 연구결과를 이용해 제약회사에 취업했고 특허분쟁에 휩싸였다. 사바티니와 버마 모두 자신의 무한한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과학자들이었다. 연구비와 논문을 통한 무한경쟁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 돼버린 현대과학계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훌륭한 과학자의 표본이기도 했다.
외국 과학자 경력세탁에 세금 낭비
한국의 과학계도 권력을 지닌 남성 과학자로 인한 성폭력이 근절되고, 이들이 발 디딜 곳 없는 생태계가 되면 좋을 것이다. 한국은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다. 얼마 전 한 미국 대학의 학과장이 트위터를 통해 사바티니가 다른 대학으로 옮기기 위해 이전 연구동료들에게 추천서를 요구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미국의 몇몇 대학이 사바티니를 스카우트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그는 이미 한국에선 사바티니처럼 문제 있는 과학자 여러명이 경력을 세탁하고 채용됐음을 폭로했다.
실제로 한국 최고의 한 과학기술중심대학은 이미 여러 건의 데이터 조작으로 논문이 철회된 바 있는 외국 교수를 채용했고, 그는 한국 최고 기초과학자연구소의 그룹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세금이 외국의 나쁜 과학자들 경력세탁에 낭비되고 있다. 처참한 일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